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이유
일정 시점 이후부터 나이에 따른 감가상각은 슬프지만 현실이다. 좀 더 지혜로워질지 몰라도, 세월의 최대 전리품이라 할 수 있는 과거의 찬란했던 경험들은 무서운 속도로 현재로부터 멀어진다. 그리고 현재의 경험치를 쌓는 속도는 물리적으로 느려진다. 시대의 흐름에 덜 민감해지고, 새로움에 주저한다. 아빠라는 가장 가까운 사례를 목격하니 더욱 조급해졌다.
한창 일할 나이에 회사 밖으로 내몰려 뻗치는 잉여력, 그리고 나를 찾지 않는 사회 간의 불균형은 자기 일을 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헌데 자기 일을 하는 실력을 쌓기에 사실 대기업이 적합하지는 않다. 회사에서 일을 잘하는 것과는 별개다. 그간 내가 접했던 경영 경험은 사실 모두 대기업용이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기업들을 상대하던 전략 컨설턴트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대형마트 전략을 짤 때도 자본력과 브랜드가 뒷받침 됐기에 가능한 답들이었다. 하물며 큰 예외없이 통용된다고 생각했던 경영학에서의 가르침들도 작은 경영에는 너무 큰 옷이었음을 깨닫는 중이다. 앞으로 더욱 대기업의 방식에 익숙해질 내가, 은퇴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내 일을 시작하게 된다면? 가로등에 뛰어드는 불나방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는 모든 경험은 복리처럼 쌓인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조기 경험’은 대체로 득이다. 나중에 알았으면 가슴 서늘했을 순간들이 많은 요즘, 미래를 당겨 사는 기분이다.
사진은 도쿄 출장 중 긴자의 100년된 문구점 이토야 입구에 있던 "2017년 미래를 보는 힘"이라는 스케쥴러 프로모션용 문구. 시력검사처럼 디자인해 재밌다. 눈에 보이는 미래만 바라보기보다 잘 안보이는 미래도 눈근육 뻐근하도록 읽어내야 한다. 그래서 지금 다리 터지게 도쿄를 돌아다니고 있는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