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대찌개의 본질은 햄이 아닐까?
오늘도 밥에 찌개 먹고 싶은 그런 날이다. 마침 냉장고에는 다 먹어가는 김장김치가 남아있다. 엄청나게 맛있는 김치다. 그 동안 고마왔어.
그나마 남은 것은 아직 손님상이며 나갈 곳이 있고, 배추 뿌리 부분만 김치찌개를 끓이기로 했다. 그냥은 좀 질겨도 끓이면 전혀 먹는 데 상관이 없다.
육수의 기본은 멸치와 뒤포리로 잡기로. 비율은 3:1 정도. 멸치와 뒤포리는 동해안 것은 아니고, 부산 살던 시절에 괜찮은 것들을 발견했다. 사실 남해안쪽 가면 대략 어디 수협매장 같은 데만 가도 멸치와 뒤포리는 수준이 다르다.
물과 다시백에 넣은 멸치, 뒤포리와의 비율은 각자의 판단에 맞기지만 대략 30:1을 넘어가면 상당히 싱거운 느낌. 정말 진하게 하려면 10:1 정도. 그 중간의 어디가 대부분 개인의 취향일 것이다.
이 경우는 김치가 들어가니까 좀 가벼워도 될 것이다 싶어 25:1의 비율. 일단 물이 한 번 끓을 정도가 되면 약불로 낮추어 오래. 가능한 오래.
약불에 오래가 아니라 센 불에 확 익히면 쓴 맛이 우러나는 것 같다. 딱히 왜라고 설명은 못하겠지만 이건 머리, 내장을 떼어내도 마찮가지. 온도에 따라 용출되는 성분이 다른데 무릇 생선은 너무 팔팔 끓이면 맛이 별로더라.
그런데 이런.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을 넘긴 덕햄(오리고기 햄)과 말라비틀어져가는 베이컨 발견.
요리사의 밥은 이런 것들을 빨리 해결하는 것을 위주로 한다. 그래서 김치찌개는 부대찌개로 변신하기로. 유통기한을 넘겼다지만 우리나라 유통기한은 Best before 개념이라 별 문제는 없다.
부대찌개 국물을 내는 데 마늘이 빠질 수는 없지.
늘 강조하지만 깐마늘 같은 건 쓰는 게 아니다. 향도 약하고 쉽게 상한다. 모름지기 마늘 한 쪽 한 쪽 껍질을 바로 까서 쓰는 것이 좋다. 저 윤기를 보면 반박할 사람 없을 거다.
부추도 이 참에 처리하자.
수세미는 '처리대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번 넣어본다. 이제까지 생으로 먹는 것들만 해봐서 익히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고.
여기에 양파, 호박 좀 넣고 남은 두부도 투하해서 끓인다.
햄과 채소류를 투하하고 중불에, 이것도 되도록 오래면 좋겠지만 어느 선을 넘어가면 채소들이 다 물러지고 하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배가 고파서 어느 정도 끓이다가 신속히 불을 끄고 먹는 모드로 돌입한다.
김치찌개에 햄이 들어간 정도다. 그래도 완전 부대찌개 느낌이 난다. 베이크드빈(Baked Beans) 이런 것은 없어도, 부대고기가 안 들어가도 말이다. 부대찌개의 본질은 햄과 소시지 아닐까? 대략 국물에 햄 소시지 투하하면 다 부대찌개 기분.
햄과 베이컨에 들어간 정도 말고 인공 MSG는 전혀 없다. 베이크드빈과 부대고기가 없이 멸치-뒤포리 육수니까 국물은 좀 가볍다. 라면사리가 없어서 섭섭하지만 맛있는 쌀밥이 있다. 만족도가 높은 한 끼 식사. 거기에 냉장고에서 제법 많은 것들을 살려서 먹었다는 만족감이 추가 된다.
수세미는 끓는 물에 투하하는 것은 재고해볼 문제. 수세미의 '살'이라고 할만한 부분들이 많이 녹았고 거실한 섬유질 부분만 많이 남았다. 씨앗은 아직 덜 여물어 그냥 먹을만은 한데 특별한 맛이 들진 않아서 별 감동이 없고. 역시 수세미는 생으로 먹는 요리를 하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