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보다는 길게 이민보다는 가볍게...'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2)

by 김덕영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자’

때로는 삶의 조건이 삶의 내용을 결정할 때가 있다. 어떤 환경에서 자라고 어떤 인간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생각이 결정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다면 혹시 운명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일상의 조건, 생활의 형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고민을 하자 문득 나를 둘러싼 환경들에 의문이 들었다.


'내가 삶의 조건을 만들어놓은 것인가?
아니면 나는 나의 삶의 조건들에 맞춰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고민을 하고 산 지 몇 년은 된 것 같다. 돌이켜 보면 결코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다. 그래도 누구에게 손가락질받으며 살지는 않았다.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평범한 일상을 끈질기게 지속하는 삶이나, 평범하지 않은 인생에 계속 도전하는 것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내 입장에서는 하루하루 집과 일터를 오가는 삶 역시 위대한 일이다. 모든 평범함 속에는 그렇게 위대함이 있다고 믿는다. 그걸 지속시킬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다.


어쨌든 나는 좀 다른 방식으로 그 위대함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여행보다는 길고, 이민보다는 가볍게' 살아가는 일, 좀 어려운 단어를 써서 표현한다면 '정주형 유목생활((定住形 遊牧生活)'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머물러 있으되 뿌리를 내리지 않고,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되 분명한 목표와 계획이 있는 삶.


이미 집과 가정을 오가는 '9 to 5'와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생활 방식은 종말을 고하고 있는 중이다.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보통의 가족 관계 역시 변화하고 있다. 관계가 변하면서 집이라는 생활의 공간 역시 의미와 모습을 달리하고 있다. 살아가는 조건이 근본에서부터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점이야말로 뭔가 새로운 것을 도전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정주형 유목생활((定住形 遊牧生活)'에 도전해 보기로 결정한 이유였다. 어떤 점에서는 일종의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고, 변화에 대한 간절한 욕망이었다.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게 운명이란 거창함과는 거리가 먼 일이다. 운명이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결정된다면, 나의 운명은 나를 둘러싼 환경 자체를 바꿔보고 싶다는 일상의 작은 생각들이 점점이 모여서 만들어진 새로운 삶이다. 그렇게 나의 '아이슬란드 생활 도전기'가 시작됐다.


'목표가 있는 삶'


목표가 있는 삶이 조금은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세상은 목표를 갖고 살아가는 사람과 그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두 부류로 나눠진다. 뚜렷한 목표가 있는 아이들은 부모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할 필요도 없다. 자기가 알아서 뭐든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기보다는 함께 '목표 찾기'에 올인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나의 경우에도 늘 목표는 있었다. 매 시기, 매 순간마다 그런 목표들을 찾고,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일종의 취미였다. 도전할 수 있는 용기 역시 목표에서 나왔다. 분명한 목표가 보이는데 중간에서 포기할 이유도 없다.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 자동차가 정해진 길을 조금은 더 안전하게 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목표가 없이 무작정 출발한 차를 타고 안개가 자욱한 고속도로를 달린다고 상상해 보자. 중간에 포기하거나 사고로 멈춰 서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도달할 목적지를 정확히 아는 자동차는 달려야 할 이유도 분명하다. 그래서 목표가 있는 삶이 조금은 안전하고 수월하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확신이 들었다.


실제로 미국 콘웰대학교 앤소니 버로우 교수는 자신의 2014년 인간의 의지와 생활을 개발하는 욕망의 관련성을 조사한 연구에서 '목적의식이 있으면 그때그때의 감정 변화에 지배받지 않기 때문에 정신건강이 더 좋은 경향이 있다'는 내용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살아갈 분명한 목표를 지닌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더 오래 산다는 결론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소득이 높고, 인간 관계도 다양하고 풍부하다. 이기적인 존재보다는 이타적인 활동에 몰입하면서 주변에 늘 좋은 관계들이 자리 잡는다.


사실 교과서적인 의미로 따진다면 '목표'와 '목적의식'은 조금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일상 언어적인 해석에서 보자면 '목표'는 뭔가 불순한 동기나 이기적인 욕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진정 자신을 풍부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고들 말을 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 도달할 목표가 없는 사람에게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말처럼 공허한 말이 또 있을까. 그래서 나는 그냥 '목표'로 단순하게 가기로 했다. 목적의식이라는 거창함보다는 좀 야성의 날 것처럼 팔팔 뛰는 목표 그 자체에 충실하기로 했다.


