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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May 17. 2022

팝콘, 터지는 만큼 사랑해야지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탁. 타탁. 탁. 옥수수가 튀겨진다. 영화관 매점에 출근하면 가정 먼저 하는 일은 팝콘을 튀기는 일이다. 영화관에 들어서면 고소하고 달달한 팝콘 냄새가 옷깃까지 스며든다. 영화관에 오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자신들이 영화관에 오는 이유는 팝콘을 먹기 위해서라고. 영화관에서 팝콘은 빠질 수 없는 존재다.


무거운 쇠통에 기름 버튼 누른 뒤 옥수수 한 컵 넣고 온도를 올린다. 5분 정도 기다리면 옥수수가 한 알씩 튀겨지며 맛있는 팝콘이 완성된다. 캐러멜 소스까지 버무려지면 더 맛있다. 인기도 많다. 이 간단한 음식이 내겐 간단하지 않은 인생 공부가 되었다.


사람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고 노는 걸 좋아한다. 1년 넘게 한 지난 아르바이트에서도 매일같이 여러 사람과 어울려 먹고 마시고 놀았다. 그 시간만큼 그때의 우리들은 친해졌고 추억을 쌓았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 생각한다. 내게 그때뿐인 관계는 없었다. 과거 같은 곳에서 일했던 몇몇 사람과는 아직도 관계를 이어가는 중이다.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많아 공통점이라곤 같은 곳에서 일했던 것 밖에 없지만, 그 공통된 이야기가 우리의 시간을 늘리는 건 또 다른 기쁨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번에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못했다. 사람들과 잘 지내지 않았던 건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편해지긴 했지만, 편함을 넘어서는 친밀함까지는 가지 못했다. 서로에게 선을 지키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정도였다. 원래의 나라면 벌써 서로 친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계약직 아르바이트였기에 3개월 후면 떠나야 했기에 무의식적으로 마음의 여유를 주지 못했나 싶기도 하다.

평소와 달리 나를 드러내지 않고 감정을 억눌렀다. 친해지면 자주 보고 싶고, 자주 보다 보면 금방 시간이 흐르고 또 그만큼 감정 소비도 많기 때문이다. 내 모든 감정 소비를 감당할 만큼 그때의 나는 마음이 여유가 없었다.


 옥수수 한 알은 새끼손톱만큼 작다. 하지만 높은 온도에서 튀겨지면 엄지손톱보다 커진다. 튀겨지는 건 순식간이다. 처음에는 탁. 탁. 타탁. 금세 타탁 타탁. 타 다다닥. 타다닥. 하곤 금세 커진다.

팝콘이 될까 무서워서 옥수수로 남아던 나였다. 겨우 손톱만 한 한 알이 팝콘 한통으로 불어나기에, 애써 감정을 숨기고 눌렀다.


헤어짐이 익숙지 않아 차라리 거리를 두는 게 좋았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 않게 유지하는 게 상처도 덜했고 편했다. 하지만 결국 옥수수는 튀겨지지 않는 온도였다. 적당히는.

튀겨지지 않을 온도에서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언제나 마음속에 불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뜨겁다. 언제는 터질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서 쉽게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도전하는 일에 머뭇거림이 없다.


감정이 팍 하고 터지는 게 두려워 애써 사람들과 거리를 뒀던 일들이 지나고 보면 늘 아쉬웠다. 그런 내가 가끔은 밉기도 했다. 왜 난 둘 다 잘하지 못할까. 마음 통제도 쉽게 조절할 줄 알면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자신의 온도를 높여 마음을 열는 사람들을 보면 가끔은 부러웠다. 삶을 살면 살수록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는 것에도 익숙해지고 능숙해지는데, 쉽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원래의 나보다 더 뜨거운 불씨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질 때마다 늘 아쉬움은 있었지만 더 이상 후회를 남기지 말아야겠다. 사랑하고 사랑받기에도 아까운 시간이다.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언제나 사람한테 위로받는다. 상처받고 아파하는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일단은 나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 사람들에게 모두 사랑을 줘야겠다. 주는 기쁨을 아는 사람만이 받은 사랑의 행복을 느낄 수 있으니까.

팝콘이 튀겨질 걸 두려워하면 그건 팝콘이 아니다. 튀겨질 만큼 튀겨지고, 튀겨지고 남은 옥수수 알갱이가 되더라도 우선은 팝콘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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