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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 다시, 일본

by 빡빈킹

전역 후,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딱히 그 계절을 기다린 것도 아니고,
뭔가를 결심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책상 위에 놓인 달력을 넘기다가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여행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나기 위한 것도,
무언가 기대하고 떠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려면 할 수 있었다.
번호도, 라인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가 지금도 일본에 있는지,
어디로 이사했는지,
혹은 여전히
그 교정을 걸어 다니는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녀가 남아 있던 시간과 장소로
내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멈출 수 없게
내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비행기 창밖엔
작은 구름들이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손바닥을 창에 살짝 대고
처음 유학을 떠났던 날을 떠올렸다.

그날의 나는
불안했고,
무언가에 쫓기듯 떠났고,
모든 게 낯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번 여행은
마음을 찾기 위한 여행도 아니고,
그녀를 다시 붙잡기 위한 여정도 아니었다.

그저,
사라진 것이 여전히 그곳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 같아서.
그 거리와 공기,
바람의 방향까지도
그때 그대로일 것만 같아서.

나는
돌아가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아무 계획도 없었다.
어떤 장소를 먼저 갈지,
어디에 머물지조차 정하지 않았다.

그저 그 도시,
그녀와 함께 걷던 그 길들 사이에 나를 내려놓고
조용히 그 감정들을 다시 밟아볼 생각뿐이었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
내가 그리워했던 계절.
그리고
끝내 말하지 못한 감정.

그것들이 어쩌면,
진짜로 어쩌면
아직도 그 도시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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