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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Feb 13. 2022

식혜, 이제는 그리운

명절마다 할아버지께서는 식혜를 사 오셨다. 

"이거 맛있는 데서 사 온 거야"

하지만 아무리 잘 만든 식혜라고 할지라도 어린 시절 할머니가 만든 식혜와는 달랐다. 


세상엔 맛있는 음료가 널렸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먹을 수 있다. 특히 인기 카페에서는 시즌만 되면 신상 음료를 내놓아서, 요즘 사람들이 식혜를 찾을 리 없다. 찜질방쯤 가면 먹을 순 있겠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덕분인지 나는 식혜를 좋아한다. 


할머니가 만든 식혜는 떡집에서 파는 식혜와는 다르다. 구수한 엿기름 냄새가 깊은 맛을 냈고, 색은 탁하고 진했지만 은은한 단맛이 금방 질리지 않았다. 밥알도 듬뿍 들어있어서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했다. 


하지만 난 이제 할머니의 식혜를 먹을 수 없다. 할아버지가 사 온 식혜가 대신하더라도, 할머니가 없기 때문이다. 할머니가 만들지 않은 식혜는 내게 없는 것과 다름없다. 


제대로 된 식혜를 못 먹은 지 10년 만에 엄마가 식혜를 직접 만들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식혜에 할머니 얼굴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부터 먹었던 식혜의 맛이 아직도 기억난다. 이제는 그리운 식혜다. 엄마가 만든 식혜는 할머니의 식혜와 달랐지만, 덕분에 할머니 생각이 한 번 더 났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고 쉽게 갈 수 없다. 하지만 분명 존재하는 공간이다. 할머니도 당장 볼 수 없고 만날 수 없지만, 할머니가 내 옆에 있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무한한 우주는 유한한 삶을 언제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르는 존재로 만든다. 그렇기에 땅에서의 삶이, 사랑이 소중하다. 


우주는 미지의 세계임과 동시에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나도 가끔은 할머니의 세상이 궁금하다. 돌아가시기 전, 몸이 아파 고생하셨는데, 그곳에서는 평안한 지. 할머니의 세상, 할머니의 우주에서는 잘 살고 있을까.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식혜 만들 준비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우주와 달리 이 땅에서의 삶이 유한함이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한 번 더 전화하고 한 번 더 손 잡아줄 걸 그랬다. 어떻게 식혜를 만드셨는지도 함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래야 식혜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의 생각이 날 테니까 말이다. 


그렇게 식혜를 다 먹어 간다. 먼 훗날 내가 할머니의 우주에서 다시 만난다면 '할머니 식혜가 최고였다'라고 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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