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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혜 Jul 11. 2024

에필로그 1

'나는 죽음을 선고할 자격이 있는가.'



  하영의 마음에는 루미가 오래 남았다. 방학의 실습이 끝나고 한참이 지난 어느 날. 수업에 지각할 것 같아서 발걸음이 바쁘던 어느 날. 하영은 루미를 자전거 앞 바구니에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지숙을 보았다. 대학 병원인 지라 바로 옆에 강의동이 있어서 그런지 자전거를 댈만한 곳에는 이미 다른 이들이 차지했다. 지숙은 자전거 댈 자리를 찾아 이리저리 보다가 대충 자전거를 대고는 루미를 안아 들고 병원으로 들어갔다.



  '그럴 리 없겠지만 좀 괜찮아졌으면 좋겠네.' 지루한 수업을 들으며 하영은 왠지 루미가 나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은 정말이지 지루했다. 지각해서 뒷자리에 슬그머니 들어가 앉을 때까지는 긴장되었지만 자리를 잡고 나서는 졸음이 잔뜩 쏟아졌다. 하영이 앉아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문득 하영은 설핏 잠에 들었다. 진료실에 가운을 입고 앉은 자신이 지숙에게 무엇인가 말했다. 조그만 말티즈인 루미는 하영을 보고 공격적으로 월월 짖었다. 루미가 짖을 때마다 개는 점점 커졌다. 이윽고 소처럼 커진 루미에게 지숙이 "앉아."라고 말하자 루미는 얌전하게 앉았다. 하영은 내심 놀랐지만 진료실의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지숙이 앉아있는 루미를 올려다보며 그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루미가 꼬리를 흔들며 지숙에게 머리를 비볐다. 루미도 눈물을 흘렸다. 방울방울 떨어진 눈물은 바닥에 찰랑할 정도로 찼다. 직원들이 우왕좌왕하며 물을 퍼다 날랐다. 물결은 진료실 밖으로 강처럼 흘렀다. 놀란 하영은 책상 위에 서있었다. 지숙이 루미의 등에 올라탔다. 둘은 차오르는 물길을 헤치고 유유히 헤엄쳐서 멀어져 갔다. '여기 삼층인데 이렇게 침수되네'라는 생각을 한 순간. 물이 천장까지 빠르게 차올랐다. '이렇게 죽는 건가.' 버둥거리며 살려달라고 소리치는 순간 하영이 잠에서 깼다.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피식 웃었다. 몇몇 동기들이 하영을 보며 킬킬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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