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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un 15. 2021

사람을 공간으로 기억했다.

그 사람을 잊지 못하게 하는 건 사라져 버린 감정도, 익숙하게 기억했던 그 사람만의 향기도 아니었다. 그와 추억이 있는 공간은 그 사람을 잊지 못하는 단서가 되었다. 함께한 추억이 담긴 사진들은 클릭 한 번이면 사라졌지만, 늘 변하지 않고 제자리에 멈춰있는 공간들은 고향의 냄새와도 같았다. 깨끗이 지웠고 잊었다 생각했지만 그곳에 서면 가슴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 올라왔다. 예전 같으면 여린 마음을 붙잡고 애써 스스로를 다독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때의 나보다 훨씬 성숙해졌다. 매번 배웅해준던 집 근처나 자주 가던 곳들은 내가 괜찮지 않으면 더 힘들었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텼다. 하지만 이젠 마치 없었던 일처럼 함께 했던 곳을 가도 숨을 쉬고 웃을 수 있었다.


사람을 공간으로 기억한다는 건 그곳에 갈 때마다 그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곳에 가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굳이 그 길을 피해 갈 수도 없었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지나칠 수밖에 없는 곳이었고, 어쩌다 보면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 될 수 도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피하기보단 가끔은 그 길에서 그때를 추억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추억이 깃든 곳에 잠시 들리는 것만큼 타임머신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가끔은 공간들은 변했다. 강산은 10년이면 변한다지만,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주변 건물과 환경들은 금세 바뀌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들렀던 맛집들도 여러 사정들로 폐업했고,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곳들도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일도 빈번했다. 분명 함께 같던 곳이지만 변한 곳들에 들릴 때면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헤어지고 나면 서로의 흔적을 말끔히 지우는 것처럼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새로운 매장이 드러 섰다. 하지만 공간이 사라진다고 기억이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럴 테면 혹시 그 사람도 이 곳을 기억하고 있을지, 한 번쯤은 지나치지 않았을지 문득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곳에 가면 네가 생각난다는 건 결코 너를 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두 번도 아니고 몇 번을 가더라도 그가 떠올랐기에, 함께한 시간은 생각보다 단단했고 무거웠다. 공들여 쌓아 올린 건물과 마음은 땅 아래서부터 단단하고 깊게 차곡차곡 쌓는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하지만 마음에서 사람을 지운다는 건 건물을 없애는 것과는 달랐다. 건물을 없애는 건 공사 준비가 되면 단 며칠이면 흔적도 없앨 수 있었지만, 사람의 감정은 마음의 일부를 똑-하고 떼어낸다고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잊는다는 건 쉽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졌지만, 결국 추억이 있는 곳에서는 그 어떤 기억보다 선명했다. 사람을 공간으로 기억하는 건 내 아픔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면서 나를 강하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어쩔 수 없이 아픈 기억들도 함께 떠오르지만 어쨌든 살아야 하기에, 혼자서도 씩씩하게 그 공간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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