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근종 환자에게 좋은 음식: 야채 카레
김치, 카레, 밥만 있으면 삼시세끼 같은 메뉴라 할지라도 불평 없이 먹는다. 무엇보다 카레를 처음 맛보는 아이처럼 아주 맛깔스럽게 먹을 자신이 있다. 젊은 날의 엄마도 지금의 나처럼 마땅한 반찬거리가 없거나, 요리하기 싫은 날에는 아마 카레를 만들어 준 것 같다. 그럴 때마다 진수성찬은 커녕 김치 한 가지만 있어도 행복했다. 그 버릇에 그 기억은 여전히 남아 집 카레를 만들게 한다.
자궁 근종을 발견한 이후 돼지고기가 들어간 카레는 아무래도 꺼리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피하긴 하지만 돼지고기가 전해주는 쫄깃한 식감과 농후한 향이 없는 카레는 아쉽다. 그래서 그 빈 공간을 메꾸기 위해 더 많은 채소를 넣고 콩, 묵과 같이 고기의 식감을 전해줄 수 있는 대체품을 추가한다.
일단 채소는 엄지손가락 마디처럼 굵게 썰어 씹을 때 '아! 얘는 채소구나.'할 수 있어야 한다. 밥과 채소가 따로 놀아도 입안 가득 다양한 식재료의 맛이 느껴지는 카레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큼지막하게 썰어 놓은 감자를 기본으로 냉장고에 있는 여러 야채들을 꺼내 큰 솥에 카레가루와 함께 푹 끓여낸 간단한 이 음식은 들어가는 식재료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이다. 사과를 넣은 날은 달달하고 단호박을 넣은 날은 달달한 듯 구수하다. 아마도 매콤한 카레의 향이 사라질 때쯤 떠오르는 많은 채소들의 맛 덕분에 내가 더 카레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
브로콜리, 양파, 감자, 단호박을 넣어 볶은 후 점성을 위해 전분 가루 한 스푼과 함께 풀은 카레 물을 넣는다. 그 사이 표고버섯과 말린 묵을 물에 불려 끓는 냄비에 넣었다. 친정 엄마가 처음 만들어준 묵 카레를 접했을 때에는 카레에 묵을 넣는다는 사실이 거북했다. 물컹거리고 뭉개져서 카레가 쓰게 변하면 어쩌지란 걱정에 반신 반의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말린 묵을 넣게 되면 형태의 변형과 맛의 영향 없이 쫀득한 고기의 식감이 느껴진다. 마치 돼지껍질처럼 입에 착착 감긴다.
센 불에서 모든 재료들이 익을 즈음 약불로 낮춰 오랜 시간 끓인다. 야채의 단맛, 감칠맛이 우려 나와 카레 맛이 더욱 깊어지는 시간이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린다. 냄비 속 재료들이 들러붙지 않게 바닥을 휘휘 젓다 보면 어느샌가 카레는 점성이 생기고 향긋한 카레 냄새가 온 집안을 감돌면서 절로 침이 고인다.
카레를 끓이는 데는 적당한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취향껏 끓여 원하는 맛에 가까울 때 따끈한 밥 위에 한국자 퍼내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맛있게 만든 카레는 가만히 앉았다가도 주섬주섬 한 숟갈씩 퍼먹게 만든다. 말 그래도 카레는 언제 먹어도, 무얼 넣어 먹어도 맛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