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을 일구기 위해선 먼저 도구부터 장악하라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5)

by 김덕영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밭을 일구기 위해선 먼저 도구부터 장악하라''밭을 일구기 위해선 먼저 도구부터 장악하라'

돌이켜 보면 내 인생은 '도구 장악'의 역사였다. 무엇을 하든 본능적으로 그 일에 필요한 도구부터 장악했다. 1989년 대학 최초의 TV 방송국을 만드는데 대학 당국으로부터 돈 한 푼 안 받고 시작할 수 있었던 배경도 따지고 보면 결국은 카메라를 먼저 장악했기 때문이었다. 비디오 편집의 기본 개념조차 없었던 시절 두 대의 비디오 데크를 선으로 연결해서 수동적으로 편집을 하던 조악한 상황에서도 먼저 비디오 데크부터 손에 쥐었다. '1인 출판'으로 책을 만들 때도 역시 도구 장악의 역사는 계속됐다. 2013년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라는 책을 만들 때, 그 책은 아래아 한글로 원고를 편집했다. 6년째 내 개인적인 베스트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가 처음 출간될 때 아래아 한글로 편집되었다는 이야기는 이제는 전설이 되고 있는 기분도 든다.


2013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이룬 2016년 개정판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들의 이야기> (다큐스토리)


아무튼 논리적으로는 이렇다. 도전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기존의 익숙함으로부터 멀어져야 하며,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이란 결국 '낯선 것'을 새롭게 찾아내는 일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우리 인생에서 도전적으로 시도해 볼 수 있는 낯선 것을 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비용, 즉 수업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남에게 돈을 지불하고 뭔가를 배울 수도 있지만, 나의 경우엔 스스로 배우는 과정을 선택했다. 그래서 도구를 장악하는 일이 선결과제였다. 학원이나 타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배워나가는 과정은 시간이 좀 더 걸리고, 과정 자체가 순탄치 않다는 단점이 있지만, 남에게 의존하는 배움에 비할 수 없는 장점들이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튼튼한 뼈대가 마련된다는 점이다. 권투를 처음 시작하는 수련생이 점점 훈련을 해나가면서 맷집이 세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상에 맞서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자신감이 증폭된다. 능력과 재능이 있지만 도전할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해서 늘 남의 뒷전에 머물러야 했던 사람들에게는 적극 권장하고 싶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남에게 배우는 것, 학원에서 수강료를 내고 배우는 것보다 불편하고 왠지 돌아가는 듯한 느낌도 들겠지만, 그런 낯섦을 극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불안감이란 따지고 보면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어떤 환경에 놓였을 때 발생하는 우리 내부의 감정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 역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그런 불편함 역시 자연히 사라진다. 누구나 치과에 치료를 받으러 가기 전에 불안감이 앞선다. 하지만 치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에게 치과의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을까. 그런데 그들이라고 처음에 불안감이 없었을까? 결국엔 낯설고 불편한 환경에 익숙해지는 순간 불안감도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 세상에 맞서 맷집을 키우는데 도구를 먼저 장악하는 일은 엄청난 힘이 된다. 자신만만하게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장애물들을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든든한 자산이다. 헐리웃의 유명한 영화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들이 어렸을 때부터 16mm 혹은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장난스럽게 촬영과 편집을 하면서 유년기를 보냈다는 이야기들은 도구 장악이 갖고 있는 강력한 힘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또 하나 장점은 불로소득(?)이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 인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에서 영어가 늘었다. 2013년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혼자서 인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자연히 외국 사이트에 자주 들어갔다. 유튜브는 동영상까지 시연해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좋은 학습 도구였다. 그렇게 매일매일 일상에서 영어를 접하고 모르는 것은 번역을 하면서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서너 달을 그렇게 보내자 인디자인 실력만큼이나 영어 독해력과 듣기 능력이 향상되는 것을 경험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잘 못하는 것일 뿐이다.'


밭을 일구듯 도구를 스스로 만들고 장악하는 일은 창조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교정해준다. 그것이 또 하나의 도구 장악이 우리에게 주는 장점이다. 스스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되는 일은 없다. 무엇을 하든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낯선 것들이 주는 어색하고 불편한 시간의 터널을 거쳐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생각의 힘이다. 안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단지 남들보다 잘 못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을 고쳤다. 그런 생각의 차이 하나는 나중에 아주 큰 결과의 차이로 이어졌다.


카메라 촬영의 기본을 모른다고 촬영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남들보다 잘 못한다'는 것이 문제가 됐다. 기준을 남이 아니라 나에게 맞추자 부족한 촬영 기술은 나 스스로 넘어야 할 장벽이 됐다. 주눅들 일이 아니란 뜻이다. 의욕적인 도전의 과제가 되었다. 책을 만들기 위해 '인디자인'이라는 편집 프로그램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사실 처음에 디자인의 개념이 부족한 나와 같은 경우에는 단어조차 생소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낯선 것에 적응하는 시간은 한두 달이면 충분하다. 여기서도 기준점을 잡는 것이 중요했다. 인디자인을 배우는 과정에서는 한 편의 책을 편집하는데 걸리는 '시간'과의 싸움이 관건이 됐다.


