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때는 역시 여행 가방이 문제다.'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3)

by 김덕영

'떠날 때는 역시 여행 가방이 문제다.'

노르웨이 작가 입센이 쓴 희곡 <인형의 집>에서 주인공 노라는 떠나기 위해 짐을 꾸리지 않는다. 굴레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심한 노라에게 집에 남아 있던 자신의 온갖 소유물들은 단지 '과거'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었다. 사랑하는 아이들, 결혼 생활 8년 동안 정들었던 추억의 사물들을 뒤로하고 노라는 여행 가방 하나 싸지 않고 집을 나선다. 떠나기 위해서는 그렇게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때로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다.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의 경우에도 결국은 여행 가방이 문제다. 짐이 짐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여행보다는 길고, 이민보다는 짧게', 분명 아이슬란드를 향한 여정은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생활의 형태를 제공했다. 당연히 생활에 필요한 물건과 여행자의 즉흥적이고 가벼운 마음이 여행 가방에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처음에 계획했던 아이슬란드로 곧바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유럽 몇몇 나라들을 취재한 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겼다. 폴란드,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불가리아, 어떤 면에서 보면 무척이나 낭만적이기만 한 여행의 목적지들이다. 역사와 전설이 스며 있는 낭만적인 동유럽의 고풍스러운 도시들을 이번 여행에 포함시키게 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하지만 취재를 목적으로 떠나는 여행은 늘 그렇지만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다. 정해진 일정 안에 목적한 것들을 취재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증 같은 것이 여행의 기간 내내 따라다닌다. 그러니 결코 낭만적일 수만은 없는 여행의 목적지들이다. 그만큼 여행 준비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우선은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물건들만으로 여행 가방에 들어갈 리스트를 작성하기로 했다. 하지만 짐을 싸다 보니 막상 어느 것이 진짜 꼭 필요한 물건인지, 어떤 것은 없어도 되는 것들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결국 어느 것이 진짜 꼭 '필요한 물건'인지부터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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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리는 것이 얻는 것이다.
물건을 버리며 추억을 간직 방법을 찾는다.
나의 경우엔 그건 자유였다.'


여행 가방을 꾸리면서 결국 나는 최대한 나의 자유를 구속하는 것들과 작별을 하기로 했다.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지만, 쓰지도 않으면서 막상 버리기에는 아까워서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쌓이는 물건들이 늘어나고, 버릴 수 없는 이유들 또한 하나둘 늘어난다.


그래서 일단은 당장 쓰지 않는 것들은 무조건 버리기로 했다. 버리기에 아까운 것들은 친지들이나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내가 간직하고 있던 물건들과 작별을 했다. 단지 물건을 남에게 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가급적이면 물건을 건네기 전에 물건에 간직된 나만의 고유한 사연과 추억을 함께 전달했다. 물건 하나를 놓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이야기가 오고갔다. 비록 앞으로 더 이상 만져볼 수 없는 물건이 되겠지만, 누군가에게 추억을 함께 전달하면서 즐거운 추억이 만들어졌다. 누군가 내 물건에 깃든 마음과 추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처음에는 버리지 못하는 이유들로 가득했던 물건들이었지만, 하나둘 버리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버려야 할 이유'가 늘어났다. 결국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지금 '버리는 것'을 배우고 있었다.


일본의 수납 정리 전문가 요시카와 에리코는 자신의 책 '정리 정돈 대사전'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물건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이유로 '물건에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냉정한 논리로 따지자면 벌써 버렸어야 할 물건들이지만, 그 하나하나의 사물들에 담겨 있는 기쁨과 슬픔, 추억과 이야기들이 물건을 단지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또 다른 분신처럼 생각하게 만든다는 의미다. 결국 '버리기'는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과정을 동반하는 문제였다.


나의 경우에도 물건에 '감정 이입'을 시켜놓은 것들이 사실 한둘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매번 집 정리를 할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인 물건 중 하나로 소매가 너덜너덜해질 정도가 된 오래된 티셔츠 하나를 들 수 있다. 10여 년 전 뉴욕 맨해튼 도심에서 취재하는데 갑자기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아침에 숙소를 나올 때만 해도 긴팔 옷을 꺼내 입기에는 분명 무더운 날씨였다. 그런데 갑자기 오후 들어서며 날씨가 변덕을 부렸다. 바람이 거세가 불고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것이다. 추워진 날씨 탓에 몸살 기운까지 느껴졌다. 결국 길거리 매대로 달려가서 20달러 정도 주고 산 티셔츠였다. 뉴욕 맨해튼 관광지에서 흔히 파는 짝퉁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였다.


