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발견은 '써라운드집'이라는 음악 감상실이다.
어떻게 이곳을 알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마음이 시끄러운 시기에 혼자만의 시간(공간)이 필요했고, 무엇보다 음악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파주를 가볼까. 콩치노콩크리트나 황인용 뮤직스페이스를 다녀오고 싶은데. 그러다 마석 화도에 프라이빗한 음악감상실이 있다는 걸 알고는 한 번, 사진을 보니 어쩜 생각보다 더 근사한 공간이라는 데서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왕복 한 시간 남짓한 거리인 것도 매력적이었고.
그렇게 써라운드집을 예약하고 다닌 지가 스물두 번이 되었다.
집과 요가원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관리실을 제외하고는 내가 올해 가장 많이 찾은 장소이기도 하다. 앞서 말한 세 곳이 일상적 공간이라면, 써라운드집은 비일상적 공간이면서 책, 커피, 음악, 혼자를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비밀 놀이터였다. 실제로 나는 스물두 번 중 딱 한 번을 빼고 이곳을 계속 혼자 찾았다. 비가 오다가 거짓말처럼 펑펑 눈이 쏟아졌던 겨울. 사방 천지에 싹이 움트는 것을 보면서 묘한 위안과 안도감을 느꼈던 봄.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음을. 계속 변하고 있음을. 흐렸기에 맑아지기도 한다는 걸 알게 된 여름. 창밖의 풍경이 달라져서이기도 하지만 공간의 질감이 분명 예전과는 달라진 가을. 계절을 돌고 돌아 애틋함이 쌓이는 동안 이곳에서 나의 자리는 푹신한 소파 대신 바깥과 가까운 창가가 되었다.
풍경을 등진 채 앉으면 나의 왼편은 천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스피커 그리고 앰프와 가까워진다. 이 기기들은 신기하게도 음악이 꼭 둥글둥글 퍼지는 것처럼 들린다. 어떤 음악은 크게 어떤 음악을 작게 울려 퍼진다. 사장님이 건네준 패드로 나는 좋아하는 노래를 고르고, 커피를 마시고, 일기를 쓰거나 책을 읽는다. 그 모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노래를 고를 땐 고르는데, 커피를 마실 땐 마시는데, 무언가를 쓸 땐 쓰는 데에만 집중한다. 사실 이 모든 건 다 부차적이다. 순수하게 듣는 일. 그 일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느끼는 것만으로도 나는 얼마나 사랑과 가까워지는가. 삶에 대한 사랑. 사랑에 대한 삶. 사소사소사소. 그렇게 적힌 나뭇잎들이 붉어지고 노래지고 원래의 초록과 물드는 사이, 그 사소함이 모여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런 틈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이야말로 무심을 가장한 유연함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최근 '듣는 일'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있었다.
시골에서 이른 저녁을 먹던 오후, 나는 고모에게 고모부가 어떻게 돌아가시게 됐는지 물었다. 고모부에 대한 기억은 단편적이고도 희미했다. 야윈 몸과 조금쯤 잠긴 목소리. 그것도 한 삼십 년 전이라 고모부의 마지막은 내가 처음으로 듣는 사건이기도 했다. 추웠던 어느 날, 고모와 고모부는 바다를 보러 갔다고 했다. 숙소를 잡긴 했지만 떠오르는 해를 놓치지 않으려 차에서 밤새도록 머물렀다고. 돌아오는 길에 고모부는 콜라 몇 모금에 기도가 막혀 그대로 쓰러졌다고. 그렇게 의식을 잃은 고모부는 일주일 만에 떠나셨다고 한다. 어떤 질환이 찾아왔는지, 여행을 가기 전 이미 고모부는 기도의 절반이 위축된 상태였다. 콜라는커녕 그냥 물도 마실 수 없는 몸이었다. '평소 마시지도 않던 음료수를 그날따라 찾는 게 이상도 하지. 고모부가 워낙 바다를 좋아했거든. 무리인 걸 알면서도 가고 싶더라. 어쩌면 이 사람이 온전히 돌아다닐 수 있을 때 떠날 수 있는 마지막 여행 같았어.' 십 년 도 더 된 일이 어제 같고 오늘 같다는 말은 나에게 아직도 사랑한다는 말로 들렸다.
그날이 유독 마음에 남은 건 고모가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었다 한들 그 사람이 살아있을 땐 마음속 이야기를 절대 할 수 없다는 말. 고마웠다거나 수고했다거나 그동안 애썼다거나…. 이 모든 끝이 고모는 고모부의 심장 박동기가 일직선을 그렸을 때에야 비로소 입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덜컥 창백해졌다. 살아있을 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역시 겪지 않은 일에 대한 지레짐작일 뿐이었으므로.
죽는 순간에도 청각은 살아있다. 의료 현장의 경험에서 나온 추정은 최근 과학적으로도 밝혀졌다.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청각이 여전히 작동하는 증거를 포착한 것이다. 결과 대로라면 마지막 순간까지 따듯한 위로와 사랑의 말을 해주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선물이 될 수 있다. 이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그날의 대화와 오늘의 듣기 사이에서 그 선물을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는 사랑도 있는 것이라고. 우리가 뒤늦게 전하는 말은 그 선물 같은 사랑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나는 감히 믿기로 했다.
아기 때 열병으로 청력을 잃은 나는 왼쪽으로 기우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와 서는 것도 왼쪽. 손을 잡는 것도 왼쪽. 시선을 맞추는 것도 왼쪽. 그러니까 유일하게 들리는 쪽으로 이곳에 와서도 음악을 듣는다. 아이들을 키우며 전만큼 헤드폰이나 이어폰을 찾지 않았던 건 참으로 다행이었다. 청력을 보전하게 되었으니까. 그 후회 없는 공백이 앞으로도 듣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려주었다. 언제 어떻게 마지막이 오든 이 미미한 청력을 지키고 싶다. 잘 듣고 잘 말하고 잘 살아야지. 나는 그렇게 아직 오지 않은 사랑을 기다릴 것이다. 나를 위하여.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