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 (8)
가끔은 나도 좋은 글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글을 쓴다. 단순하게 내릴 수 있는 정의는 아니겠지만, '좋은 글'이란 역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글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사람의 온도'가 변한다. 따듯한 온도의 변화를 통해 온기를 나눌 수도 있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글이기도 하다.
벌써 햇수로 10년째 일상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을 소재로 삼아서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역시 좋은 글 한 편 쓰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물고기가 물을 찾듯이, 아니 물이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듯이, 나 역시 글을 쓰면서 생존을 모색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글을 쓴다. 남들은 믿거나 말거니지만...
어쨌든 좋은 글을 쓰겠다는 마음을 먹고 시작한 작은 인생의 여정 속에서 제일 힘든 건 역시 세상에 대한 선한 마음, 좋은 생각을 품는 일이란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물론 생각이 건전하다고 반드시 좋은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좋은 글을 썼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간혹 사람들로부터 인성은 나쁘다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좋은 글을 써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좋은 글'이란 것은 주관적인 것이며, 상대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다가 독자가 좋은 글을 판단하고 공유하고,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을 발굴하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한 사회가 좋은 글을 얻기까지 많은 비용과 수고가 뒤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회의 문화, 역사, 사람들의 기질에 따라서 그 '좋은 글'이라는 것도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좋은 글'이란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개념이다. 아무리 좋은 글이라도 작가와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독자가 외면하면, 작가는 버텨낼 재간이 없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결국 작가는 독자라는 큰 물 웅덩이 속에서 헤엄쳐 다닐 수밖에 없는 존재다.
책과 독자, 작자라는 복잡한 사회적 그물망 속에서 좌절하고 쓰러지고 그러다 다시 용기를 내서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수많은 작가들 중에 나 역시 포함되는 존재다. '모든 책에는 고유한 운명이 있다'라는 라틴어 글귀 하나에 마음이 움직여서 어느 날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고, 몇 년이 지나 그 라틴어 글귀 앞에 '독자의 읽어주는 능력에 따라서'라는 문장이 하나 더 존재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결국 수천 년의 세월이 흘러도 작가와 독자의 관계는 변함없는 물과 물고기의 관계다.
요즘처럼 경기가 어려울 때면 물고기는 물이 그립다. 때로는 목이 말라죽을 지경까지 간다. 어쩌면 그것이 2019년 새해 벽두부터 대한민국을 떠났던 이유 중 하나였다.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정체되면 죽는다. 물이 말라간다면, 물고기는 결국 새로운 물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온갖 상념이 머리를 스쳤다. 그것이 떠날 때의 심정이었다.
지구를 반 바퀴 정도 돌아서 지금 역시 낯설기만 한 공간 속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며칠 전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우리로 치면 가나다라마바사, 정도가 될 것이다. 언제쯤 새로운 언어로 글을 쓸지는 막연하고도 먼 일이다. 하지만 잠시나마 그런 낯선 상상을 하는 것도 글쓰는 사람으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그게 뭐가 됐든 바로 '이 순간' 내가 정체되지 않고 살아남으려 한다, 바로 그 생각이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살아남으려 애쓰는데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좋은 글과 좋은 마음, 그 두 개는 공존한다는 믿음을 나는 잃어버리지 않고 싶다. 가끔은 둘 사이가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역시 나는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글을 쓰자,는 축에 속하는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그걸 이루기 위해서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좋은 글로 마음을 이끌 수 있는 에너지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건 절반 이상이 내부에서가 아니라 외부에서 조달해야 한다.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안테나를 높이 올리고 귀를 쫑긋 거리는 이유도 그것이다.
어느 날 아주 우연히 SNS 상에 떠돌던 글 하나가 마음에 들어왔다. 알렉스 카츠라는 미국 화가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자서전적인 글이었다. 늘 그렇듯이 성공한 사람들의 어려웠던 시절의 이야기는 흥미를 끈다. 그 화가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돈과 명예, 그걸 얻기 위한 숱한 유혹들이 손짓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예술을 한다는 것이 참 어려운 것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누구 하나 월급(?) 주는 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일한 것을 시급으로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예술이 결국 자기 자신과의 지난한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때로는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게 힘겹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때의 이야기인 것 같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내가 읽었던 부분을 그대로 발췌하겠다.
