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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곧 Apr 23. 2024

기대한 내가 바보였던가

사람에 대한 기대를 품는 일

나는 사실 남들도 나와 비슷한 줄 알았는데,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내가 사람들에게 꽤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연구 윤리와 학문적 진실성이 중요한 학자들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나 보다. 


과학 연구는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큰 종류의 일은 아니다. 그래서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에 기여한다는 보람과 명예, 즐거움, 다음 세대를 가르치는 사명감 같은 것이 없다면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것 같다. 또한 학자들은 각자 세분화된 주제를 연구하기 때문에, 연구 과정이나 결과를 속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사회에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렇기에 늘 연구 윤리를 강조하는 것이다. 


어느 집단이든 그들에게 기대되는 윤리 수준에 부합하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님을 안다. 하지만 내가 몇 년간 봐온 연구실 동료들과 대학 구성원들이 책임감 있고 용기 있는 사람들이길 기대한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피해를 수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책임감 있는 태도 아닌가? 


지금 생각하면 내가 너무 순진한 기대를 했었구나 싶기는 하지만, 나는 상대방이 최대한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일을 수습하려 노력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내가 겪은 이상한 일들에 대해, 가해자가 자신의 의도치 않은 실수였고 몰라서 그랬던 거라고 주장했기에 더욱. 하지만 그는 수습 과정에서 무엇 하나라도 피해보지 않으려 했고 계속 이상한 합의안을 고집했다. 어쩌면 자신도 손해를 볼지언정 내가 이득을 보지 못하게 한 거라는 생각도 들 정도로.  


진행 중이던 연구를 정리해서 논문으로 쓰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양쪽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그래서 연구실을 옮기더라도 논문 출판에 대해서는 쉽게 합의할 수 있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결국 거의 완성 직전이던 논문을 포함해 여러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지 못하고 중단되었다. 


논문을 쓸 단계는 아닌 초기나 중기 단계의 프로젝트도 몇 있었다. 나는 그중 연구실에서 원래 하던 것에 가까운 프로젝트들은 (비록 내 기여도가 높지만) 이후에는 그쪽이 주도하고, 내가 완전히 새로 제시했던 아이디어는 새로 옮긴 연구실에서 계속 이어 하겠다고 제안했다. 내가 손해를 보는 양보라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합의가 되지 않았다. 결국 연구는 어느 쪽에서도 이어서 하지 못하고 있다. 




내가 과학자로서 성장하고 학계에 기여할 미래를 기대한다더니, 그 여정에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기쁘게 생각한다더니. 자신에게 딱히 손해 될 것이 없었을 때 무책임하게 했던 말이었나 싶다. 


어쩌면 가해자는 내가 학계에서 사라져 주길 바라는 걸 수도 있겠지. (사실 이와 비슷한 말을 실제로 듣기도 했다.) 체면 때문이든, 수치심이나 실망 같은 어떤 부정적 감정을 못 이긴 것이든. 자신도 손해를 볼지언정 나도 실적을 잃어버리는 방향으로 결론이 것도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중견 연구자보다는 신진 연구자에게 논문 실적 한 건 한 건이 더 소중하기에 타격도 더 크다. 타격을 받고 내가 주저앉으면, 그래서 학계에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는 편한 결말이 아닐까? 


선배이자 멘토로 존경했던 사람이, 나의 성장과 성공을 바라고 지지해 주던 사람이, 실은 자신의 이득과 부딪히지 않는 범위 안에서만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누구든 자신에게 별 손해가 없을 때는 책임감 있는 사람인 척하기 쉽고, 심지어는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믿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내면적 힘은 자신의 이득과 올바른 일이 일치하지 않을 때에 확인되는 것이다. 


가해자가 책임감 있게 자신의 '실수'를 수습하길 기대한 내가 바보였나? 그런데 사람들에게 아무 기대를 안 하는 것이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세상과 사람을 냉소적으로 보면 손해는 덜 볼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방어적으로만 살면 도대체 누구와 마음을 나누겠는가. 


모두가 제대로 된 사람이라고 덮어놓고 믿으며 현실을 왜곡해 보아서는 안 되겠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여전히 사람들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어렵더라도 올곧은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내가 먼저 상대를 그렇게 대하기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어 주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다시 실망하게 되더라도 나는 기본적으로는 상대를 괜찮은 인간이리라 믿고 그렇게 대하고 싶다. 


그러니 이 사건과 관계들에서 기대를 하고 여러 타격을 입은 나 자신도 받아들인다. 안타깝고 자랑스런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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