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6)
50대 나이란 참 애매한 부분이 많다. 뭔가 많은 걸 갖은 것 같기도 하고, 또 뭔가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서 막상 뭔가를 마구 질러댈 수도 없는 시기다. 10년 단위로 인생을 정리한 동서고금의 지혜를 미뤄서 이야기한다면 하늘의 뜻을 헤아릴 줄 아는 시기이지만, 인류의 생명주기가 길어진 만큼 과거 40대 정도 위치로 그 중심을 이동해서 생활을 하는 것도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튼 50대 중반으로 돌파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 중에서 가장 강렬한 것은 '아쉬움'과 '두려움'이다. 아쉬움이라는 게 당연히 과거를 향해 있다면, 두려움은 정확히 그 반대, 미래를 향한다. 과거에 못한 것들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거나, 다시 뭔가를 해보고 싶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발목을 잡는다.
어느 정도는 호르몬의 작용도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혈기 왕성하게 뛰어다니던 젊은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호르몬이 떨어졌을 테니까. 그런 점에서 생식 능력과 혈기왕성한 도전 정신이 일치하는 것은 참 오묘한 조화인 것 같다.
한국을 떠난 지 5개월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애매한 시간이다. 그런 애매모호함을 즐길 줄 아는 것도 50대 주는 즐거움이다. 아쉬움과 두려움 사이에 낀 다음부터는 그런 애매모호함에도 긴장이 있고 짜릿한 쾌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할 만한 일은 못 된다.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생각만 길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친구들 소식이 하나 같이 '뭘 해보긴 해야 할 텐데...', '막상 저질러 볼까 생각해도 일이 틀어졌을 때 걱정 때문에...'. 아직은 자식들 학비 걱정에다 노후 생활에 대한 보장 등 고민할 것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정년퇴직하고 제일 부러운 게 꼬박꼬박 연금 나오는 공무원들이라고 하는 소리가 유행가 가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 50의 중반을 돌파하는 친구들에게도 그런 고민이 어찌 남의 일일 것인가.
그런데 이걸 개인이 아니라 전체로 놓고 보면 정말 걱정이 앞선다. 국가와 민족이란 단지 해보다 그만두고 접어버리는 구멍가게가 아닐진대, 당연히 가족과 이웃, 사회 공동체의 영속성이 필수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현실적인 두려움, 정확히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보다 미래에 대한 현실적 불안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아직 꿈틀거리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들 사이에서 돌파구를 찾을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
그걸 사회나 국가가 해줄 것이라 기대하지 말자. 그냥 우리 스스로 해결해야 할 문제다. 깨알 같은 개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국가가 만들어지듯이, 강물이 모여 바다로 흘러가듯이, 현재의 50대가 지닌 과거와 미래 사이에 낀 문제 역시 개인적인 차원에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야 더 큰 흐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면서 오늘 아침, 문득 '가진 것 없는 중년이여, 글과 말로 노년을 준비하자!'라는 구호가 떠올랐다. 생각해보면 글과 말이란 사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인생에서 찾아온 큰 변화들은 글이나 말로 시작된 것들이 아니었을까. 글과 말은 사상을 표현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며, 사상은 인간의 정신을 지배하고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따라서 글과 말이야말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근본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좋은 말, 좋은 글을 접할 때, 우리는 '사람의 온도'가 바뀌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무엇보다 '말과 글'은 큰돈이 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발목 잡힐 일도 없다. 무엇보다 '말과 글'은 자신이 50년 동안 살아온 모든 경험을 응축시킬 수 있는 폭발력을 지닌 커다란 가능성이다. 자신들이 살아온 실패와 성공의 경험을 후대에 나눌 수 있는 긍정성이 있다. 무엇보다 '말과 글'은 몸을 부대끼기에 적합하지 않은 50대들에게 차분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며 정신세계를 풍부하게 만들어 주기에 적합하다.
그러니 한번 그것이 무엇이 됐든 '말과 글'로 시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메이지 유신이 한창일 때, 일본의 정신세계는 대단했다. 그들은 '세상의 모든 책을 번역하라'는 천황의 명령을 받아서 말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책들의 번역에 나섰다. 그렇게 우수한 지적 자원을 확보했다는 것도 놀랍고, 그렇게 진짜 세상의 모든 책들을 번역하겠다는 기세로 세상을 향해 돌진했다는 정신세계가 놀랍다. 그 시기는 중국의 지식인들이 정의보다 이익에 굴복하고, 조선의 선비들, 관료들이 명나라와 성리학의 법통을 이어받겠다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을 때다.
이처럼 한때 세상을 지배했던 나라들의 힘은 항상 '말과 글'에서 나왔다. 국력의 원천이었고 품격의 시작이었다. 미국의 정치가 말의 정치로 시작해서 설득과 타협으로 끝나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그것이 정치가 정상 작동되는 방식이다. 그것이 정치가들이 수리수리 마하수리하면서 표 계산이나 하고 다니지 않는 이유다. 그것이 정치가들이 끝까지 공부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세상을 지배하는 말과 글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알아야 하고, 국민들을 말과 글로 설득하고 그들의 온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 변한 사람의 온도는 한번 변하기 시작하면 무섭게 변하며, 그렇게 변한 온도는 두 번 다시 변하지도 않는다.
물론 우리가 정치가가 되자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말과 글도 그렇게 사람들의 온도를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우리들의 온도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결국은 사람의 인생에서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것은 미래와 비전에 대한 자기 확신, 자신감이기 때문이다.
그냥 나는 그렇게 믿고 살아볼 생각이다. 그런 믿음으로 50대 중반을 돌파해볼 생각이다. 뭐가 불쑥 튀어나올지는 모르지만, 그런 믿음 하나만으로도 미래에 대한 막연함, 그 절반은 사라지는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믿으며 오늘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글들로 하루를 시작한다. 자신을 믿는다는 말 한마디로 오늘 하루를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그런 글과 말들이 모여 생각과 정신이 된다. 강물이 모여 바다로 이어지듯이...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