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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매력, 백도선 선인장

포근한 위로와 즐거운 반전을 선물 받은 날들

by 김현경

얼마 전에 키우던 호야 케리가 죽었고 그로 인해 마음이 울적하고 쓸쓸했다.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도 잊을 만하면 찾아왔다. 호야 케리가 있던 자리에 다른 식물을 채우고 기르면서 위안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호야 케리는 다시 키울 자신이 없어서 전혀 다른 생김새의 선인장을 찾았다. 밍크 선인장에 시선이 갔는데 가격대가 꽤 높고, 구입하더라도 아직은 내가 감당하기 버거울 것 같았다. 선인장이지만 뾰족뾰족한 가시 모양의 잎이 아니라 밍크 선인장처럼 부들부들해 보이는 식물을 찾다가 백도선 선인장을 발견했다. 물 주는 법, 햇볕 쬐는 법을 비롯한 관리법은 여느 선인장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구입했다.


새하얀 잎이 보송보송하게 나있는 모습이 호야 케리를 떠나보냈을 때의 기분을 푸근하게 감싸주는 듯하다. 백도선 선인장은 멕시코 북부나 사막 지역에 주로 분포한다고 알려져 있다. 솜털 같은 잎과 토끼 귀처럼 길쭉하게 붙은 자구 때문에 토끼 선인장, 영어로 'Honey bunny'라는 별명도 있다. 내 품에 온 백도선 선인장은 토끼보다는 사람을 닮았다. 큰 원형 자구 위에 작은 원형 자구가 얹힌 모습은 각각 몸통과 머리 같고, 큰 원형 자구 한쪽에 길쭉하게 솟아난 자구는 팔처럼 보여서 마치 한쪽 팔을 번쩍 들고 '저요!' 하며 발표하는 아이 같다. 그래서 이름도 '저요'라고 붙였다.


이미 한차례 선인장을 떠나보낸 전적이 있기에 이번에는 여느 다육식물보다 더 꼼꼼하게 관리했다. 그 노력을 알아주었는지 팔이 쑥쑥 자라 어느새 가제트 팔처럼 길어졌다. 그 끝이 손가락처럼 살짝 꼬부라져서 귀엽기까지 하다. 하지만 '저요'의 성장을 보며 뿌듯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상한 낌새가 포착됐다. 꼬부라진 부분 바로 밑에 BB탄만 한 동그란 무언가가 볼록하게 나온 것이다.


'이게 뭐지?'


백도선 선인장에 대해 충분히 공부해서 예상치 못한 변화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거라 생각했는데 당혹스러웠다. 자료를 다시 찾아보니 새로운 자구가 날 징조란다. 마음이 놓였다. 새로운 자구의 성장에 더욱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작은 자구가 그 옆에 생겼고 위로 쑥쑥 컸다. 하나만 있을 땐 몰랐는데 3개 정도 되니 손가락 같다. 손가락을 편 가제트 팔이 됐다. 몇 주 지나니 팔 형태의 자구가 나있는 반대편에도 자구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그뿐만 아니라 가제트 팔 자구의 팔꿈치 부분에도 자구 하나가 추가됐다. 이후로도 선인장 여기저기에 자구가 자라났다. 처음에 데려왔을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지만 지금도 그 나름대로 개성이 넘친다. 귀엽다.


호야 케리로 인해 상처 받은 마음을 낫게 하려는 듯 열심히 크는 모습이 참 고맙기도 하다. 가끔 예상치 못한 곳에 생기는 자구가 마치 서프라이즈 선물 같다. 다음에는 어디에서 새로운 자구가 날지 맞춰보고 또 얼마나 자라서 어떠한 형태가 될지 상상했던 시간들 말이다. 대신 앞으로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생육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더 많이 신경 쓸 계획이다. 그래도 딱 하나, 알고 싶은 게 있다. 다음번에 자구가 날 자리다. 새로운 자구가 날 수 있는 자리는 거의 다 찬 상태라 얼마나 기상천외한 곳에 불쑥 나타날지 궁금하다.


"그래서 말인데, 다음 자구는 어디에 날 건지 살짝 힌트 좀 줄래?

그래야 이제 막 나온 자구를 발견했을 때 당황한 표정이 아니라

반가워하는 표정을 먼저 지을 수 있을 것 같거든."



시간이 흐르면서 백도선 선인장에 자구가 나는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맨 왼쪽이 처음 집에 왔을 때, 팔을 들고 '저요!'하고 발표하는 형태. 오른쪽으로 갈수록 자구는 점점 길어지는 것은 물론, 예상 밖의 자리에서 존재감을 뽐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금 기괴해 보일지라도 내 눈에는 귀엽고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리고 자구가 생겨날 때마다 놀랍고 기쁘다. 서프라이즈 선물을 받았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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