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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곧 Apr 30. 2024

지도교수는 학문적 부모인데

왜 지도교수 변경에는 이혼 같은 데가 있지?


학문적 가계도를 그리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지도교수-학생 관계는 학문적 부모-자식 관계와 비슷하다. 연구 자체는 물론이고, 학계의 규칙이라는 것도 생각만큼 딱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학생은 지도교수를 통해 학계의 규칙을 배운다. 마치 아이가 부모님에게 사회와 세상살이의 규칙을 배우듯 말이다.  


그런데  이런 비유는 몹시 소름 끼치지만  지도교수 변경에는 약간 이혼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내가 들어본 사례에서 어떤 대학원생은, 지도교수 변경을 통보했더니 지도교수가 우선 한동안 '숙려 기간'을 가져보자고 했다고 한다. (소름.) 아무튼 지도교수 변경이 이혼과 비슷한 것은 협의 혹은 유책 사유가 존재하며, 분할할 재산이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분할할 재산이란 지적 재산권, 쉽게 말해 논문이다.


그런데 지도 교수 변경 시 지적 재산권 합의에는 이혼 시 재산 분할보다 더 고약한 점이 있는데, 1) 지도교수와 학생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권력 불균형이 있고  2) 재산 (혹은 덜 끝난 연구에 대한 양육권이랄까……)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판결해 줄 판사님이 없기 때문이다.




논문의 저자 자격은 애초에 불명확한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학술지 저자 원칙은 연구에 '지적으로 의미 있는 정도로 기여한 모두가 저자'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이 저자들이 논문에 모두 동의해야만 논문을 낼 수 있다. 


그런데 이 '의미 있는 정도의 지적 기여'라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상당히 모호한 것이다. 내 연구에 대해 듣고 지나가면서 한 마디라도 얹은 사람이 모두 저자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통 저자의 자격을 누가 판단하는가? 일반적인 경우에는, 누가 논문 공동 저자에 포함되고 누구는 안 되는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사람이 바로 지도교수이다. 지도교수가 제대로 된 연구 윤리와 판단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다. 저자 자격 판단은 지도교수가 학문적 부모로서 지도학생에게 올바르게 알려주고 이끌어주어야 하는 항목 중 하나다.


자, 그런데 바로 그 지도교수와 지적 재산권 분쟁이 생긴 사람에겐 누가* 판단을 내려주지?

* 알아보니 이론적으로는 학과장이나 학과에서 연구 관련 보직을 맡은 누군가에게 중재를 요청할 수 있는 모양이기는 하던데, 그들이 내린 결정에 강제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한 연구 분야도 다르고, 연구의 실제 진행 과정도 잘 모르기 때문에 사실 외부인이 관여하기 어렵다.




학생이 연구를 다 했더라도 지도교수는 이런 식으로 우길 수가 있다.


교수: 나는 이 연구의 저자이고 논문을 내려면 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 네가 아이디어를 가져왔을 때 내가 그거 좋다고, 진행하라고 승인했으니까. (이것을 '아이디어 형성'에 기여한 것으로 봐야 할지 의문이다.)

- 네가 가져온 데이터를 내가 보고받았고 지도했으니까. (이것이 유의미한 '지도'였는지는 서로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 내가 연구비*를 주었으므로. (원칙적으로는, 연구비에 기여했다고 논문 저자 자격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 연구에 내 장비*를 썼기 때문에. (이것도 마찬가지.)

* 내 생각엔 '내가' 준 연구비, '내' 장비라는 표현도 좀 이상하다. 정말 개인 재산을 턴 것이 아닌 이상, 대학 소속 연구 책임자로서 연구비를 집행하는 것이고, 장비도 말 그대로 자기 것이 아니라 학교의 재산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개인 재산이었다고 할지라도 그걸로 저자가 되는 건 아니지만.


원래라면 지도교수가 자격 없는 공저자를 걷어내야겠으나, 지도교수 본인이 이렇게 주장한다면 학생이 어떻게 하겠는가? 제대로 된 연구 지도와 지적 기여를 한 지도교수가 자기 몫을 일방적으로 잃어서는 안 되겠으나, 그렇지 않은 교수라도 얼마든지 자기 몫을 주장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뜻이다. 반대로 학생도 이상한 주장을 펼칠 수 있긴 하지만 대학원 권력 구조상 드문 것 같다.

 



또한 지도 교수의 교육자로서(혹은 인간으로서)의 자질과 연구 결과물의 저작권자로서의 권리는 별개이다. 극단적인 예로, 지도 교수가 경찰에 잡혀갈 만큼의 심각한 범죄를 학생에게 저질렀고, 그 결과 학생이 교수의 목소리만 들어도 매우 불안정해질 정도라고 하자. 그래도 원칙적으로 교수와 공동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논문을 낼 수 없다. 연구에 지적으로 기여한 '모두'가 동의해야 출판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여기에 테뉴어(정년 보장 제도)를 끼얹어보자! 교수는 웬만큼 잘못한 걸로는 일자리도 잃지 않고 논문 저자 자격은 더더욱 잃지 않는다.




연구에 지적으로 기여한 모두가 공저자가 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아마도, 누구도 부당하게 배제하지 말라는 뜻에서 생긴 원칙일 것이다. 지도교수와 학생 모두가 훌륭한 연구 윤리를 가진 책임감 있는 사람들이라면 전혀 문제 될 일이 없을 것이다. 의견이 다르다면 모두가 납득할 때까지 의견을 나누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지도교수의 권한이 학생보다 훨씬 강하며, 이것이 대학원 부조리의 원천으로 작동할 때도 많은 듯하다. 지도교수의 정치적 이득에 따라 학생은 동의하지 않는 공저자가 끼어들거나, 어떤 학생이 실제로는 일을 많이 했는데도 공저자에 포함되지 못하거나 하는 일도 왕왕 생긴다.


또한 앞서 언급한 예처럼, 여러 문제로 공동 작업이 불가능해졌을 때 정의로운 재산 분할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는 듯하다. 내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들어 알고 있는 경우는 모두 그랬다. 지도교수와 분쟁이 있었을 때 결국 양쪽 모두 연구 결과물을 출판할 수 없게 되거나, 적어도 학생은 자기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했다. 교수가 어떤 말도 안 되는 잘못을 했더라도. (그런데 논문을 못 쓰게 되었을 때의 손해는 교수 보다는 학생에게 더 큰 것 같다.)


이게 정말 공평한지, 과학과 사회를 위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나만 해도 세상에 도움이 되라고 한 연구를 결국 서랍 속에 썩히게 되지 않았나?




정당한 기여를 한 공저자의 동의 없이 마구 논문을 낼 수 있게 하자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나는 '연구에 지적 기여를 한 모두가 저자, 저자 모두가 동의해야 출판'이라는 원칙이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저자 문제는 연구실 안에서 알아서 결정하라고 손 놓고 있는 대학 및 학계도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가정 폭력은 집안일이니 알아서 하라는 국가 같다. 이런 방관은 최소로 말해 게으른 것이고, 사실은 악한 면까지 있다고 생각한다. 학계의 착취적 구조를 강화하기 때문이다.


(학문적) 부모가 다 제대로 된 부모는 아니지 않나.




나는 언젠가는 서랍 속에 갇힌 연구를 꺼내고 싶다. 저자의 권리는 모호한 것이니 나도 어떻게인가 문제를 피해 갈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논문 저자 원칙에 대해서도 학계에 목소리를 내고 싶다. 그러려면 일단 내가 주화입마를 극복하고 살아남아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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