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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11. 2024

내 삶은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전남편이 새파랗게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 지숙은 탁상시계를 쳐다보았고, 시계는 과자와 음료 캔 사이에서 구해달라는 듯 지숙을 바라보았다. 오후 세시면 이미 끝났겠다. 끝나고도 한참이다. 하늘은 얼룩 하나 없이 빳빳했다. '비나 쏟아져라.' 그러기에 밖은 너무 맑았다. 지숙은 물에 젖은 행주 마냥 쳐져있다. 지숙은 늘 날씬한 자신의 몸을 좋아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팔다리만 너무 가늘어지는 것 같았다. 지숙의 온몸 세포 하나하나가 늙어서 주글주글 해지고 있었다. '뇌세포들도 소파에 늘어져 쉬고 싶은가 보다. 아무 생각이 없네.' 지숙은 스스로의 사고 기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은 채 늘어졌다.


 



  드르륵



  루미가 제 밥그릇을 미는 소리다. 잠들기 전 불을 끄지 않아 환했다.' 도대체 몇 시간이나 잤지?' 집에 키우는 강아지에게 언제쯤 밥을 줄 것인지 채근하는 형광등이 그녀를 내려다본다. 개는 꽤나 인내심이 많다. 주인이 끼니를 챙겨주지 않아도 무심히 굴었다. 지금처럼 밥그릇을 슬슬 밀고 긁는 건 꽤 오랫동안 배를 곯았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지숙이 더 이상 일어나지 못할까 봐 중간중간 잠을 깨워주는지도.


  

  지숙은 작년 이맘때쯤 약을 먹었다. 이쯤이면 그만 살고 싶었다. 신나는 것들은 모두 지나갔다. 남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하는 것들은 그냥 지나갔다. 지숙은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통계에서 이상하게 튀는 값이 되지 않고 싶었다. 평균에서 멀지 않은 그 어딘가에 존재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왔다. 그런 모든 노력은 그녀를 빛나지는 않지만 눈에 거슬리지도 않는 사람으로 머물게 했다.



  지숙은 전남편인 상준과의 이혼이 불편했다. 사랑하는 사람? 가족? 사랑하던 사람? 과의 결별은 그저 그랬다. 하지만 결혼에 실패한 사람이라는 딱지가 남을까 봐 걱정이었다. 70점짜리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100점은 못되더라도 40점은 되고 싶지 않았다. 주위에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뭐라고 할까 걱정이었다. 실패자라는 자책은 어느새 그녀를 무력하게 했다. 무기력함은 처음엔 외부에서 스며들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짙어진 농도로 지숙이 그 무력함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었다. 가능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뭘 할 용기가 나질 않았다. 지숙은 잠을 청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했다. 그 긴 무력을 뚫고 죽겠다는 결심을 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성공하지 못했다.



  지숙이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그날 루미는 지숙이 제 밥을 수북하게 주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마저도 모자라 집에 있는 대야를 꺼내서 사료봉투를 뒤집어 털었다. 그조차 모자란 듯 지숙은 베란다에서 묵직한 사료포대를 낑낑거리며 가져왔다. 오랜만에 그녀의 몸에 피가 도는 듯했다. 지숙 미리 사두었던 사료들을 전부 가져와 거실 바닥에 쏟았다. 대야나 통에 담고자 하는 의지는 어느 순간 아무 의미가 없었다. 대야를 모두 감싸고 사료들이 바닥에 정규분포표처럼 쏟아졌다. 후드득 떨어지는 사료 사이로 한 알갱이가 부엌까지 굴러갔다. 루미는 쫄쫄 사료를 따라 뛰어가더니 날름 먹었다. 루미는 계속해서 쏟아지는 자그마한 갈색 덩어리들을 보았다. 어느덧 쌓인 사료의 산은 강아지의 키보다 높아졌다. 루미는 끙끙대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러고는 지숙과 사료를 멀리서 바라보았다. 지숙은 여러 그릇에 물을 나누어 담았다. 혹시 물이 마르면 변기물이라도 먹으라는 듯 화장실 문도 열어 두었다.



  거실에 한참을 앉아있던 그녀는 아들과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식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엄마가 우울해한다는 건 알았지만 왠지 이상하다고 느낀 아들은 집에 들렀다. 지숙은 죽지 못했고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있었다. 그동안 루미는 밥을 먹고, 물을 먹고 때로 창밖을 봤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을 헤맸다. 지숙이 헤매는 동안 루미도 자기 집에서 헤매었다. 지숙은 항상 루미를 지켜줬다. 산책을 가더라도 루미는 한 번도 주인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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