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 인사를 하기까지 6년이 흘렀어. 어디서부터 어떤 말을 하는 게 좋을까.
그 사이, 나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 임신과 출산 그리고 결혼생활. 글쓰기에도 변화가 있지만 말이야. 무엇보다 면허를 땄어. 언니에게 그 사실을 제일 말해주고 싶더라. 나 이제 운전한다고. 원하면 차를 끌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고. 임시 면허증을 발급받은 날, 내가 언니에게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게 고작 이거라는 사실에 속으로 웃음이 났어. 어쩌면 고작이 아닐지 몰라. 나는 언제나 조수석에 있었으니까.
그간 언니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을지 나는 다 알 수 없어. 그래서 내가 궁금한 것을 더 궁금해하기로 했어. 서른여덟이 된 나는 서른여덟이었던 언니를 기억해. 그때 언니는 무슨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을까. 고작 이십 대 초반이었던 나는 언니의 나이가 와닿지 않았거든. 마치 언제가 됐든 나에겐 오지 않을 것처럼. 그래서일까. 우린 분명 몇 년이나 붙어있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완전히 다른 시차를 살았던 건 아닐까 싶기도 해. 언니는 이미 작가였고 엄마였고 (적기엔 부끄럽고도 웃긴 이야기이지만) 차도 집도 있었잖아. 한 분야의 중심을 걸어가면서 학교로 돌아와 수업까지 듣는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선택은 아니니까.
맞아. 언니는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었어. 열다섯 살도 더 차이나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말이야. 언니를 처음 알았던 그 당시 언니 나이가 되어 보니, 언니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근사하고 대단한 사람이라는 거야. 나의 서른여덟은 그만큼 멋지진 못할 거야.
어제는 영화관에 가서 '룩백'이라는 영화를 봤어. 우연히 현재 상영작 포스터를 마주쳤거든. 이상하지.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 영화에서는 말이야. 학급 소식지에 매주 4컷 만화를 연재하는 후지노가 나와. 후지노는 누구보다 만화에 있어서 자신감이 넘쳤고, 친구들에게도 극찬을 받았어.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교모토라는 친구도 함께 연재해도 되냐고 물어. 세상과 단절된 채 학교에도 나오지 않는 그 아이가 그리면 얼마나 그리겠냐는 투로 후지노는 마지못해 승낙하지.
그렇게 마주한 교모토의 만화는 후지노에게 충격 그 자체였어. 경악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부터였어. 후지노가 진지한 열의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후지노의 만화를 그리는 뒷모습, 이론 관련 서적, 스케치북…. 침묵만큼이나 쌓여가던 것들은 후지노를 일상으로부터 밀어냈지. 후지노는 아무리 노력해도 교모토의 재능을 따라갈 수 없다는 걸 실감하게 돼. 그 길로 완전히 만화를 포기해 버려. 친구들 또 가족들과 어울리는 후지노는 분명 웃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쓸쓸해 보였을까.
후지노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고 교모토 집으로 졸업장을 전하러 가. 그리고는 알게 돼. 사실은 교모토가 후지노의 팬이었다는 걸. 후지노의 만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는 걸. 교모토는 알고 있었어. 후지노의 만화가 눈에 띄게 늘었던 시점을. 후지노의 문득 깨어나는 눈빛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교모토로부터 '선생님'이라는 말을 듣고, 교모토의 옷(등)에 사인까지 해주던 후지노는 말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자유롭게 흐느적거려. 엉킨 실타래를 다 풀어버린 얼굴로 춤을 춰. 교모토로 인해 포기한 꿈을 교모토를 통해 다시 꾸게 된 거야. 이상하지. 나는 분명 올해 내내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는데, 그런 후지노가 위로가 되었다는 게. 아름다워서. 아름다워서 먹먹했어.
언니. 그 일이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가깝게 지냈을까. 사실은 나 언니에게 서운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잘못하기 전에 이미 언니는 나에게 멀어지고 있었잖아. 그동안 내가 알던 네가 아닌 것 같다며. 낯설고 불편하다는 기색을 숨기지 못했지. 그런데 언니, 언니가 맞았어. 그때 나는 나조차도 모르는 나였어. 안 해본 것, 새로운 것, 낯선 것, 어쩌면 불편한 것도 다 해보고 싶었어. 그 끝에 어쩌면 언니가 알던 예전의 나 같은 나로 돌아왔을지도 모르지. 살다 보면 그런 시간도 온다는 걸 그땐 알지 못했어. 대책 없이 통과하던 그 시간을 아무리 그래도 언니가 이해해줬으면 하고 바랐나 봐. 두려웠거든. 언니랑 멀어질까 봐. 마음 한구석이 서서히 무너지는 걸 애써 무시하고 싶었나 봐.
둘도 없는 사이가 된 후지노와 교모토를 보면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언니가 떠올랐어.
다시는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을 때 말이야. 6년이 넘도록 회사와 작업을 병행하던 생활에 지쳐있었거든. 그해 여름, 도망치기 그럴싸한 구실이 되어주었지. 새로운 일에 잘 적응하나 싶을 때쯤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변화들이 찾아왔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더 큰 힘으로 알려주더라. 언제까지고 내 안에서 만큼은 도망칠 수 없다는 걸 말이야. 첫째를 품고 나서야, 나는 나를 제대로 마주했어.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들여다보기 시작한 거야.
깨지고, 헤매고. 그 끝에 진심으로 글이 쓰고 싶어졌어. 돌이켜 보니 진짜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글을 나는 아직 한 번도 쓰지 않았더라고. 무지와 실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혹은 언니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내 것을 써나가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어. 언니와 있었던 마지막 일이 다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는 게 참 재미있지. 이제는 흐릿해지는 추억들도 소중하지만 말이야. 언니는 앞으로 나아가는 법을 알려주었잖아. 언제나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고. 힘들 땐 흘러가는 것들을 그저 바라보다가 때가 되면 다시 너의 삶을 살아도 괜찮다고. 그래서일까. 된장국을 끓이기 위해 대파를 썰다가, 운전을 하다가, 혹은 여의도에서 돌아오던 어느 늦은 밤에도 언니를 떠올렸어. 언니라면 어떻게 했을까. 언니는 뭐라고 얘기해 줬을까. 맞아. 나는 언니의 등을 보며 성장한 사람인 거야.
가끔은 궁금해. 언니도 나의 등을 본 적이 있는지.
언니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직도 글을 썼을지. 후지노가 만화를 그저 그리는 모습을 보면서. 무엇보다 교모토와 함께 지나온 시간들을 보면서… 나는 내가 이 일을 정말로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어. 지난 이 년 간 작은 목표를 이루고 큰 실패를 맛봤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어.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밑바닥부터 확인할 만한 계기가 필요했던 거야. 이게 나에게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언니는 알까.
'룩백' 원작인 만화 첫 장엔 'Don't', 마지막장엔 'in Anger'라고 적혀있대. 합쳐서 밴드 오아시스의 10번째 싱글인 'Don't Look Back in Anger'가 사실은 '룩백'의 제목인 셈이지. 한 번도 'in Anger'에 둔 적 없는 언니는, 전에도 앞으로도 무한히 고마운 사람이야. 고마워, 언니. 철없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를 아껴줘서. 여전히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으로 남아줘서. 부디 나에게 등을 내어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