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속에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있다니!'

불가리아, '아레나 디 세르디카'(Arena di Serdica)' 호텔

by 김덕영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을 품고 있는 호텔 ‘아레나 디 세르디카’(Arena di Serdica)


요구르트, 장미, 그리고 장수의 나라 정도로 알려져 있는 불가리아. 하지만 불가리아는 우리가 모르는 흥미로운 문화와 전통을 지닌 나라다.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Sofia)를 걷다 보면 도시 곳곳에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서양 문명과 이슬람 사원을 비롯한 동방의 문명이 뒤섞인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한마디로 동양과 서양이 만나고 충돌했던 대표적인 지역 중 하나다.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뒤섞인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여행한 것은 지난 2월의 일이었다. 우연히 길을 걷다 독특한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호텔을 광고하는 선전용 간판이었다. 그런데 광고판 한가운데 자리 잡은 사진 한 장에 시선이 모아졌다. 바로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촬영한 사진이었다.


연안 우윳빛 대리석 기둥들이 열을 맞춰서 세워진 사진 한 장, 그런데 마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을 간직하고 있기라도 하듯이 오랜 역사적 흔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유적지를 품은 호텔 ‘아레나 디 세르디카 호텔(Arena di Serdica Hotel)’이었다.


불가리아 소피아, 고대 로마 유적지를 품고 있는 호텔 '아레나 디 세르디카'
호텔 로비는 말 그대로 고대 로마 시대의 유적지 전시장이다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길래 호텔 안에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사연은 이렇다. 2004년 5성급 호텔 신축을 위해 막대한 공사비가 투여된 호텔 하나가 소피아 시내에 건설되기 시작했다. 투숙객들을 위해 제공될 수영장 부지를 만들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던 중 우연히 땅속에서 연대를 정확히 측정하기 어려운 고대 유물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왔다. 호텔 측은 공사를 전면 중단하고 불가리아 정부에 이 사실을 알렸다. 불가리아 정부에서 파견된 전문가들로 구성된 탐사팀이 현장 지휘를 넘겨받아 본격적인 유적지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2004년 발굴 당시 발견된 고대 로마 원형극장의 터


원래 소피아에는 발칸 지역을 호령하던 고대 왕국 다키아의 수도 세르디카가 존재했다. 기원후 2세기경 팽창하던 로마 제국은 다키아 왕국을 지배하면서 실질적인 패권을 장악하려 했다. 호텔 부지에서 발견된 유적지는 로마가 다키아 왕국을 지배하면서 세력을 과시하려 했던 대표적인 건축물들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호텔 부지에서는 다키아 왕국 시대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었다. 특히 사자와 호랑이, 곰과 악어와 같은 문양을 새겨 넣은 검투사들의 상징물들은 그 대표적인 유물들이었다. 발굴팀은 유적지의 구조를 분석한 결과 원형경기장(arena)원형극장(theater)이 땅속에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독교인들이 박해를 받던 2,3세기경에는 원형경기장 내에서 잔혹한 학살이 이뤄지기도 했다. 발칸 지역은 물론이고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검투사들의 원형경기장과 연극 극장이 함께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새로운 사실도 발견됐다.


세르디카 호텔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지 터를 토대로 그려진 원형 경기장 복원도
호텔 부지 공사 당시 발견된 벽면 조각 장식물들


원형극장 터로 추정되고 있는 객석을 현장 보존하고 있다


호화로운 장식들이 새겨진 도자기와 그릇들, 검투사의 문양이 새겨진 프레스코 벽화들은 곧바로 불가리아 국립박물관으로 보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원형경기장 유적지가 발견된 호텔 공사 현장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이미 막대한 공사비가 투입된 호텔 공사를 중단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유물이 발견된 것은 사유지였다. 불가리아 정부가 사유지를 유적지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몇 달 동안 호텔 공사와 유적지 보존이라는 두 가지 이슈를 놓고 설전이 벌어졌다. 드디어 정부와 호텔 측은 타협안을 찾아냈다. 호텔 측이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조건으로 호텔 공사를 계속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레나 디 세르디카 호텔’이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품은 채 완공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덕분에 호텔 로비는 유물들이 전시된 박물관이 되었다. 이런 호텔 측의 결정에 불가리아 시민들이 환영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불가리아에서는 ‘예스’와 ‘노우’가 우리와 정반대다. 그들은 ‘Yes’를 표현할 때면, 머리를 좌우로 흔든다. 반대로 ‘No’라는 뜻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들은 머리를 위아래로 끄덕인다.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과 정복을 당했던 시련의 역사를 갖고 있던 불가리아인들에게는 그들만의 독특한 기질이 만들어졌다. 불가리아식 ‘Yes’와 ‘No’가 생겨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로마가 불가리아를 식민지로 삼아 지배하던 시절, 불가리아인들은 로마의 군대에 맞서 자신들의 영토와 문화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포로로 잡혀 고문을 당하고 죽음 직전에 놓인 상황에서도 불가리아들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 불가리아 전사들에게 로마 군인들은 처벌은 잔혹했다. ‘살고 싶으면 살려달라고 애원하라!’, 로마 군인들은 포로의 입에 칼을 집어넣고 저항을 포기하면 살려준다고 설득을 했다. 하지만 불가리아 전사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것이 불가리아식 ‘No’가 탄생한 배경이다.


로마인들의 눈에는 머리를 위아래로 흔드는 것이 '예스', 곧 ‘살려달라’는 호소처럼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온몸으로 저항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그것이 불가리아인들의 기질이다.


비록 자신들을 지배했던 로마의 유적지였지만, 불가리아인들에게는 정복된 식민지 시대의 유물도 자신들의 역사의 한 부분이었다. 단호하지만 결코 자신들의 부끄러운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불가리아인들. 그것이 ‘아레나 디 세르디카 호텔’이 고대 로마의 유적지를 호텔 안에 품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낡고 오래된 것이 가치롭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글. 사진: 김덕영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작가)


이 글은 예술전문 잡지 '아트나우',

2019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현재 제작 중에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고향(Two Homes)> 스틸 컷 중에서 (김덕영 Film)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유럽 생활기를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을 영화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한국 전쟁과 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던 10만 명의 고아들, 그들 중 상당수가 동유럽으로 이전했습니다. 냉전(Cold War)의 치열한 시대상과 북한의 주체사상이 확립되어 가는 과정 등이 이 다큐멘터리 안에 담길 예정입니다. 1950년대는 북한의 오늘을 이해하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은 2019년 1월부터 3개월 동안 유럽 현지 취재를 끝마치고 현재 국제 영화제 참가를 목표로 편집 중에 있습니다. 도움 주실 분들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고향'(Two H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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