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가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

국가기억원(IPN)과 봉기 박물관(Uprising Museum)을 가다

by 김덕영

어느 나라나 과거 청산은 새로운 시대를 향한 중요한 과제다.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고 사람을 인선한다. 정치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과거'와 '역사'는 다르다. 지나간 시간들에 대한 현재의 포괄적 해석이 '과거'에 대한 인식이라면, '역사'란 그보다 더 체계적이고 과학성을 띤다. 역사를 연구하는 전문적인 학자, 연구원, 저널리스트, 작가들이 역사를 연구하고 현재적 의미를 되새기려는 노력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역사란 미래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판단과 전망이 정확해야 한다. 감상적으로 끝나지 않아야 하고, 때로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접근 역시 도덕적이어야 한다. 역사에 대한 자신의 도덕성을 잃어버린 역사가가 역사를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됐든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에 대한 인식 역시 정치적인 입장은 늘 이념적인 이해에 따라 갈라진다. 경제적인 계급관계에 의해서도 역사는 해석을 달리한다. 이런 상황이니 권력을 누가 잡느냐에 따라 역사에 대한 해석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과거 청산'이라는 이슈가 정치적 논쟁에 휩싸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때론 전가의 보도처럼 권력의 검이 될 수도 있고, 병든 환자를 살리는 의사의 메스가 될 수도 있다. 선택은 누가 할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결국은 그 사회의 구성원의 몫이다. 눈을 크게 뜨고 냉정하게 역사를 판정하도록 감시의 눈초리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역사를 올바르게 기록에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폴란드의 과거 청산은 '국가기억원(IPN)'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름도 우리 같은 과거 청산 위원회 같은 살벌한(?) 개념과 달리 '기억(memory)'에 초점을 두고 있다. 기억할 만한 것들을 발굴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여기서 기억할 만한 것이 반드시 좋은 일만 의미하지 않는다. 공산주의가 지배하던 시절 폭압을 휘둘렀던 전제적인 권력기관의 횡포를 단죄하는 일도 포함된다.

실제로 폴란드 역시 과거 청산 작업이 쉽지는 않았다. 1992년부터 본격화 폴란드 과거 청산의 역사는 난항을 거듭하다 결국 1998년 '국가기억원' 창설로 매듭지어졌다. 폴란드어로 풀어서 표현하자면, 'INSTYTUT PAMIĘCI NARODOWEJ', 여기서 'PAMIĘCI'란 단어는 'memory', 즉 기억을 의미한다. 말 그대로 '기억'에 관한 국가 기관이란 뜻이다. 국가기억원은 바르샤바를 비롯해서 전국 주요 도시에 존재하고 있는데, 연구 인력만 총 5천 명에 달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구에 수백 명의 검사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국가기억원'의 활동이 단지 과거에 대한 조사와 기록 보존에 국한되지 않고 범죄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권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다. 애매하게 과거 청산의 논쟁만 일으키고 정치, 사법적 판단을 다른 기구에 맡겨서 발생할 수 있는 혼란을 처음부터 불식시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구조 덕분에 과거 청산에 있어서 원스톱 서비스가 일관되게 집행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국가기억원'에 대해서 두렵고 어두운 이미지가 퍼져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바르샤바 '봉기 박물관'은 1944년 나치에 63일 저항했던 바르샤바 시민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국가기억원'이 과거의 단죄에 방점을 찍고 있다면, '봉기 박물관'(Uprising Museum)은 기억 하나가 얼마나 국민들을 하나로 단결시키고 명예로운 시민으로 만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르샤바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어 누구나 접근이 쉽다. '봉기 박물관'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10월 독일 점령 하의 바르샤바에서 폴란드 시민들이 점령군 나치에 맞서서 63일 동안 항전한 기록의 역사다. 외부의 도움 하나 없이 오로지 바르샤바 시민들만의 힘으로 나치 독일과 결사항전을 벌였던 참혹한 전투였다.


당시 히틀러는 동부 전선의 골칫거리였던 폴란드 바르샤바 시민들의 항전에 분노해서 바르샤바 상공에 연일 폭격기를 동원 공중 폭격을 감행했다. SS 총사령관 하인리히 히믈러는 봉기 즉시 포즈난 주둔 SS 경찰부대를 비롯해서 각지의 보병 대대를 출동시켰다. 괴링의 공수기갑사단까지 바르샤바로 집결했다. 폴란드 독립 이후 저항 세력의 확산을 두려워한 스탈린의 계략으로 소련군의 지원이 중단된 틈을 타서 독일의 공군이 제공권을 장악했다. 매일 같이 슈튜카 전폭기가 바르샤바 도심 곳곳을 폭격했다. 나치 입장에서는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저항의 움직임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 본보기가 필요했다. 그것이 바르샤바 전투가 참혹했던 원인이었다. 바르샤바 시민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살 명령이 내려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정확한 사상사 수는 알 수 없지만, 폴란드 저항군 16,000 여 명이 사망했으며, 민간인 사상자는 15만 명에서 20만 명까지로 추정하고 있다. 말 그대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었다. 탱크와 폭격기를 동원한 총공세로 바르샤바 곳곳이 불바다가 되었다. 바르샤바 도시 건물의 4분의 1이 파괴될 정도였다. 오늘날 프라하나 부다페스트와 달리 바르샤바에 가 보면 고색창연한 옛 건물들을 제대로 찾아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히틀러는 바르샤바 시민들을 굶어 죽일 작정으로 바르샤바 봉쇄 작전에 나섰다. 심지어 바르샤바에 식수를 공급하던 정수장 시설을 점령한 뒤에는 송수관 파이프를 차단해서 바르샤바 시민들은 식수조차 마실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바르샤바 시민들은 즉각 우물을 파기 시작했고, 바르샤바에 90개의 우물이 새롭게 생겨났다.


