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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풍요의 상징 복이 주렁주렁 구령찰(九靈懦)

복스러운 낱알의 찹쌀

구령찰 이삭은 까락이 드믈고 쌀알이 굵다. 사진으로만 봐도 묵직함이 느껴지는 것이 구령찰의 특징이다.



주로 황해도와 평안남도 지역에서 재배되던 찰벼다. 낱알이 커서 무거운 이삭에 키마져 크니까 잘 넘어지기도 했을 것이다. 태풍과 강수피해가 심한 남부지방에서 재배하기는 힘들었을 것 같다. 그것만이 이유는 아니겠지만.




이삭의 낱알이 굵은 것은 현미 단계에서도 확연히 보인다. 다만 도정을 좀 많이 하면 쌀알이 깨지는 경향이 있어서 백미는 쌀알이 그렇게 큰 느낌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큰 것은 크고 깨진 것은 깨졌고  느낌이다.



쌀알은 우선 큰 것으로 간주하고, 큰 쌀알에는 물을 조금 더 주어 짓는 것이 정석. 쌀알 크기가 크면 상대적으로 표면적은 줄고, 그래서 물을 조금 더 잡아야하는 원리는 언젠가 이야기한 적이 있다. 밥짓는 도구로 압력솥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다.


찰밥이라는 면에선 물을 조금 감할 이유가 되는데, 이번엔 그냥 약밥같이 지어보자 하고 물을 잡았다.



결과물은 역시나 기름지고 부드러운 찰기의 밥. 은은한 단맛이 좋다. 진밥 좋아하는 사람에겐 꽤나 맛있는 밥이겠다. 나의 개인적 취향으론 역시 물 줄이고 단단하게 지었어야했다 느낌이지만. 여러종의 쌀을 짓다보니 이제 조금 둔감해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구령찰은 제법 맛있는 쌀이지만 이거다 하는 캐릭터가 두드러지는 느낌은 아니다. 특히나 포도알 같다는, 풍요의 상징 같은 외모에서 느껴지던 기대감을 생각한다면. 하지만 밥이란 것이 어디가 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이 쌀도 두루 쓸모가 많은 좋은 쌀이라는 느낌이다. 밥보다 떡이나 술에 더 좋은 쌀일 수도 있겠다(해보면, 해봐야 알겠지).


뜻한대로 찰기와 윤기를 이끌어낸 오늘의 밥짓기는 80점.


이 사진에서는 이삭에 붉은기도 돈다. 고개를 깊이 드리운 불그레한 논을 바라보는 농부의 마음도 넉넉히 차올랐을 것 같다. 모든 쌀 중에서도 풍요의 상징 같은 구령찰이다.  


사진제공: 우보농장 이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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