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해서 퇴사를 했지만 원한다고 입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퇴사보다 어려운 건 입사.
가난한 월급쟁이에서 다시 백수가 되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채용 시장이 줄어들었다고는 하나 채용 공고는 꽤 자주 눈에 띄었고, 일자리는 줄었어도 합격하는 사람은 있었다.
또 정규직 공채 모집에서 떨어졌다. 몇 번 째인지 세고 싶지도 않았다. 세어봤자 내 속만 쓰릴 게 뻔하니까.
'난 왜 이렇게 뭐든 쉽지 않을까' 자책하는 일이 늘었다. 상대적이겠지만 남들보다 부족한 학벌과 영어 점수에 괜히 신경이 쓰였고, 진심을 담아 공들여 쓴 자기소개서는 어디까지 읽다 버려졌는지 참으로 속상하게 했다.
'언제쯤 내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평소에는 관심 없던 운세를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합격이란 두 글자를 기다리까지 지쳐만 갔다. 대체 뭐가 문제일까.
주변 친구들은 쉽게 일을 하는 것처럼 보였고, 일은 하지 않더라도 자기 인생을 즐기는 듯했다. 태생이 한 가지에 온전히 집중하는 데 능해서인지 당장 눈 앞에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친구를 만나는 일도 사치스러운 시간처럼 느껴졌고, 이성과의 만남이나 소개팅 따위에 관심도 현격히 줄었다.
돈 많은 백수를 꿈꿨지만, 퇴사를 한 지금 매달 들어 올 월급은 끊겼고, 모와둔 돈도 없다. 돈 많은 백수가 되기엔 재벌 집 자식도 아니라 부지런한 개미가 되어야 했다. 돈 욕심보다는 일로서 얻는 보람이 더 큰 사람이라 일하는 것 자체를 좋아한다. (일은 좋아하지만 퇴사를 했고, 대학에서 열정 페이로 영화를 찍는 동안에도 행복했다.)
어쨌든 결국은 돈 없는 백수가 되었고 전과 다를 게 없었다. 집에서 일하느라 특별하게 나갈 일도 없어 유일하게 돈 쓰던 쇼핑도 안 했고, 즐겨보던 영화는 일하는 동안엔 취미 시간마저 없어 잠시 쉬었다.
백수의 삶은 마음은 불편했지만 몸은 편했다. 어쩌면 내가 꿈꾸던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기도 했다. 좋아하는 영화나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고, 여러 감정들을 글을 쓰고, 아무런 간섭 없이 책을 읽고, 또 컴퓨터 앞에서 몇 자 적고, 필라테스를 하거나 음악에 한 껏 취하고, 가끔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고.
몸이 한결 편해지니 생각을 정리하기도 수월했다. 그러다 보면 쉽게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꺼지지 않는 배터리로는 판단력이 흐려지기 때문에 가끔은 쉼표를 찍는 것도 괜찮았다.
퇴사는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앞으로 '내가 할 일'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했다. 그리고 남은 건 그동안 번 월급으로 오직 나를 위해 산 19000짜리 하늘색 니트뿐이었다.
결국 또다시 취준생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