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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 Oct 10. 2019

달리는 마음. 무릎의 추억

2019. 10. 9. 수

합정 -> 새절역, 저녁 6시쯤, 6.53킬로, 8' 06''

18도, 바람 2m/s, 미세먼지 좋음

 

 정 씨와 박 씨랑 합정에서 달리기 시작했는데 한강을 벗어나 불광천으로 접어들면서 앞에서 달려가던 친구들이 점점 작아지더니 불광천 산책하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러닝 앱을 확인하니 내 페이스에는 딱히 변화가 없었다. 심지어 7분 초반대로 내 기준에선 조금 빠른 편이었다. 날씨가 좋은 탓인가. 친구들이 다리에 깃털 단 듯 사뿐사뿐 가볍게 사라져 버려서 나중엔 같이 출발했다는 감각조차 사라지는 듯했다. 마치 드라마처럼 알고 보니 조현병이 있어 아까 함께 있었던 친구들이 환각이었다거나, 뭐 그런 이상한 상상과 길이 엇갈린 건 아닌지, 누가 갑자기 아파서 다른 곳으로 가버린 건 아닌지 하는 걱정도 조금 했다. (망상을 좀 하긴 했군) 평소와 다름없는 속도였지만 괜히 뒤처진 기분이 들었다. 쓸데없는 생각 대신 플레이 리스트를 바꾸고 지금 내 시간에 집중하기로 했다. 친구들이 궁금하다고 해서 빨리 뛰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작년에 속도를 단축해보겠다고 7분 대에서 6분대로 진입하기 위해 무리해서 뛰다가 무릎이 부어서 한동안 뛰지 못했었다. 달리고 싶은데 뛰지 못하니 무척 갑갑했었다. 누구의 조언대로 연골에 좋다는 도가니탕을 먹기도 했다. 물컹거리고 비싼 그것을 약처럼 한 그릇 뚝딱 먹었다. 그래도 낫지 않아 한의원에 갔다. 도가니탕이 무릎에 좋은지 한의사에게 물어봤다. 선생님은 한 번 웃으시더니 뭐 동종요법 같은 거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대화의 분위기에 부끄러웠고 그 누구의 진지했던 표정도 부끄러워졌고 한편으론 비싸고 물컹한 도가니를 먹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땐 손상되면 끝이라는 연골이 닳아버릴까 봐 무척이나 무릎 걱정을 하던 시절이었다. 틈만 나면 무릎을 생각하고 무릎 얘기를 했다. 무릎에 좋은 스트레칭 방법을 달리는 친구들만 만나면 얘기하고, 무릎 통증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릎 통증과 관련된 근육은 무엇인지, 급기야 슬개골, 대퇴근, 장경인대 이런 용어까지 익숙해지던 때였다. 그다지 집요한 성격이 아닌데도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느끼는 통증에 지하철에서 틈만 나면 무릎을 검색했었다. 흠. 그래서 결론은 무릎을 회복하면서 달리기를 하려면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달려야 하고, 평상시에 다리가 아닌 다른 부분의 근력도 함께 길러야 한다는 거였다. 또, 가능하면 몸무게를 줄이는 게 무릎에 무리가 덜 가는 좋은 방법이었다. 무릎이 나아지면서 근력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과 몸무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지만. 그래도 하나 확실히 달라진 건 그 이후로 달리기 할 때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지 않는다. 그 덕에 느려지긴 했지만, 부상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달리다 보면 작은 성취를 얻고 싶어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를 바라며 숫자에 집착하기 쉽다. 그러나 나는 '러너스 니(Runner's Knee)'를 영광으로 생각할 생각은 전혀 없으므로 그때의 무릎을 생각하며 속도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휘익 날아가는 백로 한 마리를 보았다. 산책하는 강아지도 종류별로 여러 마리 보았고, 춤 연습하는 십 대들과 돗자리 가방을 사선으로 메고 손잡고 걸어가는 연인도 보았다. 오늘도 이렇게 달리는 이유는 꽉 채워진다. 강아지풀이 햇볕을 받아 황금빛으로 빛났던 게 가장 인상에 남는다. 석양이 길게 누워 모든 것에 푸르고 긴 그림자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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