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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곧 May 14. 2024

이젠 박사 학위를 받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야 그러고 보니 나 유능하네?

지도교수 변경 후 감사하게도 나에게 두 분의 새 지도교수님이 생겼다. B 교수님은 같은 학교, 같은 과 교수님이셨는데, 나와는 연구 주제에 연관성이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는 방법론은 꽤 달랐다. 그래서 B 교수님은 내가 해온 것과 비슷한 결의 연구를 하는 S 교수님께도 지도를 받는 게 좋겠다고 권해주셨다. S 교수님은 꽤 멀리 떨어진 지역의 H 대학 교수님이었는데 나와는 학회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다행히 흔쾌히 지도를 맡아주시겠다고 하여 나에게는 두 분의 새 교수님이 생겼다.


지도교수를 학문적 부모라고 한다면 그분들이 학문적 고아 상태였던 나를 임시 보호 또는 입양해서 길러주셨다고 해야 할 것 같다. B 교수님은 은퇴를 앞두고 계셨기에 나 말고는 지도 학생이 한 명뿐이었는데, S 교수님네 연구실에는 학생들이 좀 더 있었다. 학문적 형제자매도 새로 생긴 것이다.




두 분 모두 나를 맡은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코로나 시국이기도 해서, 딱히 공동 지도에 대한 체계적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멀리 떨어져 있던 S 교수님과는 주로 온라인으로 미팅을 하곤 했는데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쯤 S 교수님이 계신 H 대학을 방문할 기회가 왔다. 그때쯤엔 코로나19 규제도 완화되었고 나도 조교 일과 수업 등이 끝났기 때문이다.

H 대학으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운이 좋게도 학과에 꽤 다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대학원생 연구 예산이 있었다. 지원을 받으면 어떻게 사용할 계획이고 그것이 나의 학업에 어떻게 도움이 될 것인지를 써서 예산을 신청했다. 안타깝다고 할지 다행이랄지, 이전의 지도교수 변경 건을 처리하면서 학과 위원회가 나의 곤란한 상황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산 신청은 비교적 쉽게 승인되었다. S 교수님 쪽에서도 어느 정도 경비를 보태주셔서 몇 주 정도 H 대학을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경비를 아끼려고 게스트하우스에 묵었지만 그 정도면 감지덕지였다.


H 대학이 있는 도시까지는 비행기를 갈아타고 6시간 정도 걸렸다. 그동안 온라인으로만 보던 랩메이트(같은 연구실 동료)들이 공항에 마중을 나와 주었다. S 교수님과도 몇 년 만에 실제로 얼굴을 보았다. 모두 반갑고 고마웠다.




H 대학에서 6주 정도 지냈는데 그 기간이 나에게는 여러모로 의미 있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여러 어려움을 겪고 무기력한 시간을 길게 보냈더니 어떤 때는 내가 정말 무능하고 대학원에서 인생을 낭비한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새로운 환경에 가서 연구를 해보니 그동안 내가 쌓아온 것들이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좋은 면들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었다.


S 교수님네 연구실에 있던 장비 사용법을 이틀 정도만에 금방 익혔다. 심지어 랩메이트들은 잘 몰랐던 사용법을 내가 알아내서 알려주었고, 데이터 수집 프로그램 코드를 크게 개선하였고, 데이터 수집용 컴퓨터에 자꾸 생기던 오류도 해결해 주었다. '맞아, 내가 하드웨어를 다루는 일과 신호 처리 등에 기초가 꽤 탄탄했지' 하고 오랜만에 유능한 기분을 만끽했다.


거기서 지냈던 몇 주 만에 완전히 새로운 실험을 기획해서 실행했다. 그리고 꽤 의미 있는 결과를 얻었다. 몇 달에서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정인데 내가 번갯불에 콩을 웰던으로 잘 볶았지 뭔가.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사람이 참여하는 실험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도 꽤 유능한 기분이 들었다. 실험 참가자들과 일정을 조율하는 일부터 그들에게 실험 참가자의 권리를 안내하고 실험을 진행하는 일까지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이 부분도 내가 이전에 꽤 엄격한 훈련*을 거쳐 제대로 배웠었다는 것을 오랜만에 느꼈다. 나는 한국에서 석사 할 때 박사과정 선배들에게 배웠던 것인데, 그것을 이제는 내가 랩 메이트들에게 가르쳐주면서** 내가 이만큼 성장했구나 하고 느꼈다.

*사람을 대상으로 연구를 할 때는 특히 연구 윤리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 연구실을 중간에 옮겼다 보니, 나는 S 교수님네 연구실에 제일 최근 들어온 사람이면서도 대학원 연차는 가장 높은 사람이었다. S 교수님 네는 작은 연구실이라 중간에 박사과정 공백이 좀 있었기 때문인지, 선배 연구자에게 배워야 할 만한 것들이 전해지지 않은 부분이 좀 있는 것 같았다.


랩 메이트가 박사 중간발표를 앞두고 있었는데, 발표 준비를 도와주면서 나 스스로의 성장을 느꼈다. 이 친구가 큰 발표를 처음 하면서 많이 어려워하기에,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서 슬라이드를 하나하나 고쳐 나갔다. 친구는 정말 많이 배웠다며 '너는 이제 교수가 되어도 되겠다, 네가 왜 아직 대학원생인 것이냐'라고 나를 마구 격려해 주었다.

H대학 도서관


새로운 대학, 새로운 도시에 가서도 물 흘러가듯 쉽게 적응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장을 봐서 요리를 해 먹는 일, 자전거를 구해서 타고 다니는 일,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하고 랩 메이트들과 놀고 카페와 식당과 여러 동네를 알아나가는 일이 모두 즐겁고 자연스러웠다.


교수님 책장에서 내 취향에 꼭 맞는 과학책을 빌려다 읽으면서 행복했다. S 교수님과는 생각의 결이 비슷한 데가 있어서 그런지 책장에 읽고 싶은 책이 많았다.


여러 세미나에 다니면서 연사들과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눴다. H 대학이 내가 원래 다니던 학교보다 규모가 훨씬 커서인지 내 관심사에 맞는 세미나가 자주 있었다.


H 대학에 흥미로운 수업을 하는 교수님이 있다기에 이메일을 보내서 만나러 갔다. (교수님들은 누가 자기 일에 관심 있다며 만나자고 하면 생각보다 잘 만나준다. 대부분 좋아하는 것 같다.) 찾아가서 여러 주제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오는데 '맞아, 나는 학계의 이런 점을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이런 학계의 규칙과 문화를 꽤 잘 알고 있고, 학계 사람들과 즐겁게 연결될 수 있다는 것도 새삼스럽게 느꼈다.


연구실 친구들을 불러 모아 같이 맛있는 걸 먹고,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나가고, 전시를 보러 갔다. 이 친구들도 코로나 기간에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서로 자주 만나지는 않았다며 내가 구심점이 되어주어 좋다고 했다. '건강한 연구실 문화가 어떤 것인지, 사람들이 연결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알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카페에서 교수님께 빌린 책을 읽는데 참 좋았다.

짧은 기간에 실험을 해내려니 아주 정신이 없었고 어려운 일도 몇 가지 있었지만, H 대학에서 몇 주를 보내고 나니 이전 연구실에서 입은 주화입마가 꽤 회복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아주 오랜만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나 좀 괜찮은 사람 같은데? 나 좀 연구자로서 유능한데? 나는 이다음에 어느 연구실, 어느 대학에 가든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었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젠 박사 학위를 받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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