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관계 맺기의 첫 걸음
‘가스라이팅’을 최초로 규정하고 다룬 책.
가스라이팅이라는 단어는 〈가스등〉(1944)이라는 영화에서 따온 것이다. 여자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남자가 여자의 판단력을 흐리고, 스스로 그것을 의심하도록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가스등을 어둡게 켜놓고, 여자가 그것을 지적하면 전혀 어둡지 않다고 여자의 판단이 이상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점점 여자는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남자에게 의존하게 된다.
남녀 관계에서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직장의 상하 관계에서도 가스라이팅은 존재한다. 그래도 역시 중심이 되는 것은 남녀 관계에서, 특히 남자에 의해 가해지는 가스라이팅이다
영화 <가스등>에서처럼, 사실과는 다른, 혹은 과장되거나 왜곡된 말을 반복해서 결국 상대를 무력화시키고 수동적인 상태로 만든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자신이 가스라이팅 당하는 것조차 모르고 자존감이 낮아져 우울증이나 무기력함에 시달린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남성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폭력적인 유형, 매력적인 유형, 선량한 유형.
이건 가만 보면 거의 모든 남자들이 해당된다는 말이기도 하고, 착하다고 해서 가스라이팅 하지 않는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선량하거나 매력적인 남자는 무언의 시위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타협을 끌어내거나 오히려 자신이 상처받았다는 식으로 여자를 조종한다. 한마디로 소심한 방식의 가스라이팅이다. 이쪽이 오히려 알아채기가 힘든 상대다.
가스라이팅은 양쪽 모두가 만들어낸 문제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말에 휘둘리지 않으면 가스라이팅은 성립하지 않는다. 때문에 이 책은 여자와 남자 모두에 꼭 필요한 책이다. 한쪽의 치료만으로 완쾌될 수 없는 병이다. 가스라이팅 당하는 여자들이 그것을 모를 때가 대부분이듯이, 가스라이팅 하는 남자들도 자신이 그러고 있다는 걸 모를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가스라이팅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과도 같다. 때문에 가스라이팅에 대해 배우는 것은 상대방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의 핵심을 말한다
첫 번째는 인간관계를 권력관계로 보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간관계를 갑과 을의 관계로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끊임없는 힘겨루기의 연속이다. 심지어 연인 혹은 부부 관계에서조차 그렇다는 건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우리는 상대보다 위나 아래에 있을 필요가 없다. 어느 쪽도 건강한 상태는 아니다.
두 번째는 상대와 상대와의 관계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났다는 것은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한다. 아무리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도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일치시킬 수는 없다. 때로는 상대가 개소리를 지껄일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가볍게 무시할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결혼이나 연애가 구원이 될 수는 없다. 지상 낙원은 불가능하다. 상대도 나와 마찬가지로 결점투성이인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두 가지 가치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과는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이 불가능하다. 책에서 가스라이팅에 대한 대처와 해결방안을 제시하긴 하지만, 만약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을 떠나는 것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사실 그게 제일 힘들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자들이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참고 산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반복은 상황을 악순환으로 만들 뿐, 나아지게 만들지 않는다. 50년 할부로 불행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고통스럽더라도 지금 당장 잘라버리고 남은 여생을 ‘진짜로’ 살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있다.
알량한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