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landic Informality, 비격식 사회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13)

by 김덕영

하반기 완성을 목표로 두 번째 다큐멘터리 제작에 돌입하고 있다. 제목은 <작지만 강한 축구>, 영어로는 <Small but Strong>이라고 정했다. 국토 면적만 놓고 봤을 때, 세계에서 140번째에 해당되는 벨기에가 축구의 강호들을 물리치고 줄곳 세계 1위를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도봉구 인구 정도에 해당되는 인구 35만 명의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가 2016년과 2018년 세계 축구계에 돌풍을 몰고 올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두 가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개월 동안 벨기에와 아이슬란드의 축구를 취재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 작품이다. 제작이 끝나면 축구에 관심 있는 아시아 국가들에 판매할 계획이다. 솔직히 어디에 가서 누굴 만나고 어떻게 팔아야 할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그래서 막막하고 뿌연 안갯속을 걷는 기분도 든다.


그래도 뭐 이 과정 자체가 인생 공부가 될 것이라 믿는다. 평생 공부, 도전적인 삶, 낯선 곳, 요즘 글을 쓸 때 이런 단어들이 자주 튀어나오는 걸로 봐서는 그만큼 부딪치는 어려움들도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의 나약함, 불안함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지쳐서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도 두렵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맷집을 키우는 중이다.


아무튼.


불과 얼음의 나라, 신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한번 시험 삼아 만들어 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특이한 나라였다. 하지만 이국적인 자연환경보다 더 신기한 것은 바로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인포말리티(informality)'였다. 격식이나 형식적인 것들과 거리가 있는 삶의 방식이다. 한 나라의 경제나 문화가 발전하는데 그 나라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식 결정론(?)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이슬란드의 정체성은 바로 이 '인포말리티(informality)'에서 나온다.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아이슬란드에서 공식적으로 축구 클럽에 취재 요청을 할 때의 일이다. 보통은 취재 기획을 담은 공문이나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인터뷰 질문지 등을 보내는 것이 사전에 해야 할 일들이다. 어떤 나라에서는 인터뷰를 위해서 공문을 수십 통 보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아이슬란드에서는 일단 이런 형식적인 서류가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이 전화 한 통, 혹은 이메일이면 충분하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이런 비격식적인 행동은 일상의 생활 곳곳에서 드러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수영장이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의 일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싶다면 수영장에 가보면 잘 알 수 있다. 일단 그 비싼 아이슬란드 물가에 비해서 수영장 입장료는 터무니없이(?) 싸다. 대부분이 시나 정부 예산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도대체 왜 하고 많은 곳들을 놓아두고 수영장을 추천하는 것일까? 이유는 아이슬란드의 비격식적인 생활 패턴을 가장 쉽고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이슬란드 수영장에 가면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영웅들, 정치인, 잘 나가는 경제인, 한 마디로 누구든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와 마치 옆집 사람처럼 쉽게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이런 생활 문화적인 습성은 바이킹 시대 이전부터 내려온 관습적인 특성과 연관되어 있다. 인구가 많지 않고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게 타인의 존재란 자신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것이다. 격식이나 따지면서 생활하기에는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험난했다. 일종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유전적으로도 유사한 집안들끼리 뭉쳐 살았던 아이슬란드인들이다 보니 더욱 타인과 맺는 관계에서 형식 같은 것을 따지지 않게 된 것 같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아이슬란드의 비격식 사회가 오늘날 아이슬란드 축구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취재 과정에서 만났던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특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 삶의 커다란 한 부분 같아요. 모든 선수들이 말 붙이기도 쉽고, 언제나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어요. 물론 유명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누군가의 삼촌이기도 하고, 사촌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종의 아이슬란드 축구팀의 한 부분이 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대학생)


"그것은 마치 하나의 가족 같은 것입니다. 온 나라가 전체가 하나의 가족과 같은 것이죠." (서포터스)


"내일 우리 클럽에 12시에 오면,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인도어 구장에서 축구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축구 클럽 감독)


