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5. 소음의 근원

by 신민철

며칠을 곱씹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항의해도 소용없었고, 경비실에선 늘 같은 대답만 돌아왔다. 그나마 견딜 만한 날도 있었지만, 아이가 뛰는 소리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물론 집 안에서 망치질을 하거나 드릴이 돌아가는 소리도 괴롭다. 그래도 그런 건 잠깐이다. 그런 소리를 하루 종일 내는 성인은 없다.

하지만 아이가 뛰는 소리는 달랐다. 불규칙하고, 예고도 없다. 조용하다 싶으면 쿵, 다시 조용해지면 또 쿵. 내가 방심할 때쯤 정확히 타이밍을 재서 뛰는 듯했다. 이제는 아이가 조금만 뛰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카페 회원들은 그걸 귀가 트였다고 부르곤 했다. 한 번 귀가 트이면 작은 소음에도 버틸 수가 없다. 부모에게는 이미 여러 번 말했다. 좋게, 또 정중하게. 아이에게 조금만 주의를 주면 해결될 일인데, 정작 그들은 모른 척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그 애에게 직접 말하는 방법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그저 주의를 주려는 거다. 한마디만 해도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집 안에서는 조용히 하라는 말 한마디. 그 정도면 충분할 거다.


아이와 대화하려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우선 부모가 근처에 없어야 했다. 내가 말만 걸어도 제지당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아이가 혼자 있을 시간을 잘 맞추는 게 관건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아이는 적어도 내가 출근한 이후에나 등교할 거고, 내가 퇴근하기도 전에 집에 들어와 있을 테였다. 날을 잡는다면 아이가 집에 들어올 시간을 기준으로 정해야 했다. 아마 학교가 끝날 시간은 세 시쯤이 맞을 거다.

두 번째 조건은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장소였다. 아이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드러나서 좋을 건 하나도 없다. 자칫 신고라도 당하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윗집 아이를 마주친 아래층 주민. 평소에 층간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따끔한 말 한마디 하는 아저씨. 딱 이 정도가 적당했다. 자연스러운 만남을 꾸미기 위해서는 아는 게 좀 많이 필요했다. 어떤 학교에 다니는지, 어떤 길을 거쳐서 집까지 오는지, 같이 하교하는 친구는 몇 명인지, 걸음은 빠른지 느린지. 문득 그 아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가 궁금해졌다.

학교를 특정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이가 걸어서 다닐 만한 시간은 길어야 삼십 분 정도일 거라 판단했다. 삼십 분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초등학교는 두 곳뿐이었고, 그마저도 집으로 돌아오는 동선이 겹쳤다. 두 시쯤 근처 카페에서 기다리다가 시간을 맞춰서 나오면 될 듯했다. 잘하면 골목으로 들어서기 전에 붙잡을 수 있을 듯했고, 거기서 놓쳐도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마주칠 수 있겠다는 계획이 섰다. 남은 건 뭐라고 말할지였다. 어떻게 해야 내 의도가 잘 전해질까. 문제가 되지 않을 만한 선에서 충분한 위협이 될 수 있는 말은 뭘까.


계획했던 날에는 연차까지 써가면서 그 아이를 기다렸다. 누가 보면 유괴범으로 오해받기 딱 좋은 짓이었다. 나는 카페에서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고, 준비해 간 책을 읽는 척하면서 한 명 한 명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내 예상보다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조바심이 났고, 이미 몇 명은 얼굴도 못 보고 지나쳤다. 이미 지나친 무리 중에 그 아이가 있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이 길이 아니라, 집까지 빙 둘러서 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여기서 기다리다간 아이를 놓칠 가능성이 높았다. 급히 커피값을 계산하고 나왔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초등학생들이 하나둘 지나갔다. 몇몇은 친구들과 장난치면서 뛰어다녔고,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남자아이들이 귀가 따갑게 웃어댔다. 뭐가 저렇게 즐거울까. 아이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나는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자마자 횡단보도를 거의 뛰다시피 건너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을 반쯤 돌았을 때였다. 익숙한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내 머리 위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소음의 근원. 그 애가, 고작 열 걸음쯤 앞에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늦췄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머릿속에는 자꾸만 거친 말들이 맴돌았다. 그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아이는 순간적으로 눈동자가 흔들렸다. 경계심이 서려있었다. 저 아이도 나를 알고 있을까. 인터폰 너머로 내 얼굴을 나를 봤다거나, 승강기에서 마주쳤을 때를 기억할지도 몰랐다.

저 아이는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을까. 부모가 한 마디는 하지 않았을까. 집에서 뛰면 아래층이 힘들어한다고. 자꾸 찾아오는 아저씨가 아래층 남자라고. 그걸 모두 다 알면서 계속해서 뛰었던 걸까. 만약 그랬다면, 어리다고 넘어가기에는 너무 악의적이었다. 누군가는 잘못했다고 말해야 했다. 부모가 제대로 교육하지 못한다면, 다른 어른이라도 따끔하게 말하는 게 맞다. 그동안 제멋대로 뛰었으면 당혹스러운 기억 하나쯤은 남는 게 합당하지 않을까.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자꾸만 발목을 잡았다. 아이는 점점 멀어졌고, 뛰면 못 잡을 거리는 아닌데도 나는 자꾸만 머뭇거렸다. 그러던 사이에 결국 내 시야를 벗어났다. 아이가 아파트단지로 들어선 순간, 분노나 후회보다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앞에서 가까스로 한 발 물러선 기분이었다. 입 안에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들이 울컥거렸지만, 어이없게도 다행이란 마음이 더 컸다. 나는 골목을 천천히 빠져나와 집으로 향했다. 당분간은 이 소음이 계속될 거란 짐작, 아니 확신이 들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4화4.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