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아직 적응하지 못한 것일 뿐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6)

by 김덕영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낯선 것은 두려움이 아니다. 적응 되지 않은 흘려보낼 시간들일 뿐...

(전편에 이어서 2편)


"멕시코에서는 말이죠. 택시강도가 뭔지 아십니까? 여기서는 택시강도가요, 우리처럼 택시기사를 칼로 위협하고 돈을 뜯어가는 강도가 아닙니다. 여기서 택시강도란 택시기사가 손님을 태운 뒤에 어디 으슥한 곳에 데리고 가서 돈을 뜯는 걸 말해요. 택시드라이버가 강도로 돌변한다는 뜻이에요.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죠…?"


23시간이나 걸려서 멕시코시티에 도착했다. 물론 취재 때문에 온 곳이지만, 그냥 고분고분하게 일만 끝내고 돌아갈 수는 없는 일. 마지막 남은 하루를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해 쓰기 위해 멕시코시티 탐방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다 갑자기 호텔 문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고 있던 취재처 현지 주재원들을 만났다. 그들 입장에서는 '조용히 다음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르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내가 혼자서 멕시코를 여행하겠다고 배낭을 둘러메고 나온 것이다. 그것이 호텔 문 앞에서 논쟁이 시작된 이유였다.


길을 모르는 여행객들이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게 택시인데, 그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가 강도라니 할 말 다한 것 아니겠는가. 택시가 그 정도인데 다른 건 어떠겠느냐는 걸 은근히 강조하는 눈치다. 이럴 어안이 벙벙하다는 말은 이럴 때 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며칠을 걸려서 준비한 여행인데, 확인도 되지 않은 택시강도 얘기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계획대로 모든 취재가 끝이 났고, 나에게는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하루의 여유가 있다. 그 시간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어야 했다. 정체도 불분명한 뜬소문 같은 택시강도 하나 때문에 그 모든 계획을 포기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정 그렇게 택시강도가 걱정이 된다면 택시를 타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요! 결국 그렇게 합의를 보고 호텔 문을 빠져나왔다.


멕시코의 서늘한 가을 아침 공기가 살갗에 닿았다. 솜털 같은 작은 이슬방울들이 피부에 달라붙는 느낌이 들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와 비교하면 멕시코시티의 아침 기온은 일교차가 20도 이상 차이가 난다. 그렇게 더운 나라다 보니 실내와 밖의 온도 차이가 심해서 일어난 현상이었다. 그런데 택시 강도 때문에 심리적으로 위축된 탓인지 살갗에 닿는 아침의 서늘한 기운이 왠지 모를 불안감으로 이어졌다. 살짝 겁도 났다.


그래서 일부러 지갑도 빼놓고 달러 몇 장하고 동전 몇 닢만 들고 나왔다. 돈이 될 만한 물건들을 모조리 호텔 방에 두고 나왔다. 분명 어느 정도 겁을 먹고 있었게 분명하다. 말도 통하지 않고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 혈혈단신으로, 현지인들조차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프리다 칼로의 아틀리에를 찾겠다고 나섰으니... 쉽지 않은 길이 될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쨌든 시작한 걸음이다. 그냥 가보는 수밖에. 큰 호흡 한번 하면서 첫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생각을 만든다.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일이 일어나고, 좋은 생각을 하면 그 반대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 단순하지만 그 한 가지 생각이 인생을 바꿔놓기도 한다. 불안을 떨쳐버리는 데도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었다.


배낭에 넣어두었던 물병을 꺼내 한 모금 마셨다. 열대 야자수들이 늘어선 거리로 나오자 밝은 녹색과 하얀색이 조화를 이룬 멕시코 택시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달려갔다. 어제 귀가 따갑게 조심하라는 말을 들었던 바로 그 멕시코 택시들이었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택시 안에 타고 있는 기사들은 그저 평범한 아저씨들 뿐이었다. '하긴 내가 택시 강도요, 하고 이마에 써붙이고 다니는 사람은 없겠지'. 하지만 결국 택시는 타지 않기로 했다.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는 법, 일단은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일 먼저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덜컹거리는 낡은 시내버스였다. 당시 버스표가 한 장에 100원이었다. 믿기지 않는 가격이다. 택시 대신 선택한 첫 번째 교통수단이 덜컹거리는 100원 버스였다. 사실 그 버스는 승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전용버스는 아니었다. 색 바랜 베이비 블루 계통의 페인트 칠이 벗겨져서 녹슨 흔적들이 곳곳에 보이는 낡은 승합차를 개조한 버스였다. 버스 안에는 좌석이 창가에 일렬로 쭉 붙어 있어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앞사람의 얼굴을 마주 보고 가야만 했다.


