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조화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기로 결심했다
극락조화가 별 탈 없이 잘 자라고 새 이파리도 나면서 식물 기르는 데 자신감이 생겼다. 동시에 거실에 극락조화 혼자 덩그러니 있는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오랜만에 얼굴도 보고 식물 얘기도 나눌 겸 꽃집에 들렀다. 엄마들이 만나는 사람마다 아기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랑하는 것처럼 자리에 앉자마자 신나게 극락조화 이야기를 하고 그동안 찍은 사진도 보여줬다. 실컷 자랑을 늘어놓은 다음 식물 하나를 더 기르고 싶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정해놓지는 않았는데 꽃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눈길을 끈 식물은 있었다. 이름을 몰라 “저거요!”하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파리들이 제멋대로 마구 뻗어있는 식물이다. 길쭉한 이파리 끝이 포크처럼 두세 갈래로 갈라졌는데 그 형태가 멋졌다. 사람으로 치면 정수리는 볼륨이 살아있고 끝부분은 자연스럽게 웨이브가 있는 헤어스타일 같다.
이름이 외양을 보며 내가 연상한 것과 사뭇 다르다. 원래는 나무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하는데 그 모습이 박쥐가 매달린 것 같아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어떤 사람들은 삐죽한 이파리가 사슴뿔을 닮아서 수사슴의 뿔을 뜻하는 단어(Staghorn)와 고사리과의 식물을 뜻하는 단어(Fern)를 합쳐 사슴뿔고사리(Staghorn Fern)로 부르기도 한단다. 인테리어 좀 안다는 사람들은 박쥐란을 자연목에 부착해 헌팅 트로피처럼 벽에 걸어두기도 하고 공중에 매달아 기르기도 한다고 했다. 설명을 들으니 플랜테리어 관련 자료에서 본 벽걸이 식물이 떠오른다. “그때 그 식물이 바로 박쥐란이었구나!”
벽에 걸지 말지는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정갈한 외모의 극락조화와 반대되는 외모가 매력적이다. 예쁘다고 무작정 데려올 수는 없는 법. 이번에도 현실형 식물 조건에 부합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극락조화가 잘 자라는 건 어쩌면 운이 좋아서일 수도 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르는 법을 물었다. 극락조화와 비슷하단다. 물을 충분히 주고 볕이 직접 들지 않는 그 늘지고 시원한 곳에 두면 된다고 했다. 게다가 예민하지 않아서 특별히 조심해야 할 부분도 없다고 했다. 가족이 될 운명이었는지 원하는 조건에 딱 맞다. 쇼핑 봉투에 넣어서 바로 집으로 데려왔다. 극락조화 옆에 두니 키 차이가 많이 나서 언니, 동생처럼 사이가 좋아 보인다.
환영 인사를 하고 박쥐란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이파리에는 회색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솜털이 보송보송하게 나있다. 손으로 살짝 만져보니 피아노 의자처럼 보드랍고 도톰하다.
꽃집에서 들은 내용을 바탕으로 인터넷에서 박쥐란에 대해 더 찾아봤다. 겉모습만 독특한 줄 알았는데 살아가는 방식도 범상치 않다. 박쥐란의 이파리는 기능에 따라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뿌리를 덮고 있는 둥글넓적한 영양엽, 다른 하나는 내 마음을 빼앗은 생식엽이다. ‘이파리가 두 종류니 새 이파리가 나는 모습도 2배로 더 많이 볼 수 있겠구나!’ 극락조화에 새 이파리가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 잎에 대해 알면 알수록 흥분됐다. 영양엽은 뿌리의 증산 작용을 억제해 생육에 필요한 물을 저장한다. 나무나 바위에 붙어서 서식할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다. 영양엽의 새 이파리는 기존에 난 이파리 위를 덮으면서 한 장씩 난다. 결과적으로 이파리가 겹겹이 쌓이는 셈이다. 색은 시간이 지나면서 녹색에서 갈색으로 변하고 결국 썩는다. 하지만 쓸모없는 게 아니다. 제거하면 안 된다. 이 이파리가 썩으면서 생기는 부산물이 박쥐란에는 영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파리인 생식엽은 번식을 담당하는 포자가 달려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또 한 번 나뉜다. 포자가 달린 이파리가 없는 것보다 1.5~2배 더 길다. 아무리 봐도 이 이파리는 매력이 흘러넘친다. 처음엔 제멋대로 난 잎의 겉모습만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알게 돼 흥미롭다. 사방팔방으로 난 이파리가 마치 한자리에 머물며 사는 식물이 자유를 향해 뻗은 손 같다.
끝부분이 두 세 갈래로 갈라진 잎과 사방팔방 제멋대로 쭉쭉 뻗은 모습이 멋스러운 박쥐란. 올곧은 체형의 극락조화와 대비되는 매력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또한, 한 몸에서 생활상이 각기 다른 잎이 나는 덕분에 앞으로 어떠한 추억을 만들어갈지 기대된다.
소개 | 사슴뿔처럼 길쭉하게 뻗은 잎이 특징.
관리 | 7~10일마다 물을 충분히 준다. 바람이 잘 통하고 볕이 직접 들지 않는 곳에 둔다.
주의 | 통풍이 중요하며 높은 공중 습도를 좋아하므로 분무는 자주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