아이슬란드 대통령을 축구장에서 만날 수 있다? 참 놀라운 일이다. 물론 대통령의 축구하는 모습을 촬영하는 것은 보안 등의 이유로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자연스럽게 아이슬란드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를 증명하듯 얼마 전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피자를 사기 위해서 시민들 사이에서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이슬란드대통령.jpg 도미노피자 앞에서 딸과 함께 주문한 피자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슬란드 대통령

2016년 11월 영국의 '인디펜던스'지는 귀드니 요하네손(Gudni Johannesson)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피자 가게에서 주문한 피자를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진을 하나 공개했다. 그의 얼굴을 알지 않는 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딸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보고 대통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모습은 단지 정치적인 목적을 지닌 행동이 결코 아니다.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2017년에는 수영장에 놀러 가고 있던 남자아이 두 명을 자신의 전용차에 태워서 바래다준 적도 있다.


l_2017041401001998800160341.jpg 대통령 전용차를 얻어 타고 집에 돌아온 아이들 그리고 아이슬란드 대통령


사진 속 주인공은 레이캬비크에 살고 있는 13살 동갑내기 소년들이다. 원래 수영장과 집을 오갈 때는 엄마가 아이들을 데려다주었다. 마침 그날 엄마에게 갑작스럽게 일이 생겨서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대부분 부모들이 스포츠 클럽까지 아이들을 차로 데리고 가는 게 일상이다. 날씨가 춥고 바람이 많이 부는 데다 거리도 멀기 때문이다.


그날 아이들 엄마는 아들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대통령 차를 얻어 타고 수영장으로 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이 장난을 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아이슬란드 대통령이 마침 수영장 앞을 지나다가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한 것이었다. 그날 요한네손 대통령은 아이들이 다니던 수영장에서 열린 수영대회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했던 참이었다. 엄마가 늦는다는 소식을 접한 아이들이 대통령에게 “집에 좀 데려다줄 수 없느냐”고 물었고, 대통령은 흔쾌히 “전혀 문제없다”며 태워다 준 것이었다.


아이슬란드의 '비격식적 관계'를 잘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대통령과 시민들의 관계가 이 정도니 연예인들이나 스포츠 스타 등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인간 대 인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사이에 돈이 많건 유명인이건 그런 격식은 의미조차 없다. 아이슬란드에서 공공 수영장이 중요한 이유는 그런 비격식적인 관계가 그대로 노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코미디언 출신으로 레이캬비크 시장까지 지냈던 욘 그나르는 <새로운 정치 실험 아이슬란드를 구하라>라는 자신의 책에서 수영장에 얽혀 있는 아이슬란드의 비격식 문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를 알고 싶다면 수영장으로 가야 한다. 내가 보기에 수영장이야말로 우리를 한 나라의 국민으로 뭉치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장소이다. 밖에서라면 사람들의 차림새와 외양으로 경제력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에 누가 어느 계층에 속하는지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 온탕에서라면 그런 것은 잊어도 좋다”


the-best-swimming-pools-in-reykjavik-4.jpeg 아이슬란드 공공 수영장 중 하나인 셀트야르나르네스라우그 수영장


이런 덕분인지 2016년 12월 아이슬란드 국민들을 상대로 한 지지도 조사에서 귀드니 요한네손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무려 97%를 기록했다. 경의적인 기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어깨에 힘주고 살아가는 권력자들의 모습만 보아왔던 우리들로서는 정말 신선한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이슬란드의 비격식적 문화는 생활 깊숙이 깔려있는 정서이며 의식이다. 그런 의식은 사회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축구장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운동장에 뛰고 있는 선수가 그냥 남이 아니라 내 친구, 동생, 형이 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그런 친밀한 사회, 하나로 뭉칠 수 있는 내밀한 공동체 의식이 아이슬란드의 축구를 강하게 만들고 있다.


과연 지금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의식은 무엇일까...? 아니 있기라도 하는가...


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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