'바르샤바 전투' 당시 시가전에 참가한 바르샤바 시민 저항군

전투는 바르샤바 봉기군의 전멸로 끝이 났다. 하지만 패배했지만 결코 지지 않은 전투였다. 바르샤바 진압 직후 히믈러는 바르샤바 전투를 스탈린그라드의 전투에 비유할 정도였다. 정규군과의 전투가 아닌 시민 저항군과의 전투치고는 너무나 치열한 전투였던 것이다.


'봉기 박물관'에는 그런 바르샤바 시민들의 저항과 항전의 의지가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특히 시설 내부에 거대한 극장을 만들어 대형 스크린에서는 석 달 동안의 교전 상황을 기록한 필름 영화가 반복적으로 상영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흑백 영화가 시작될 때 10여 명에 달하는 폴란드 촬영 감독들의 이름이 맨 먼저 올라간다는 점이다. 그들은 시민군과 나치군의 교전이 치열하게 일어나고 있는 최전선에 카메라를 들고 달려갔다. 요즘처럼 줌렌즈가 발달하지 않았던 시절, 그들의 카메라에 포착된 리얼한 전투 장면들은 바로 포탄이 터지는 현장 속에서 촬영된 것임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가끔 폴란드의 역사와 대한민국의 역사가 근현대에 비슷한 과거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가 일제에 36년 동안 나라를 빼앗겼던 식민지 과거를 기억하는 것처럼 폴란드인들도 러시아, 독일, 오스트리아에 나라를 빼앗겨 123년 동안 국가가 존재하지 않았던 불운한 기억을 공유한다. 한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독일, 루마니아 남부까지 지배권을 확보하고 있던 폴란드 왕국은 귀족들의 분열과 이합집산으로 국력이 약해지는 경험을 했다.

폴란드의 역사가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결코 불의에 관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123년 동안 나라가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언어를 잃어버리지 않았다. 민족적인 근성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치에 나라를 빼앗긴 직후, 폴란드 망명 정부는 영국에 자리를 잡고 폴란드 해방을 위해 직접 전투에 참가했다. 2018년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허리케인, 배틀 오브 브리튼>은 폴란드 파일럿만으로 구성된 303전투비행중대의 활약을 기록한 작품이다. 바르샤바 전투 당시, 145명으로 구성된 폴란드 전투비행중대는 고립된 바르샤바 시민들을 위해서 목숨 걸고 공중 지원 작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폴란드인들은 유럽 역사에서 세 가지 자부심을 갖고 있다. 첫째, 오스만 투르크의 유럽 침공으로부터 유럽을 지켰다는 점, 둘째, 소련의 공산주의 침공을 막아냈다는 점, 셋째, 히틀러의 나치에 정면으로 맞섰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봉기 박물관' 곳곳에는 피로 저항한 폴란드인들의 저항의식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다. 목숨 걸고 지킨 폴란드의 자부심의 기록이다. 그래서였을까? 우연히 폴란드에서 만난 한 젊은이는 폴란드의 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폴란드의 정신은 자유와 명예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정신입니다. 우리는 불의에 항거하고 정의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조금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계속 지키고 있는 명예와 자존심입니다."


폴란드에는 과거를 기억하는 두 개의 장소가 있다. 처절하게 자료를 연구하고, 원인을 파악하는 5천 명의 전문가들로 이뤄진 '국가기억원', 그들은 역사에 대한 엄정한 판단과 연구를 통해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지 않는다. 그리고 63일 동안 나치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바르샤바 시민들의 명예로운 항쟁을 추억하는 장소가 있다. 그 두 가지는 폴란드의 과거와 현재를 잇고 미래를 위한 열린 창문이 되고 있다.


동유럽의 땅에서 북한 전쟁고아들의 흔적을 찾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내 입장에서는 '봉기 박물관'의 거대한 스크린을 장식하고 있던 10여 명의 폴란드 기록영화 감독들에 대한 감회가 색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총이 아니라 카메라를 들고 전장으로 달려갔다. 아쉽게도 바르샤바 전투 이후 그들의 행적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들 중 몇 명이 죽고 몇 명이 살아남았는지에 대한 기록도 없다. 꽃도 명예도 없이 카메라를 들고 전장의 한복판에 섰던 용감한 기록자들! 바르샤바를 떠나면서 그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담아 인사를 보낸다.


'바르샤바는 불탔지만, 그리고 그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들이 남긴 기록 필름만은 영원히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남을 것이다.'

'바르샤바는 싸우고 있다'라는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폴란드 기록영화 감독들


글: 김덕영 (다큐멘터리 PD, 작가)


북한 전쟁고아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 제작에 힘을 주실 분들을 찾고 있습니다.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 김덕영 (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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