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미식 감상자 콜드웰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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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웰 선장의 제안이 협박이 아니라 분명한 호의에서 나온 말인 것을 깨닫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후로도 내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하루하루, 매 끼니마다 깨닫게 되었다.


콜드웰 선장은 영국인으로서는 드믈게 진정 좋은 음식과 술의 가치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정확히는 아일랜드인의 후손이라고는 하는데, 프랑스인인 내가 보기엔 그게 사람의 음식취향이라는 면에서는 크게 다른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아일랜드인들은 인정하고싶지 않아하는 이야기지만 국적으로는 엄연히 영국이기도 하고.

선장은 직업상 유럽에서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같은 지중해연안 국가들을 많이 돌아다니고, 멀게는 인도나 아메리카까지도 항해를 다닌 모양이다. 그런 경험이 이 아일랜드-영국인을 참혹한 영국식 식사로부터 구해냈을 것이다.


결국 나를 살린 것은 요리다. 프랑스 국왕과 영국 왕세자의 궁정요리사, 이 경력만으로도 오귀스뜨 뻬뺑은 당대 제일의 요리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그런 빛나는 경력 덕에 인생이 좌초할 위기에서도 최악은 면했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손발이 묶인 채로 짐짝같이 실려다니던 몸인데 이제는 제법 옷도 깨끗이 갈아입고 선창에는 내 해먹도 있다. 침대가 있는 선실을 따로 갖춘 것은 선장뿐이고, 항해사나 갑판장들도 해먹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가히 호사라고 할 일이다.


이제는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고 있고, 도착할 때까지는 할 일도 있고, 제법 안정적인 대우도 보장받았다. 새로운 땅, 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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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양 항해를 하는 배의 선장은 목숨은 좀 불안해도 벌이는 어지간한 귀족 못지 않은 직업이다. 이 배가 그렇듯이 유럽에서 총이나 면직물, 사치품 같은 여러가지 상품을 실어서 아프리카 서해안으로 향하고, 거기서는 또 상아며 다이아몬드며, 무엇보다 노예를 실어서 아메리카로 향한다. 아메리카에서는 다시 설탕이나 럼주, 귀금속이나 담배 등을 실어서 유럽으로 나른다. 이런식의 삼각무역은 수익성으로는 어떤 투기 못지 않게 좋은 사업이다.


배가 돌아오기만 하면 투자금의 수십 배는 가볍게 남긴다고 한다. 풍랑을 만나거나 전염병으로 선원들이 전멸하는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해적들에게 뜯기는 경우가 많아서 무사귀환율이 아주 높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런 원거리 무역선의 경우 일반 선원만 해도 런던 같은 대도시의 노동자들에 비해서 두어 배의 급여를 받는다. 열에 서넛 정도는 풍랑이나 질병, 해적 등을 만나 화물은커녕 목숨도 못 건지는 여정이니 당연한 일이다.

항해에서 무사히 돌아오거나 하면 급여 외에 보너스가 있는 것이 보통이라고 한다. 어떤 이유로 다른 배를 나포하는 경우에는 급여의 몇 배나 되는 두둑한 보너스를 받는다고도 하고.


특히나 스페인 제국의 정기항로선은 신대륙에서 본국으로 언제나 금은과 진귀한 산물들을 가득 실어보내기 때문에 이런 배를 타면 선장이나 고급선원의 경우 단 한 번의 항해로 번듯한 지주가 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있다고 한다.

오죽하면 ‘보물선단’ 혹은 ‘은의 선단’이라고 대놓고 부르겠나.


스페인의 보물선단이 아니라도 같은 항로를 오가는 배들은 엄청난 부를 쌓아올린다는 점은 같았다. 콜드웰 선장같이 오랫동안 몇 번이나 위험한 대양항해를 수행한 경우에는 분명 한 재산이 두둑할 것이다.


“돈이라. 많이 벌었소. 얼마나 벌었는지는 글쎄... 젊었을 때는 돈에 쪼들려서 한 푼도 아쉬워했는데 이제는 내가 돈이 얼마나 있는지도 몰라요. 마누라와 자식들이 좋은 거지. 좋은 집에서 하인들 부리며 호의호식하고, 딸내미들은 지참금을 두둑이 얹어 번듯한 가문에 시집보낼 거요. 나야 이렇게 좋은 배를 타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고 말이오.”


선장이 자랑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는 말투로 한 얘기다. 돈이 얼마나 있는지 신경도 안 쓴다니, 이런 사람이 정말 부자구나.


선장의 부를 프랑스나 영국의 국왕님들에야 비할 바가 못되겠지만 왕실 유지비며 전쟁비용이며 하다못해 수많은 애첩들에게 이런저런 선물도 안기느라 의외로 쪼들리는 것이 왕의 자리는 것은 바로 측근에서 보았다. 늘상 이탈리아, 유대인 금융가들과 의회의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가 아닌가? 분명 세상 최고의 부자들이지만 결코 돈걱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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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운좋게 항해로 성공해서 귀족 못지 않은 부자가 되었다고 한들 결국은 선원이다. 왕실 요리사의 솜씨를 맛볼 기회는 평생 거의 없다고 봐야겠지. 그러니 왕실 요리사의 목숨이 자기 손아귀에 있을 때 그런 서비스를 받아보는 것은 미식 취향이 있는 선장으로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머니 손맛이 최고다 어쩌다 하는데, 그야 물론 추억의 맛이란 게 있긴 하지. 하지만 가난한 식민지 백성의 추억이란 딱히 많이 그립지는 않구려. 그보다는 젊었을 때 마르세이유며 베네치아 같은 곳에서 먹어본 요리들이 훨씬 기억에 남소. 이제 나이가 드니 먹는 것도 예전같지 않네요. 술이 줄은 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오.”