잠시 후 포장이 제대로 되지 않은 도로로 들어서자 버스는 덜컹거리기 시작했다. 출렁출렁 버스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왼쪽 오른쪽으로 몸통을 번갈아 흔들며 똑같은 율동을 하는 모양이 어찌나 우습던지, 그만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낯선 이방인의 웃음에 앞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웃음이 나오는 눈치다. 웃음도 전염이 된다더니 그 말이 맞는 말 같았다. 그날 흔들리는 작은 마을버스 안에서 그렇게 나는 진짜 멕시코의 평범한 사람들과 처음 만났다. 그들 중에는 밀짚 모자를 쓴 꼬마도 있었다. 짚으로 엮은 모자 올이 너덜너덜 빠져있던 모습이 꼭 앞이 빠진 제 모습과 얼추 비슷하게 닮았던 꼬마 아이로 기억이 난다. 아시아에서 온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보는지, 버스 안 시선은 모조리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것도 마주 보고 앉은 자리니 대충 봐도 한 예닐곱 명, 열네 개의 검은 눈동자가 일시에 나를 향했다. 딴 사람이 봤으면 무슨 눈싸움 대회라도 온 줄 알았을 게다.


그렇게 흔들리며 가길 20여 분, 어느 이름 모를 버스 정거장에 다다르자 버스기사가 큰 손짓을 해가며 내리라는 시늉을 지어 보였다. 지도에 나온 바로 그 거리였다. 그렇게 버스에서 내리자 또 다른 낯선 거리가 나를 맞이한다. 교차로에서 방향을 가늠하느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순간 내 앞으로 원색으로 물든 거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노랗고 빨갛고 파란 형형색색 꽃들이 아침 안갯속에서 골목길을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 아침 물을 머금고 활짝 피어난 길거리 꽃가게들의 싱그러운 꽃들, 남미의 정열과 정취를 가득 담은 이름 모를 열대의 식물들, 어쩌면 프리다 칼로는 아침마다 이 거리에서 꽃을 한 다발 사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프리다 칼로의 아틀리에로 향하던 길에 마주쳤던 이국적인 꽃들로 가득했던 거리의 모습은 아직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지도에 표시된 그녀의 아틀리에로 다가갈수록 모든 세상은 낯설고 새롭기만 했다. 그렇게 지도의 한 점 한 점을 이어가다 마지막 마침표를 찍듯 나타난 프리다 칼로의 아틀리에, 그녀가 정열적인 사랑을 나눴다는 연인이자 사상적 동지였던 디에고 리베라. 그리고 또 한 명의 연인 트로츠키가 머물렀던 바로 그 역사의 현장이었다. 공간은 결국 사람에 의해서 규정되는 것인가 보다. 역사의 현장엔 역사적인 인물들이 남긴 흔적들이 교차한다.


프리다 칼로의 아틀리에는 작고 소박하고 깨끗했다. 여전히 멕시코의 서늘한 아침의 기운이 실내에도 감돌고 있었다. 너무 이른 탓에 관람객이라고는 오직 나 한 사람뿐, 또각또각 마치 하이힐을 구두 소리처럼 나무 바닥 위로 발자국이 찍혔다. 벽면의 그림들과 사진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린아이 몸통 하나쯤 들어갈 수 있는 작은 작은 나무 계단이 눈에 띄었다. 무슨 다락방으로 올라가는 계단 같았다. 발걸음을 계단 위로 옮기자 오래된 나무 계단이 공포 영화에서나 나올 듯한 소릴 내기 시작했다.


아틀리에는 남편이자 예술과 사상의 동지였던 디에고 리베라의 아틀리에와 나란히 서 있다. 두 건물 사이에 연결된 작은 통로가 특이했다. 서로 개성과 공간을 존중했다는 게 느껴졌다.


계단은 소라 속을 걸어가듯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위로 행해 있었다. 짙은 밤색 페인트가 칠해진 나무 계단을 계속 돌아 오르자 이윽고 창문을 통해 강렬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 맨 윗 계단에 발을 올려놓는 순간이었다.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깜짝 놀랐다. 눈을 부릅뜬 프리다 칼로가 계단에서 올라오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등골에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아무도 없어야 할 공간에 마치 그녀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낯선 방문객은 누구나 마지막 계단에 발을 올리는 순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프리다 칼로의 사진과 정면으로 눈동자를 마주치게 된다. 일부러 그렇게 설치를 한 것이리라. 프리다 칼로 식의 기괴한 환영인사라고나 할까.


사진 옆으로 액자에 담긴 사진들이 이어졌다. 그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직후 관 속에 누워 있는 장면도 있었다. 그것이 세상에 기록된 그녀의 마지막 얼굴이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이상한 곳이 한 곳 있었다. 콧수염이었다.


'어라. 그녀의 코 밑에... 콧수염이 있네?'


