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9)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한국을 떠나 독일 레겐스부르크에 도착한 게 1월 6일이었다. 지구를 반 바퀴 정도 돌아서 지금은 베트남 하노이에 와 있다. 오늘 날짜로 4월 8일이다. 석 달이 넘은 시간이다. 그동안 거쳐간 나라만 10개국이 넘는다. 북한의 전쟁고아들에 관한 다큐멘터리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 시작한 여정이었다. 폴란드,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를 거쳐 아이슬란드와 벨기에, 프랑스까지 여정은 계속 이어졌다.
사람은 일단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서 있던 자리를 제대로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번잡한 도시 공간 속에서 55년을 살아오면서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평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쉰다섯 살, 결코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모험적인 여정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나'에 대한 간절한 목마름 같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뭔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자에게 기회는 찾아오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기회를 얻었고,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걸고 이번 여정을 시작했다. 나의 여정이 도전이라는 이유는 모든 걸 걸고 시작한 여정이었고, 어떤 보상이나 결과에 대해서 아무런 기대도 갖지 않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통틀어서 스스로 가장 용감한 선택이었다고 느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서 석 달 동안의 여독을 풀었다. 다행히 오랜 친구가 있어서 다른 어떤 곳보다 마음 편하게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첫날 같이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친구가 말을 꺼냈다.
"요즘 베트남이 경제적으로 뜨고 있다 보니까, 여기에 사업하겠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막상 들어 보면 다들 자기 것을 손에 쥐고 놓지를 않으려고 해. 자기는 관리만 할 테니, 돈은 나보고 대라는 식이지. 그런 식으로 무슨 사업을 한다고..."
한국 경제가 안 좋다 보니, 어딜 가나 교민 사회에서 비슷한 소리를 듣는다. 외국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려는 4,50대 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그런데 다들 안전을 최우선으로 삼다 보니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를 않는다. 작은 가게를 내건, 공장을 짓건, 규모가 작던 크던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안전한 것들만 찾게 되고, 결국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속된 말로 '간만 보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것'이다.
세상 이치가 그렇지만 무슨 일이든 자신의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죽기로(?) 파기 시작하면 사실 안 될 일이 없다. 1970년대와 80년대 해외 이민을 나갔던 우리 부모 세대들이 무슨 안전한 곳만 찾아서 다닌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온갖 허드레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일에도 용기를 내서 도전장을 냈다. 결과는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비록 힘들고 고단한 삶이었지만, 그들 덕분에 해외 이민의 뿌리가 내려졌다. 해외 이민 2,3세대들이 번듯한 직업과 직장을 얻어서 외국에서 번듯하게 살게 된 것도 어찌 보면 그들의 용기와 결단력 덕분이다.
삶에 용기와 결단력을 키우는데 사실 여행 만한 게 없다. 낯선 곳에서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는 생활의 조건들과 마주하는 것은 새로운 자신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몸은 움직이지 않고 머릿속으로 생각만 깊은 사람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삶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여야 하고, 앉은자리에 정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적인 생활이 필요하다. 적어도 중, 노년의 삶을 주도적으로,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면 한 자리에 머물지 말고 끊임없이 새로운 경험과 마주해야 한다. 그게 중, 노년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용기이며 지혜가 아닐까 싶다.
석 달 동안 여정을 이어가면서 여행의 경비를 아끼기 위해서 어느 곳을 가든지 버스를 탔다. 지하철은 몰라도 버스는 사실 여행자들이 낯선 장소에서 이용하기 어려운 대중교통 수단이다. 나 역시 그랬다. 어디서 타야 할지,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제대로 알 수 없는 버스를 이용하기란 여간해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변했다. 스마트폰으로 적어도 내가 있는 곳, 이동하는 상황을 늘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버스를 타보기로 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세상이 참 편리해지고 안전해진 것이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원하는 목적지를 정하고 이동 수단을 선택하면 타야 할 버스 노선과 버스 도착 시간, 출발 시간까지 자세한 정보가 제공되었다. 버스를 타도 걱정이 없는 건 이동 경로가 그대로 내 스마트폰에 기록되기 때문이다. 값비싼 택시나 목적지 부근에서 다시 한참 동안 걸어가야 하는 지하철과 달리 버스는 일단 비용이 가장 저렴하고, 목적지에 가장 근접한 장소에 내려준다. 덕분에 석 달 동안 여행 경비를 많이 절감할 수 있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무조건 취재를 위해서는 택시를 타거나 자동차를 렌트해야 했다. 그것에 비하면 얼마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동했는지 모른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이미 스마트한 세상은 휴대폰밖에 광범하게 펼쳐져 있었다.
나처럼 개인 창작을 꿈꾸는 사람에게는 정말 필수적인 아이템들이 많이 증가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는 말할 것도 없다. 나라 별로 자신들의 실정에 맞는 애플리케이션들이 개발되어서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손쉽게 해 준다. 폴란드에서 시작해서 프랑스까지 이동하는 데 사용했던 Trainline은 유럽의 열차들을 실시간으로 연결해준다. 심지어 도심에서 3,40킬로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중소도시들을 기차로 이동하는 데는 필수적이다. 예약하고 결제하고 모든 게 몇 분만에 간편하게 끝났다. 루마니아의 부큐레시티에서 불가리아의 소피아로 이동할 때는 항공편이 비싸서 Flixbus를 이용했다. 8시간 야간 버스였지만 요금은 2만 원대 불과했다. Flixbus는 브뤼셀에서 파리로 이동할 때도 이용했는데, 요금은 불과 1만 원 대였다.
말 그대로 '스마트한 여행의 시대'다. 모바일 네트워크의 발전, 효율적인 애플리케이션이 속속들이 개발되면서 여행 또한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다. 돈 없는 작가, 크리에이터들이 제작비가 부족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는 모두 가능한 세상이다. 그것이 창작자들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준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펼쳐져 있는 셈이다.
도전적인 삶을 살고 싶다면, 낯선 곳에 정착해야 한다. 일단 그 말을 가슴에 품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계속해서 길을 떠날 생각이다. 낯선 곳에 설 때는 늘 두렵고 긴장된다. 동서남북이 어딘지도 모르는 그런 낯선 곳에 서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간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두려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런 두려움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모두가 스마트한 세상, 스마트한 여행이 주는 혜택이고 선물이 아닐까.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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