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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Apr 29. 2022

사골,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어린 시절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엄마 직장 때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키워주셨던 건 어쩔 수 없이 당연한 선택이었을지 모른다. (그때나 지금이나 워킹맘들은 힘들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었던 엄마에게 돌아갔다.


어렸을 때부터 사골국을 자주 먹었다.

"이거 먹어야 뼈 튼튼해져" "사람이 뼈가 튼튼해야 돼"

할머니는 사골국을 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 항상 말씀하셨다. 사골국이 사람 뼈에 얼마나 효능이 있는지 잘 몰랐지만, '뼈가 튼튼한 건 좋은 거구나'라는 생각에 열심히 먹었던 것 같다. 하얗고 멀건 국에 거부감도 없었고, 국에 밥을 말아 잘 먹었다. 할머니는 사골국을 한 솥 끓이시면, 국을 다 먹을 때까지 매 끼마다 주셨다. 자주 먹었어도 사골국이 질린 적은 없었다.


할머니 집에선 항상 사골국 냄새가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장을 볼 때 소 뼈를 까먹지 않고 사 오셨다. 사골국은 신선한 소 뼈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사골국을 자주 먹었던 나는 지금까지 뼈에 금이 가거나 부러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걸을 때 잘 접질려 넘어졌는데도 병원에 갈 정도로 다친 적도 없었다. 그럴 때마다 '사골 덕분인가?' 생각했다.


지금도 사골국에 깍두기 김치 하나면 한 끼는 뚝딱 잘 먹는다. 하지만 사골국은 집에서 먹기 쉽지 않다. 손이 많이 간다. 시골 가마솥도 아니고, 가스레인지나 인덕션으로는 쉽게 자주 끓이기 힘들다. 특히 여름에 끓이면 집 공기도 뜨거워져, 집이 너무 덥다.


설렁탕과 조금 다르지만, 사골국은 소 뼈를 하루 종일 우려내고 남은 국을 먹는 음식이다. 먼저 소 뼈를 물에 담가 끓인 후, 그 물을 다 버린다.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그다음 새로 물을 가득 채워 뼈가 우러날 때까지 끓인다. 평균적으로 반나절 정도 끓인다. 해가 떨어지는데,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한 번 더 큰 냄비에 물을 또 넣고 세 번째로 끓인다. 보통 큰 냄비는 성인 둘이서 겨우 들 정도다. 마찬가지로 하루 종일 끓이고 우려낸다. 다 끓인 뒤 차가운 곳에 두고 식힌다. 기름이 딱딱하게 굳는다. 기름을 걷어낸다. 두 번째 세 번째 끓인 물을 모두 섞어 다시 한번 끓인다. 이렇게 끓이고 걷어내고, 또 끓이고를 반복하고 나서야 먹을 수 있는 게, 바로 사골국이다.


냄비에 뼈 넣고, 불만 키면 뚝딱 완성되는 음식이 아니다. 핏물을 잘 빠졌는지 수시로 확인하고, 얼마큼 우러났는지 보고 또 봐야 한다. 우리는 시간과 정도에 따라 국물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정성으로 만든 음식이 아니다. 늘 밥상에 있는 게 사골국이라 이렇게 정성 가득한 음식인 줄 몰랐다. 사골국을 좋아하니까 엄마가 간혹 집에서 끓일 때가 있는데,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님을 이제야 깨달았다.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그때의 음식들이다. 무슨 음식인지도 모르고 맛있게 먹었던 때부터 어떻게 사골국이 만들어지는지를 알고 먹을 때까지, 그 시간을 지나오면서 아무렇지 않게 먹었던 수많은 밥들이 몸도 마음도 튼튼하게 나를 성장시켰음을 알게 했다. 힘들어 지쳤을 때도, 헤어진 다음날도, 불안이 온 정신을 괴롭힐 때도, 아무리 바빠도 밥은 늘 먹었다.


어떤 시간과 과정을 지나왔든, 지금껏 먹어 온 밥들이 아니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순간들이 많다. '한국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밥을 먹어야 힘이 났고, 힘이 나야 앞으로 갈 수 있었다.

이제는 오늘은 뭐 먹지' '내일은 뭐 먹을까'를 고민하는 것만큼 '어제는 무엇을 먹었는지'를 고민해야겠다. 하루하루 먹은 음식들이 지금의 나를 만드는 시간이니까, 그 뿌리 같은 시간들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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