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아이 캔 스피크
무악재 북쪽 인왕산 기슭 현재 지하철 3호선 홍제역 북동쪽 출입구 부근에 홍제원(弘濟院)이 있었다고 한다. 1895년까지 건물이 남아있었다고 하는데 이 건물은 중국 사신이 한성으로 입성하기 위해 무악재를 넘기 직전에 휴식을 취하고 예복을 갈아입는 곳이었다. 또는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 일행이 환송 나온 사람들과 작별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이 홍제원이라는 이름을 따서 현재 종로구, 서대문구, 마포구에 걸쳐 흐르는 하천의 이름을 홍제천이라고 지었는데 이곳엔 아픈 역사가 있다.
삼전도의 굴욕이라고 하는 인조의 삼배구 고두례로 잘 알려진 병자호란으로 인해 조선은 청나라의 내정 간섭을 받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라 많은 백성 50만여 명을 포로와 인질로 끌고 갔다. 미인이 많기로 소문난 지역인 의주와 평양에서는 서민은 물론 양반의 부인과 첩까지 끌려갔다. 대부분의 아녀자들은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지만, 운 좋게 도망을 치거나 많은 돈을 주고 풀려난 이들도 있었다.
여기서 나온 단어가 환향녀(還鄕女)이다. 뜻을 풀이하면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를 의미하지만 이 단어는 결코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다.
오랑캐와 몸을 섞어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환향녀는 백성들에게 손가락질 받기 일쑤였고 그래서 환향녀 감히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홍제원 근처에서 머물 뿐이었다.
<인조실록>에는 환향녀에 대해 이렇게 적혀있다. ‘비록 본심은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변을 만나 죽지 않았으니, 절의를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미 절개를 잃었으면 남편과 의리가 끊어진 것이니 억지로 다시 합하게 해서 사대부의 가풍을 더럽힐 수는 절대로 없다.’
실제로 그 시절에는 정절을 잃은 여인의 자손은 과거 응시 자격을 박탈했고 요직으로의 출세도 금지했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부인과 다시 결합하는 사대부는 아무도 없었다. 때문에 가문으로부터 버림받은 수많은 여인들은 자결했고 이게 사회문제가 됐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인조는 고민 끝에 홍제천에 몸을 씻으면 그 정조 문제를 묻지 않는다고 명했다.
그럼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환향녀들은 그 주변에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고 왕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의미로 홍은동(弘恩洞)이라고 불렸다. 이때부터 우리나라 국민은 참 억울한 일을 당해도 꾹 참고 살았구나. 잘되면 나라 탓, 안 되면 자기 능력 탓....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이런 일은 역사 책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일제강점기에 성 노예(위안부)로 끌려가신 할머님들은 해방 후에도 가족들과 주변 사람들의 멸시와 무시를 당하고 살았어야 했다. 정절을 잃고 부끄럽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쩜 이런 DNA는 바뀌지도 않는지 가족과 국민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부끄러움과 안타까움으로 보듬어줘야 할 피해자들을 ‘환향녀’ 취급한 것이다.
8천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어 구청 직원들로부터 ‘도깨비 할매’라고 불리는 ‘옥분’(나문희)도 마찬가지다. 영화 막바지에 옥분이 그토록 영어를 배우려고 했던 이유, 누군가의 손길에 소스라치게 놀랬던 이유, 결혼하지 못하고 혼자 사는 한 가지 이유가 나온다. 바로 그녀가 일제의 ‘위안부(성 노예)’였기 때문이다. 이미 어머니와 동생에게 위안부라는 이유로 버림받았던 그녀는 자신의 치부 아닌 치부를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와는 달리 일제의 만행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정심’(손숙)이 치매로 꿈을 이루지 못하자 결심을 굳힌다.
그렇게 미국 의회에서 유창한 영어실력으로 세계에 위안부의 실체를 알리면서 영화는 절정으로 도달한다.
<아이 캔 스피크>는 한국 영화를 평가하는 가장 진부한 문장인 ‘재미와 감동을 함께 잡았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초반에 한국 사회의 문제점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시 생각하는 담론에 의해 전부 흐지부지되는 단점이 있지만 위안부라는 소재를 너무 신파적이지 않게 풀어냈다는 점은 좋았다.
다만 앞서 말했듯 공무원의 무사 안일주의, 전통시장의 파괴, 인재의 공무원 쏠림 현상 등의 나름대로 중요한 소재를 제시만 하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위안부 문제는 블랙홀처럼 다른 담론들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큰 불편함을 느낄 순 없다.
모르겠다. 지금 대중은 위안부에 대해 안타깝고 따뜻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조금 옛날 사람들, 특히 그들의 가족들의 지배적인 시선이 대중과 정말 다를까? ‘엄마’라는 이름을 부끄럽게 사용하고 있는 단체의 대표는 ‘내 딸이 위안부였어도 일본을 용서했을 것’이라는 말에 추호도 부끄러움이 없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호모데우스>에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수천 년 역사는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격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딱 하나의 상수가 있는데, 바로 인류 그 자체이다. 우리의 도구와 제도는 성경 시대와 전혀 다르지만, 마음의 심층구조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 공자의 책, 소포클레스와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전들을 창조한 사람들은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이고, 따라서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우리 이야기처럼 들린다. 고전 희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연극에서 오이디푸스, 햄릿, 오셀로가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다 해도 그들이 빚는 정서적 갈등은 원작 그대로이다.’
정절을 잃었다고 고향으로 들어온 아녀자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조선이나 일본의 사과를 받아준다면 그분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더 강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하는 헬조선의 어느 단체를 보면 정말 인격 그 자체는 과거와 많이 바뀌지 않았고, 역사는 반복한다는 진부한 진리를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