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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늘 Oct 12. 2024

생각보다



'지난 1000일은 수가 그렇듯이 나 또한 새로운 삶을 살았다. 우리는 함께 감각의 세계에 머물렀다. 이름도, 모양도, 생각도, 편견도 없이 그저 느끼고 또 느끼는 것. 직관적으로 배운 것은 단순했으나 나의 처음을 제대로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우리 모두의 처음과 삶의 초석에 대해, 무엇보다 언어 너머의 깊고도 울림 있는 사랑에 대해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제 막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아닌 나를 더 잘 들여다보기로 한다.' 


수의 1000일을 앞두고 일기장에 썼던 문장들. 


돌아보니 한 줄 한 줄 숨을 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일기가 점점 무미건조하고 재미가 없다 싶더니 최근에야 그 이유를 찾았다. 화법으로는 안 그러는데 문장으로는 '생각보다'를 남발하는 것. 오늘 어디를 가서 무엇을 했는데 이건 생각보다 좋았고, 저건 생각보다 별로였고…. 언제부터 생각보다 이러이러한 일만 남기는 일상보고서가 됐는지. 매번 나오는 그 문장이 한편으론 성의 없고 어떤 의미에선 일상을 시시하게 만든다. '생각보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가끔은 두려움, 가끔은 기대감. 자주는 걱정, 그것도 앞서는 걱정이다.   





이번 시골여행도 마찬가지. 매년 혼자 갔던 내가 처음으로(그것도 무려 6년 만에!) 넷이서 가려니 오만가지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애들이 차를 얼마나 오래 탈 수 있을까. 최소 4시간 30분이 걸리는데 괜찮을까. 시골에 가면 화장실이 밖에 있는데 어떡하지. 낮잠은? 밤잠은? 가서 심심해하지는 않을까. 


그렇지만 막상 출발하니 모든 게 내 생각과는 달랐다. 아이들은 오래 차 타는 걸 힘들어하지 않았고, 잠이란 잠은 푹 잤고, 무엇보다 장난감 없이도 재미있게 지냈으니까. 이미 여러 번 와본 것처럼 낯선 기색 없는 아이들을 보니 도리어 왜 이제야 왔나 싶었지. 휴게소에서 산 인형놀이 스티커만 가지고 5일 이상 놀더니 (그렇게 집중력이 대단한 줄 처음 알았다) 시골집에 있는 물건들로 마술쇼를 보여주는데 그게 웃기고도 재미있어서 수십 번은 맞장구를 쳐줬다. 시골집은 돌아가신 할머니의 집이자 큰고모의 이웃집. 언젠가 여기에서 살 계획이 있는 작은 고모가 수리를 한 덕분에 화장실도 집 안에 새로 생겼다. 전에 없이 편안하고도 깨끗하게 지냈네. 생각보다 더 좋았다, 고 적고선 앞으론 그저 느껴보자고 다짐 또 다짐했다. 






홀로 논길을 걸어서 좋아하는 숲정이에 다녀왔던 새벽. 눈으로만 담던 풍경. 바람결에 널어두었던 빨래. 마당에서 아빠가 뿌려주는 물속을 뛰어다니던 수. 미꾸라지와 송사리를 보았지. 다슬기 실컷 먹었지. 빨래터에 걸린 노을. 고요와 침묵. 정적이 주는 아름다움. 사평떡과 커피. 


'햇볕 쨍쨍 여름 오후 장난꾸러기들 맑고 푸른 냇가에서 물장구를 치네 송사리 잡으러 살금 다가서니 꼬리를 살랑 흔들며 멀리 달아나네 할아버지 원두막에 참외 익어가는 싱그러운 여름날이 정말 즐거워요' 수가 유치원에서 익힌 동요를 윤이 부르고, 결국 수와 윤이 합창하던 싱그러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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