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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락조화에 새 잎이 나려고 해

매일 아침이 기다려지는 이유

by 김현경

여느 때처럼 아침에 일어나서 극락조화와 인사를 했다. 그런데 못 보던 게 생겼다. 가운뎃줄 두 이파리 사이로 뾰족한 무언가가 났다. 새끼손톱보다 작은 크기에 색은 옅은 연두색을 띠었다. 꼭 뾰루지처럼 생겼다. 극락조화를 들이기 전, 새싹이 나고 무성해지는 희망찬 미래보다 식물이 걸릴 수 있는 각종 질병 등 최악의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컸던 탓에 ‘우리 극락조화가 병에 걸렸나?’하며 덜컥 겁부터 났다. 잘못 봤나 했는데, 다음날에도 여전히 있었다. 심지어 조금 자란 것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사진을 찍어 꽃집에 보냈다.


“이거 새 이파리가 나려고 하는 거예요!”


뜻밖의 대답이었다. 문제가 생긴 줄 알고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했는데 다행이다. 긴장이 스르르 풀린다. 그리고 가슴이 벅차다. 새 잎이 나기 시작하는 걸 본 적이 없어서 신기하기도 했다. 물 주는 것 말고는 해 준 게 없는데 알아서 잘 자라주니 대견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조그마한 잎이 언제쯤이면 다른 이파리처럼 성장할지 궁금했다. 오늘부터 열흘마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 사진들이 훗날 극락조화와의 소중한 추억이 되리라. 사진을 찍으며 자세히 보니 이파리가 꽁꽁 말려 있는 것 같다. 어릴 적, 도화지로 만든 고깔모자보다 더 뾰족하고 빡빡해서 길쭉했다. 지금 시점에서 관찰되는 모습은 그뿐이다.


일주일쯤 되니 잎이 새끼손가락 크기만큼 자랐다. 형태와 꽁꽁 말려진 정도는 변함이 없다. 사흘 정도 지나니 키가 훌쩍 컸다. 활짝 핀 잎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제법 느껴진다. 언제쯤이면 온전한 잎의 형태를 갖추는지 궁금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생육 환경과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는 있는데 최소 4주는 걸린단다. 이제 일주일 됐으니까 앞으로 3주 남았다. ‘월간지 마감하고 나면 활짝 펴있겠네!’ 조바심 내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며칠 더 지나니 키 크는 속도에 가속이 붙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컸다.


‘내일 아침에는 얼마나 더 커있으려나?’


덕분에 매일 밤, 부푼 마음으로 잠든다. 아침이 기다려지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빈둥대지 않고 바로 극락조화에게 직행했다.


2주 차가 되니 키 크는 속도가 더뎌졌다. 게다가 눈에 띄는 변화도 없다. 다른 줄기만큼 크려면 아직 멀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묵묵히 기다리겠다고 다짐한 게 엊그제인데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급증이 밀려왔다. 손으로 억지로 잡아 늘릴 수도 없고 어쩌지. 잎이 완전히 나려면 앞으로 2주 정도 남은 터라 지금 성장이 멈춘 건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봤지만 이유를 알 순 없었다. 그러다 나흘쯤 됐을 때, 변화가 감지됐다. 빡빡하게 말려있던 부분이 조금 느슨해진 것이다. 내가 너무 오랫동안 쳐다봐서 매직 아이처럼 착시 효과가 나타난 건가? 변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건가? 별의별 의심이 들었다. 내 눈을 믿을 수 없었다. 객관적인 기준이 필요했다. 그때 떠오른 것이 그동안 찍어온 사진! 부랴부랴 핸드폰 화면에 사진을 띄워 극락조화 바로 옆에 놓고 대조했다.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니었다. 비교해보니 꽁꽁 말린 정도가 현저히 느슨해졌다. 그렇게도 염원하던 변화가 일어났다. 설레었지만 그것도 잠시. 이건 무슨 징조일까? 설마 키 성장이 멈춘 건가? 하나의 의심이 해결되니 또 다른 의심이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말려있는 잎이 하루가 다르게 휙휙 풀리면서 의심은 자취를 감췄다. 며칠 지나니 고깔모자 같던 형태가 도화지를 원통 모양으로 둘둘 만 것처럼 느슨해졌다.


3주 차에 도달했다. 잎이 온전한 형태를 갖춘다고 한 평균 소요 기간의 절반이 지났다. 이파리는 여전히 풀리고 있다. 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잎이 풀리는 속도. 이전에는 6시간 정도 지나야 ‘풀렸구나’ 했다면 지금은 2~3시간 간격으로 풀린다. 조용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촤르륵’ 하며 이파리가 펴져서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소리뿐이 아니었다. 펴지면서 생기는 반동에 극락조화의 몸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신기했다. 이파리가 풀리는 중에 다른 줄기 틈에 껴서 더는 펴지지 않길래 손으로 그 틈을 살짝 벌려준 적도 있었다. 덕분에 끼어 있던 부분이 ‘촤악’ 하며 완전하게 풀렸다. 그렇게 이파리가 다 펴졌다. 아직은 이미 나있는 이파리처럼 바깥쪽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오지는 않는다. 이파리가 말려있을 때의 형태가 남아 있어서 오목렌즈처럼 생겼다.


“세상에 나오느라 애썼다. 그런데 너, 키는 더 안 크니?”


물음에 대답하듯 극락조화가 자라기 시작했다. 아침저녁 사이에도 눈으로 식별될 정도로 속도가 빨랐다. 이파리가 펴질 공간이 만들어지면 잠시 성장을 멈췄다가 이파리가 다 펴지면 다시 자라나 보다. 본격적으로 자라기 시작하니 얼마나 클지도 궁금해졌다. 욕심 같아선 원래 있던 잎보다 컸으면 좋겠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균형이 맞을 것 같다. 작다면? 그 자체로도 개성이 있을 것 같다. 잎이 들쭉날쭉한 극락조화를 상상하니 그것 또한 귀엽다. 내 기준대로 성장하라고 욕심 내지 말자. 커도 좋고 작아도 좋으니 체력이 되는 범위 안에서 무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떠한 모습도 받아들일 수 있고 애정을 듬뿍 쏟을 준비는 되어 있으니 말이다.


4주쯤 되니 키 성장이 멈췄다. 이제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것 같다. 오목렌즈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파리는 볼록해져서 탐스러워졌고 잎 끝도 살짝 아래로 처지면서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장장 4주에 걸쳐 혼자 그 큰일을 해낸 극락조화가 대견스러웠다. 내가 옆에서 한 거라곤 규칙적으로 물을 주고 ‘이랬으면 좋겠다’며 푸념한 것뿐이었는데. 극락조화 덕분에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을 설레며 시작하고 기분 좋은 기다림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근사한 한 달을 선물 받은 것 같다. 고맙다.


“새 잎 틔우느라 고생했고, 건강하고, 다른 잎들과 조화롭게 잘 지내길 바란다.”



극락조화가 새 잎을 틔우는 4주 동안 찍은 사진들. 새끼손톱만 한 작은 잎이 시간이 지날수록 키가 쑥쑥 컸고 잠시 숨 고르기 하면서 꽁꽁 말린 잎을 스르륵 펼쳤다. 그러고 나선 키는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점점 주변 잎들과 비슷한 모양새를 갖춰나갔다. 새 잎의 시작을 응원하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희망차게 아침을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시작의 의미를 곱씹는 의미 있는 한 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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