그런데 그 티셔츠 덕분에 참 웃지 못할 일들이 많았다. 이유는 바로 가슴에 새겨진 'NYPD'(New York Police Department)라는 마크 때문이었다.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으로 새겨진 선명한 '뉴욕 경찰' 마크. 출국을 위해 JFK 공항에서 검색대를 통과할 때의 일이다. 9.11 테러 이후 JFK 공항은 어느 때보다 철저한 검문과 검색이 이뤄졌다. 사소한 볼펜 하나도 의심이 가는 점이 있으면 일일이 볼펜 심까지 꺼내서 검색을 하던 때다. 그렇게 남들은 구두에다 벨트까지 풀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간소한(?) 검색 절차를 거쳐서 검색대를 빠져나왔다. 심지어 검색을 하고 있던 직원에게 거수경례까지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믿기지도 않는 일이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그때 내가 입고 있던 'NYPD'가 새겨진 티셔츠 때문. 짝퉁 티셔츠가 진짜 '뉴욕 경찰' 제복처럼 완벽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옷이 내가 뉴욕 경찰로 보일 정도로 잘 어울렸기 때문일까.


193495_433010053433685_1562708638_o.jpg 뉴욕 맨해튼에서 'NYPD'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다. 얼핏 보면 진짜 '뉴욕 경찰'(?) 같기도 하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추억이 간직된 사물들은 아무래도 버리기에 좀 주저하게 된다. 그런 웃지 못할 기억들 때문인지 짝퉁 뉴욕 경찰 마크 가 새겨진 NYPD 티셔츠는 10여 년 동안 옷장 구석에서 생존할 수 있었다. 그걸 이번에 짐을 정리하며 드디어 쓰레기통 속에 던져 넣었다. 나로서는 꽤 과감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낡은 사물과 작별을 하자, 추억을 간직하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글을 쓴다든가, 사진을 액자에 끼운다든가, 추억을 매개로 이야기를 나눈다든가, 하는 조금은 색다른 방식들을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건 사물에 간직되어 있던 추억과 사물 자체를 분리하는 일이었다. 그런 관점으로 내가 소유하고 있던 것들을 하나둘 다시 바라보았다.


원하건 원하지 않건 우리는 우리가 소유한 물건들로 둘러싸여 삶을 이어간다. 풍요로움과 과잉 소비로 넘쳐나는 시대에 결국엔 사물이 사람을 규정하는 지경에 이르기 시작했다. 필요가 소비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소비에 대한 욕망이 소비를 부추기는 것은 아닌가, 한번 되돌아볼 문제다.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한 여행의 출발에서 나는 뜻하지 않게 나를 둘러싼 사물들에 대해 진지하게 물음을 던져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필요보다는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감정에 휘말려 물건을 사는 경우가 많다. 유행이 지난 옷을 입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버리지도 못한다. 그저 옷장 속에 들어가 몇 년이고 옷걸이에 걸린 채 세월을 보내기만 한다. 사물 하나에 욕망과 집착이 교차한다. 나보다는 타인의 시선이 결국은 나의 물건에 대한 규정을 짓는 근거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가끔은 이런 불필요한 사물에 대한 감정 소모에서 벗어나는 것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지나친 사물에 대한 감정 이입, 남에 대한 시선으로 버려야 할 물건들을 집안 구석구석에 쌓아놓고 사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 나에게 필요한 사물이 무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생활 속에서 철학을 구현하는 출발점이 되었다. 버리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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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의 작별은
결국엔 삶을 가볍게 하는 방법이다.
언제든 훌쩍 떠날 수 있고,
또 그 반대도 가능하다.
원하는 순간엔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인형의 집>에서 집을 떠난다고 선언한 노라에게 남편은 묻는다. "지금 당신은 당신의 가장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고 있는 거야." 그러자 노라가 다시 질문을 던진다. "저의 가장 신성한 의무가 뭐라고 생각하시는데요?"


헬머(남편): 내가 그걸 꼭 말해 줘야 알겠어? 당신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의무 말이야.

노라: 제게는 그에 못지않게 신성한 다른 의무가 있어요.

헬머: 아니, 그런 건 없어. 대체 그런 의무가 뭐야?

노라: 제 자신에 대한 의무요...

헬머: 어린애 같은 소리만 하는군. 당신은 당신이 사는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노라: 네.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제부터 알아보려고요. 누구의 말이 옳은지, 세상과 저 둘 중에서요.


인생에서 정답은 없다. '인형의 집'에서 여행 가방 하나 없이 집을 떠나는 노라 앞에 어떤 인생이 닥쳐올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다. 행복할 수도 있고 또 불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노라의 말처럼 지금부터 우리는 '알아봐야 한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어떤 게 진정 나를 찾는 길인지,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인지. 결국 여행 가방이 가벼워지면 삶은 그만큼 가벼워진다. 삶이 가벼울수록 자유의 날갯짓은 더욱 커져갈 것이다. 누구의 말이 옳은지, 세상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그걸 알아내는 방법은 결국 가보는 수밖에 없다. 자유가 그것을 가능케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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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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