믿어지지 않았지만 멕시코의 에바 페론, 프리다 칼로의 코밑에는 수염이 나 있었다. 수염을 기른 여자 화가?! 그림 속 그녀의 염세주의는 극단적이고 처절하다. 하지만 그녀는 부정의 부정이 더 큰 긍정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녀의 처절한 염세주의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으로 느껴진다. 모든 것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잘라버렸다. 그녀는 그림에서 갓난아기를 젖 먹여 키워야 할 숙명적인 여성의 가슴까지도 잘라버렸다. 그렇게 여성으로서의 자기를 버리려고 했던 그녀, 붉은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선혈 속에서도 보는 사람은 그림을 외면할 수 없다. 처연하다고 하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다. 삶을 회의했고, 희망이란 사치처럼 여겼다. 하지만 부정의 최극단에 서 있었기에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희망을 바라볼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느끼는 프리다 칼로의 역설이었다.


"나는 두 번 다시
이 지구라는 별에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그런 말을 남겼다. 세상을 향한 마지막 말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였다. 그것도 '지구라는 이름이 붙은 별'이다. 그럼 죽은 뒤에 또 어디론가 또 다른 별을 찾아 여행이라도 떠난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삶에 대한 물음이 계속 이어졌다. 한참을 그렇게 관 속에 들어가 누운 프리다 칼로의 마지막 사진 앞에 서 있었다.


얼핏 보면 평범해 보이기도 하고 가냘파 보이는 나약한 여성이었다. 어떻게 이런 여자가 멕시코 민중의 혁명에 그토록 강한 영향을 끼쳤을까? 어떤 혁명과 이론이 이보다 더 처절할 수 있었을까? 멕시코 민중들의 마음에 불을 댕긴 것은 어쩌면 그녀의 처절한 그림 속에서 인간성을 되찾고자 하는 울부짖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럴 때는 확실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 그저 물 흐르듯 밀려오는 느낌에 몸을 맡기는 것이 상책이다.


여행에서 예술가들의 흔적을 찾는 것은 가장 환상적이고 강렬하고 그래서 가장 오래 남는다. 충격도를 따지자면 박물관에 전시된 소리 없는 유물들에 곱하기 100 정도를 하는 수준이다. 예술가들의 아틀리에는 그렇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노란 나트륨 등불이 하나둘 불을 밝히기 시작하는 어스름한 저녁, 멕시코시티 공항에 있는 나의 호텔방으로 돌아왔다. 이제 진짜 가방을 꾸릴 시간이다. 가방 안에 프리다 칼로에 관한 책을 맨 위로 놓을 생각이다. 올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돌아갈 때는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나만의 숨 가쁜 기억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모두 프리다 칼로 덕분이다. 차곡차곡 옷을 개듯 기억을 정리했다.


날이 바뀌면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난다. 여러 가지 기억들을 선물해 준 멕시코. 그리고 멕시코시티 국제공항. 어쩌면 '택시 강도' 얘기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평범하기만 멕시코의 택시 아저씨들 표정 때문에 더 잊지 못할 것이다. 덜컹거리는 100원짜리 버스 안에서 만났던 순박한 아즈텍의 후예들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들 덕분에 내 영혼이 1밀리라도 더 성장하지 않았을까. 여행이 주는 선물이다. 멕시코시티의 고도가 높다는 것을 증명하듯 마지막 색다른 경험 하나가 나에게 선물처럼 다가온다.


"이제 이륙합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해주세요."


비행기 안에서 승무원들이 바삐 움직이며 이륙 준비를 한다. 엔진 소리가 들리고 비행기가 활주로 위를 달린다. 부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땅 위로 솟구친다. 몇 분 후 감고 있던 눈을 지그시 떴다. 활주로를 벗어난 비행기는 분명 고도를 높이고 있을 텐데, 창밖으로 내다본 멕시코의 붉은 대지는 점점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런 착시현상을 보여주는 건 바로 멕시코시티가 해발 2천 미터 이상의 높은 고도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행기는 이륙을 한 뒤 정상적인 고도를 찾아가며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있지만, 주위의 산들은 탑승객들에게 땅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느낌을 준다. 물론 멕시코에 도착할 때는 정반대의 느낌을 줄 테고. 두 가지 모두 멕시코시티만의 묘한 즐거움이다.


아디오스 멕시코, 아디오스 프리다 칼로!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 현재 아이슬란드 정착 생활을 준비하며 쓰고 있는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모든 글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느낀 것들을 중심으로 쓰일 것입니다. 일상에 매몰된 삶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을 읽고 공감하신다면 널리 공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쓴 책들은 현재 시내 유명 서점과 온라인 서점에서 구입하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구매해주시는 책들은 다큐멘터리 제작과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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