실제로 프로페셔널하게 일을 하기 위해서는 디자인의 정치함, 창의성 등이 중요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뭔가 세련되었다는 느낌을 주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결국 남의 것을 얼마나 비슷하게 흉내 낼 수 있는가 여부다. 어느 시기나 유행을 하는 디자인이 있다. 그 유행하는 디자인 컨셉을 자신의 콘텐츠에 맞게 적절하게 응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미 프로페셔널한 직업 세계에서도 이런 '모방'은 일상에서 이뤄지고 있다. 창조란 결국 '모방'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남의 것을 똑같이 베끼는 '표절'만 아니라면 모방하고 창조하는 작업은 비난받을 일도 아니다.


솜털을 벗고 하늘 저 멀리 비상하려는 어린 독수리에게도 날기 위해선 먼저 중력을 거슬러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날개가 완성되어야 한다. 결국 하늘로 떠오를 수 있는 양력의 힘날개의 크기에 비례하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원리가 아닐까.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선 글을 쓸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한다. 자신만의 앵글로 세상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선 카메라 한 대 정도 있어야 하듯, 영상으로 뭔가를 이야기하는 다큐멘터리 감독이나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선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도구'를 먼저 장악해야 한다. 지금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엔 도구를 장악하기 위한 일상의 노력이다. 그래서 '글쓰는 사람이 미래를 얻는다'라는 믿음은 지금 이 순간에는 나의 신앙이 된다. 믿음이 있는 순례자가 낯선 길을 가듯 쓰고 또 쓴다.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래서 글쓰기가 즐거운 일상의 경험이다. 낯선 곳을 향한 여행과도 같다.


도구를 장악하면서 얻는 즐거움은 남에게 배우거나 학원에서 배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희열을 안겨준다. 그것이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도구 장악'의 이유다.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에는 뭔가 강렬한 즐거움이 있다. 크건 작건 우리 인간은 깨달음을 통해서 자아를 발견한다. 자기 인생의 목적을 발견하고 확인한다. 그건 우리가 지능을 지닌 호기심 가득한 존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남이 가르쳐주는 것, 학원에서 정해진 학습의 과정을 걷는 것보다 스스로 모른 것과 부딪치면 낯선 것들을 극복하는 과정은 깨달음 그 자체의 과정이다. 전자가 누군가 편안하게 죽을 떠먹여 주는 것이라면, 후자는 말 그대로 야생의 날것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야생의 본능을 가슴에서 확인하는 과정에서 세상과 맞설 용기가 생긴다. 주체적인 삶으로 세상을 살아나가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친다.


아이슬란드라는 낯선 곳에 정착하기 위해 지금 나는 다시 밭을 일구고 있다. 그 밭에서 뭐가 자랄지는 아직 모른 일이다. 감자가 나올지 호박이 자랄지 아니면 밭을 일구다 금덩이가 나올지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땅 밑에 뭐가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밭을 캐는 작업은 고되고 낯설다. 하지만 바람이 지나가듯 언젠가 이 낯선 순간들도 사라질 것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서 내가 요즘 새롭게 배우는 것은 드론과 짐벌이라고 하는 스테디캠처럼 촬영할 수 있는 도구다. 두 가지를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비용도 지불했다. 하지만 항공 촬영을 위해서 헬기를 띄우고, 역동적인 장면을 찍기 위해서 스태디캠을 빌렸던 것에 비하면 거의 천문학적인 비용의 절감이다. 기술은 끊임없이 진보하고 있고, 작고 간편해지면서 비용도 엄청나게 저렴해지고 있다. 창조적인 삶을 살고 싶은 개인들에게는 정말 멋진 세상이 열리고 있다.


드디어 어제는 아파트 주차장에 나가 드론을 하늘에 날렸다. 파란 하늘 위 올라가는 드론을 보며 마음도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높이 올라간 드론에 담길 낯선 유럽의 역사를 상상하니 살짝 가슴이 뛰는 게 느껴졌다. 그건 도전하는 삶이 주는 일상의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한 글 추가!


글이 나가고 누군가 말했다. 이 글을 읽고 "뒷걸음질 치는 자신을 다시 일깨워주었다"고...

글 쓰는 이유, 그건 누군가의 인생에 잠시 머물다 훌쩍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글 쓰기의 매력이다. 그가 훗날 어떤 사람이 될까? 그걸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인생에선 뒷걸음질은 누구나 하고 나도 예외는 아니다. 때론 헛발질도 하는데 뭐...

곧 뒷걸음질 멈출 이름도 모르는 그분에게 진심으로 감사한다.


첫 드론 테스트 비행 성공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아이슬란드 정착 생활을 준비하며 쓰고 있는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글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쓰일 것입니다. 일상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고 공감하신다면 널리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책들은 현재 시내 유명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구매해주시는 책들은 다큐멘터리 제작과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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