내가 주방장이 되고 처음으로 차린 식사상을 들고 갔을 때 선장이 터널웃음을 터뜨리며 한 얘기다. 요리라면 자신있지만 절인 고기며 비스킷 같은 삭막한 재료들에 신선한 야채라고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으니 어릴 때 베르사이유궁에 들어간 이래로는 상상도 못할 식재료들이다. 걱정이 안 될 수 없었다.


“입맛에 맞으십니까?”

“맞다 마다. 아니 안 맞으면 맞춰야지. 나 같은 뱃놈이 왕후장상의 음식을 배워야하고말고.”


영국적인 자학성이 담긴 유머인지 어떤지. 표정을 보니 입맛에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싶었다. 자리가 좀 잡히면 진짜 왕후장상의 요리를 맛보게 해드려야지.


세인트주드호의 주방장이 된 것은 나로서도 나쁠 것 없다기 보다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래다. 아니, 삐딱하게 말하는 것 같이 되었는데 사실 이 정도면 감사한 생활이다. 당장은 선장의 전속 요리사가 되어서 제법 주방에 서서 요리도 할 수 있다. 뭐라고 해도 오귀스뜨 뻬뺑의 삶에서 요리를 빼버리고는 견딜 수가 없는 일이다.


선장은 식재료며 스태프며 여러가지로 제법 넉넉히 예산을 배정해주어서 일단 마데이라까지는 보급도 괜찮고 요리하는 재미가 있는 여행이다. 물론 왕실 주방과 비할 바는 아니지만.


파리지엥이라고 할 수 있는 나로서는 이런 먼바다의 싱싱한 생선은 완전히 새로운 공부거리 들이다. 파리나 베르사이유의 왕궁에 들어오는 생선들은 하루 이상은 지난 것이라 대부분은 소금에 절여서 들어왔는데 여기서는 눈 앞에서 펄떡이는 생선을 대하다 보니 요리법 자체가 달라진다.


마데이라에 가까워지니 나타나는 형형색색의 다양한 가오리들은 파리나 런던에서는 그림으로만 접하던 것들이다. 실은 책을 좀 팔아보려는 모험가들의 과장이겠지 했던 물고기들도 많이 보게 되었다. 독이 있는 종류가 있지 않을까 겁도 나지만 다행히 배에는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출신의 선원들도 있어서 이런 물고기들에 익숙하다.


손질도 가오리의 신체 구조가 일반적인 물고기와 다르기 때문에 손질하는 법이 다르다. 일반적으로 대구나 넙치를 다루듯이 필렛을 뜨는 방법이 아니라 머리부터 칼집을 넣어 여기저기 썩썩 잘라서 뼈째로 요리한다. 일반적으로 버리는 내장도 거의 다 먹는다. 가오리의 간이 그렇게나 큰 줄은 처음 알았다. 내장의 반은 간인 것 같다. 그 맛이 푸아그라 뺨치게 감칠맛이 풍부한 것도 배웠다. 세인트주드호의, 바다위의 생활은 요리사로서는 귀한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스페인 출신의 페드로는 원래 이 배의 주방장으로, 지금은 자연스럽게 부주방장 역할을 하고 있다. 내가 와서 뭔가 배울 기회가 된 것이 좋기도 하고 주방의 우두머리로서 자기 자리가 격하된 것에 반감도 있는 모양이다. 틈만나면 이죽거리기를 잊지 않는다.


“위대한 프랑스 국왕도 가오리는 못 드셔본 모양이군. 그분의 수석 요리사가 뭐가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니 어쩔 수 있겠어.”


말끝마다 이런 식으로 이죽거린다. 고깝게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녀석, 며칠 같이 지내보니 심술을 좀 부리는 것 말고는 그래도 근본이 착한 사람이다. 요리에 재주도 있고 배울 때는 또 무섭게 파고드는 면도 있어서 짬짬이 나도 이것저것 가르쳐주고 있다. 어차피 나는 이 배를 떠나야 할 사람이다. 콜드웰 선장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페드로를 잘 가르쳐두는 게 필요할 것이다.

실은 내가 배우는 것도 많고 말이다. 프랑스 궁정 요리사도 푸아그라가 없으면 그 기름지고 풍부한 맛을 창조해내는 재주는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페드로는 생선의 신선한 간이 푸아그라 못지 않게 기름지고 감칠맛도 높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등이다. 가오리간의 맛이며 손질법도 다 페드로에게 배운 것이니까.


파리에서는 도대체가 간이며 내장 같은 것이 뱃속에 든 채로 주방에 들어오는 생선 자체가 드믈었다. 바다 생선은 그렇게 하다가는 악취가 나서 살까지 다 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호수에서 낚시로 잡아오는 생선들의 경우도 별 생각 없이 배를 가르고 내장은 다 들어내서 버리는 것이 손질의 기본이었다. 하지만 잡아서 신선한 상태에서 요리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너 시간이면 상해버리는 내장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잇다.


이제 대서양으로, 더 가서 아메리카로 가면 갈수록 또 내가 모르는 물고기와 동식물들이 나타나겠지. 유럽의 어떤 군주들도 맛보지 못하는 그런 식재료들이. 요리사로서는 그런 것이 최고의 즐거움이다. 유럽 어느 군주의 궁정요리사도 이런 경험은 못 해보았을테니까. 어떨 때는 행운아라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니까.


그리고 또 한가지. 요리사가 예술가라면 그 가치를 알아줄 감상자도 필요한 법이다. '뱃놈'이라고 스스로 낮추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면서 콜드웰 선장의 미각, 지식, 경험, 모든 방면에서 탄복하게 되었다. 음식이라는 예술에 있어서 가히 최고의 감상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바로 이런 수준높은 감상자들이 창작자의 의욕을 불태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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