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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11. 2024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이것 봐. 기록이 쌓이면 원고가 된다. 과거의 네가 현재의 너에게 답을 주네.'


친구가 보내준 링크는 나의 북토크 영상이다. 


햇수로 4년 동안 작업했던 에세이가 나온 직후 출판사를 통해 정식으로 제의를 받았던 자리. 당시 초중고 교원직무연수 채널인 아이스크림 촬영을 동의했지만 잊고 있었다. 어디서든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러다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된 순간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왜? 


당혹스러웠다. 책은 6년 전에 나왔는데 영상은 4년 전에 올라왔다. 그걸 2년 전에 알게 된 것이다. 


사이트에서 선생님들만 볼 수 있던 자료가 원격교육연수원 채널을 통해 공개된 듯싶었고, 백여 개의 클립 중 네 개가 나의 이야기였다. 이유 모를 감정에 볼 엄두도 없이 지나갔는데, 친구는 그 영상을 현재로 소환했다. 2년이 더 흘렀다. 도망치거나 피하고 싶었을 뿐 모든 감정엔 이유가 있음을 알기까지. 무엇보다 정확히 알기까지 나에겐 6년이 걸렸다. 스스로 찾아보겠노라 다짐했고, 그만큼 헤맸다. 친구의 말대로 그 답을 다름 아닌 내가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마주하고 싶었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2015년도에는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너무 많이 헤맸어요. 

그때 스물아홉이었는데, 현실적으로 정신적으로 시달리는 일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원고를 보내는데 그게 원고라기보다는 나를 감추는데 

급급한 글들만 출판사에 넘기게 되는 거예요."


부끄러웠다. 최선을 다한 일을 축하하지 못한 것. 작가로서 내 책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한 것. 출판사에 대한 미안함과 그 당시 나에게 있었던 일들. 모든 것이 버거웠던 마음과 내 안에 이미 흐르고 있던 슬픔의 강까지도. 덤덤하게 말하는 영상 속의 내가 사실은 어떤 상태였는지 선명하게 떠올랐다. 


도대체 왜 무엇이 부끄러운지, 얼룩진 감정은 어떻게 흐려지는지 오랫동안 물었다. 사랑하는 누군가 혹은 무언가 대신 나는 나를 미워하기를 택했다. ‘내가 지금 느껴주고 있잖아’ 온전히 나를 수용하는 척 그렇게 스스로를 다그치면서 사실은 벌을 주고 있었다. 오래된 부끄러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됐다. 





"헤매다가 1년이 흘렀어요. 아무리 해도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거예요. 

불안했어요. 방법을 바꿔야겠다. 돌파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이 뭐가 있을까? 

그래서 글을 쌓아가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이때부터 원고 형식의 글들이 나오기 시작해요."



부끄럽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글을 썼다. 책과는 다른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지만 한계가 찾아왔다. 그래서 다시 블로그를 시작했다. 불안해서. 방법을 바꿔보고 싶어서. 돌파를 이룰 수 있는 지점이 뭐가 있을까, 나는 내가 했던 방식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나가고 싶었다. 나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저는 손으로 굉장히 많은 걸 쓰는 편이에요. 내가 이런 문장을 썼어? 내가 이런 걸 느꼈어? 

쓰고서도 기억이 안 나기도 하고, 글로 써야지 하는 경우도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잖아요. 

믿을 수 있는 건 내 손에 대한 감각뿐이에요. '내가 이제부터 원고를 써야겠다' 

이렇게 힘을 주고서는 이상한 글이 나오고 느끼는 그대로 일기를 썼을 땐 

원고로 써도 괜찮은 글이 나오더라고요. 조금 힘을 빼는 시간이 아니었나."






"연애나 일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나를 잘 몰라서 그런 일들이 생겼구나, 

내가 내 삶의 균형을 잘 몰라서. 이제라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돼서 다행이다. 

아까 기록에 대해서도 강조를 했지만요. 

내가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 주는 것이 저한테는 글을 쓰는 일이었어요.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일이 될 수도 있겠지요.  

그 방향이 저한테는 원고를 쌓아가면서, 그 나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던 게 컸어요."



그리고 그걸 영상으로 확인한 순간, 한편으론 안도했고 한편으론 놀라웠다. 


내가 무슨 말을 했었는지 잊어버렸었기 때문이다. 친구가 말해준 답보다 더 큰 답을 찾았기 때문이다. 내 발만 비췄던 무수한 질문과 등불이 어느새 별자리가 되었구나. 매번 보이진 않지만 어딘가엔 늘 그 별자리가 있었다는 걸. 그래서 나는 나만의 별자리로 이 삶을 여행하고 있다는 걸. 그토록 보기 두려웠던 영상으로부터 깨달았다는 사실이 또 다른 의미에선 재미있기까지 했다. 






"그래서 저는 이 말을 꼭 해보고 싶었어요. 책을 읽은 당신은 그날의 내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적이 있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그날의 내가 있어서 다행이었던 적이 나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시기여도 좋으니까 그날의 나를 만나고, 지금의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지금을 잘 쌓아서 나중에 돌아봤을 때 나를 더 미워하지 않고 긍정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모두에게 바라는 마음입니다. “



기록이 쌓여서 원고가 되지 않았다면. 책이 되지 않았다면. 북스테이지에서 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난날의 나를 보며 이토록 큰 위안을 느낄 수 있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3차원 물질세계가 아닌 우주에선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없다고 한다. 시공간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위한 위한 관점일 뿐.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미 내 안에 답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이 된다. 이 얼마나 근사하고 멋진 일인가.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에게 말한다. 돌이켜봤을 때 나를 더 미워하지 않기를. 긍정할 수 있기를.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대답한다. 응. 나는 이제 너를 미워하지 않아. 부끄러워하지도 않아. 그냥... 미안했어. 한 인간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이었겠지. 힘들었을 텐데 고마워. 그날의 나를 만나서 지금의 나를 이해할 수 있었어. 과거의 내가 현재의 나를 안아준다. 미래의 내가 현재의 나를 끌어안고서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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