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를 쌓을 겸 새 블로그를 시작했다.
매일 뭐라도 올리자, 그렇게 다짐하고 실행한 지 어느덧 55일.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생긴 변화를 남겨보고자 한다.
첫째로는 나만의 아카이브가 생긴 것.
사진을 찍고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또 무언가를 쓴다 한들 일정한 형태로 묶지 않으면 '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 그 무언가를 요즘 내가 쌓는 데이터로 발견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도 꾸준히 늘었다. 정보성 블로그가 아닌 이상 이런 형태로는 활성화되기 참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신기한 건 재방문율이 꽤 높다는 것. 가족과 지인 중 이 공간을 아는 사람이 딱 한 손에 들어올 정도라는 걸 감안하면, 체감을 못 해서 그렇지 통계적으로는 서서히 수치가 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불특정 다수 혹은 양방향으로 열려있는 공간이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나로부터, 나에게 - 이 전제 조건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은 짓을 내가 왜 하고 있는지, 그래서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밑바닥으로 치닫는 날도 있다.
그럴 땐 '내가 알잖아'라는 말을 기억한다.
5년 전, JTBC 캠핑클럽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데뷔 21주년을 맞은, 1세대 아이돌 핑클이 14년이라는 휴지기 끝에 완전체로 캠핑을 떠나는 이야기. 거기에서 이효리는 이상순과의 한 일화를 풀었다. 이상순이 보이지 않는 의자 밑바닥을 사포질 할 때 이효리는 그랬지. '여기 안 보이잖아. 누가 알겠어.' 그때 이상순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알잖아. 남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해.' 그때 큰 깨달음을 얻었던 이효리는 그날, 이진을 위해 스쿠터를 중간중간 나무 그늘 앞에 세웠다고 했다. '나 자신에게 감동했어. 남들은 몰라도 내가 나 자신을 기특하게 보는 순간이 많을수록 자존감이 높아져.'라고 하면서.
'내가 알잖아'와 '나 자신에게 감동했어'.
그 두 말 사이를 맴돌다가 나의 마음은 '내가 알잖아'를 아로새긴다. 내가 알잖아. 내가 알잖아. 그러니까 계속해 보자. 남들이 몰라도 내가 나 자신을 알아가고, 알아준다는 건 얼마나 고귀한 일인지.
둘째로는 나만의 알고리즘이 생긴 것.
계획 없이 그날그날 올리고 싶은 걸 올릴 때는 몰랐는데, 썼던 문장들이 확장돼서 다음 이야기가 펼쳐질 때가 있다. 이곳에 후루룩 쓴 문장이 어느 꼭지의 서두가 되기도 하고, 다른 날의 경험과 합쳐져 사실은 이런 말을 하고 싶었구나, 나는 이런 걸 전하고 싶었구나, 통합되는 지점이 오기도 한다.
물론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래도 분명 그런 순간이 있다. 한 번의 결정적인 순간은 백한 번의 평범한 순간을 타고 온다. 그걸 몸소 통과하면, 이백 한 번의 평범한 순간까지도 건너갈 힘을 얻는 것이다.
내가 성장하는 중인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 모르겠다 싶었던 지점도 내 글을 다시 쓰면서 제대로 알게 됐다. '나만의 아카이브'를 넘어 '나만의 알고리즘'을 구축하는 일은 여기에 있다. 그냥 지나간 시간은 아니었구나. 오랫동안 꺼내지 못했던 문장들은 사실 내 안에서 끝나지 않은 일이었구나.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 사실은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쌓여 있음을 알았다.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몸과 마음을 뚫고 새로 난 길에 숨이 깃들 때까지. 돌이켜 보면, 이 모든 것이 또 하나의 거대한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자기만의 해시태그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셋째로는 브런치를 시작한 것.
블로그에 남기는 에세이들을 다른 플랫폼에도 올리고 싶었다. 그때 떠올린 것이 바로 브런치. 들어만 봤지 할 생각은 전혀 못 했는데, 글다운 글을 쌓아가는 데, 무엇보다 연재 요일을 정할 수 있어서 좋다. 출판사든 방송사든 공식적으로 계약이 있을 때보다 혼자 글을 쓸 때 마감을 지키는 게 더 어렵다. 나와의 약속을 잘 지키는 것만큼 자존감이 높아지는 일도 없으니 이왕이면 오래도록 성실해야지. 집안일을 하다 말고 문득 멈추지 못하는 마음은 따라가지 말자 다짐했다. 쉴 새 없이 움직이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미래로부터 도리어 멀어지니까. 그러니 여기. 또 여기에서 멈추는 일부터 부지런히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