Q. 막 대학을 졸업하고 전업 작가로 내밀었던 시대. 잭슨 폴록은 페인트통을 들고 다니며 캔버스에 물감을 쏟아부었고 마크 로스코는 색면 추상에 몰두했다. 모두가 보이지 않는 것에 집착할 때 당신은 보이는 것만 그렸다.
A. 밤잠을 설친 날이 많았지. 잭슨 폴록의 그림은 실제로 보니 굉장하더라고. 그려 놓은 그림 1000여 장을 찢어 버린 적도 있어요. 그래도 어쩌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추상화는 나랑 안 맞는 걸.
Q. 1950,60년대는 새로운 기법과 실험이 폭발하던 시기였다. 순수 회화는 낡고 고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던 때였지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진 않으셨어요?
A. 그건 마음을 다잡는 것과 관련이 있는데, 나의 영웅 프랑크 오하라는 이렇게 말했지. “자신의 건전함을 믿으라” (Trust the sanity of your vessel)
인터뷰 기사에서 유독 한 문장에 시선이 꽂혔다.
'자신의 건전함을 믿으라'
그런데 '진짜 믿어도 될까?' '정말 그래도 될까?'
숱한 의문을 뒤로 하고 나고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문학이 위대한 것은 단 한 문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좋은 글이 세상이 필요한 이유이며, 내가 글쓰는 일에 뛰어들었던 이유다. 그런 나에게도 이렇게 가끔 가슴을 쿵쿵 뛰게 만드는 좋은 글들이 필요하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가슴속에 꼭꼭 숨겨두었던 신성한 비밀의 물약이라도 한 모금 마시는 기분이 든다. 그 순간 뭘 하고 있든, '그래, 다시 일어나야지!' 하면서 두 다리 힘이 불근 솟는다.
세상에! '자신의 건전함을 믿으라'니! 보편적인 건전함이 아니다. '나 자신의 건전함'이어야 한다. 다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이야기, 감정, 그리고 신념. 그렇게 하나의 문장이 그 어려웠던 시절 화가의 마음을 움직였다. 배고프고 유혹에 흔들리던 시절, 그는 '자신의 건전함'을 믿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삶은 놀랍도록 다양해서 결국 방향과 목표를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질이 달라진다. 그 한 마디가 그를 움직이기 시작한 뒤부터 그에게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프랑크 오하라(Frank O’hara)는 미국의 시인이다. 알렉스 카츠는 삶을 긍정하는 그의 시선을 사랑한다고 했다. (출처: 뉴욕에서 만난 화가 알렉스 카츠, 디자인프레스)
나도 역시 삶을 긍정하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들에게서는 어떤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 열기를 잠시 맡고 있으면, 새로운 삶의 활력이 생겨난다. 물론 세상에 그 반대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좋은 사람과 만나,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생각을 품는 것. 그걸 위해서 첫 번째 할 일은 결국 '자신의 건전함'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 좋은 작가가 되는 일은 훨씬 나중의 일인 것 같다.
아무튼 지금 나는 '자신의 건전함'을 믿고 1950년대 동유럽이라는 낯선 시간 속으로 여행을 하고 있다. 그 이야기에 언젠가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란 믿음을 품고...
글: 김덕영 (작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현재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유럽 생활기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을 영화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전쟁과 아이들, 1950년대 동유럽과 북한의 정치 정세와 시대상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은 2019년 1월부터 3개월 동안 유럽 현지 취재를 끝마치고 현재 국제 영화제 참가를 목표로 편집 중에 있습니다. 도움 주실 분들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큐멘터리 공식 후원 계좌: 국민은행, 878301-01-253931, 김덕영(다큐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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