그렇게 정하자 지금 내가 돌파해야 할 생활을 둘러싼 장벽들이 보였다. 때로는 투명한 막처럼 나와 나 자신을 둘러싼 현실 너머의 경계가 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눈에 띄는 장애물, 거대한 장벽보다 보이지 않는 그런 장벽들이 나의 삶을 더욱 교묘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장막을 걷어치우지 않고서는 단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상이 운명이 될 수 있다면, 나는 제일 먼저 그런 일상을 둘러싼 현실의 보이지 않는 장막부터 걷어치워야 했다. 그리고 삶을 돌아보며 내가 간절히 하고 싶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치 끝내지 못한 숙제들처럼 남아 있던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카메라를 들고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세상을 경험했다. 다행히 내가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한 시기는 촬영 장비들이 경량화되고 소형화되던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예전 같으면 커다란 카메라와 삼각대, 조명과 오디오 장비들로 가득했을 촬영장이 단지 카메라 하나와 그걸 들고 찍을 수 있는 사람 하나만 있으면 되는 간편한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일상, 내면의 생각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남들은 흉내 낼 수 없는 진솔한 인생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굳이 멀고 먼 아이슬란드를 목적지로 선택했을까?


모든 것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아이슬란드 대학 교수가 내가 운영하는 '통의동 스토리'라는 가게를 찾아왔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와 1시간 넘게 다큐멘터리 세계와 서로의 가치관을 공유하면서 그를 통해 아이슬란드라는 낯선 곳에 가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변화할 수 있는 범위란 거리 살으로 가장 멀고, 차원이 다른 삶의 환경을 가진 공간으로결정된다. 그렇게 문화의 스타일이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 낯선 도시에 대한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곳'이 주는 매력이었다. 늘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삶의 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미지의 땅에 대한 동경이 있다. 새로운 환경에 온몸 땀구멍 하나까지 적응해야 하는 그 불편함 속에서 살아 있다는 자각을 한다. 물과 불의 땅, 해가 지지 않는 백야의 낮과 밤, 바이킹의 후예들이 들려주는 전설의 노래들, 그런 호기심이 한꺼번에 가슴속으로 밀려왔다. 그런 충족되지 않는 본능적인 갈증, 미지의 환경이 주는 두려움이 나를 살아 있는 존재로 부활시켰다. 그것이 그 멀고 먼 아이슬란드까지 날아가서 '정주형 유목생활((定住形 遊牧生活)'에 도전하는 이유다.


이미 세상에 정복되지 않은 곳은 없다. 하지만 남들이 발길이 조금이라도 닿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기회도 많을 것이라는 믿음. 그것이 어떤 보상을 나에게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남들이 개척하지 않은 영역이나 직업을 찾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 가장 확실한 안전판이 될 수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낯선 곳에서 새로움에 도전하고, 남들이 들어보지 못한 노래와 이야기를 찾아보겠다. 그것이 내가 아이슬란드는 선택한 이유였다. '시작'을 사랑하며 평생을 살았던 나에게 가장 흥미롭고 익사이팅한 일이었다.


글을 맺기 전 한 가지 고백할 것이 있다. 사실 지난 얼마 전 신간을 하나 냈다. <뒤늦게 발동걸린 인생 투>라는 책이다. 그 책은 모두 30여 가지 챕터로 구분되어 있는데, 모든 글을 독자를 염두에 두면서 썼다. 조금이라도 내 책을 읽어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힘이 되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그 책에는 한 가지 비밀이 숨겨져 있다. 30여 가지 챕터 중에서 딱 한 부분만은 나 자신을 위해서 쓴 글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딱 한 챕터가 내 인생을 바꿔놓고 있는 것 같다. 수리수리 마하수리, 하듯이 나 자신에게 행운이 찾아오고 더 큰 용기와 신나는 일이 생기길 바라며 쓴 글이었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지만 한 글자 , 한 글자를 써 내려가면서 나는 그 글 속에 나를 찾고 나에게 행운을 가져다 줄 미지의 운명과 조우할 순간들을 상상했다. 그렇게 한 편의 글이 완성되었다. 29가지의 독자를 위한 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나 자신을 위해 숨겨놓은 글이었다.


그날 나 자신을 위해 숨겨놓았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편지와 같은 글의 제목은 바로 공교롭게도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이기도 한, '도전적인 삶을 위해 낯선 곳에 정착하라'였다.


어쩌면 이미 나는 시간을 거슬러 내 운명의 한순간 한순간들과 조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것이 운명을 일상의 작은 변화들이라 믿게 된 이유는 아니었을까.


글. 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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