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줄곧 Jun 11. 2024

박사 디펜스 커미티를 구성했다

그리고 발등에 활활 타오르는 불이 떨어졌다


디펜스를 하기로 하고 가장 급했던 것은 커미티(심사위원회)를 꾸리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디펜스 날짜를 가능하면 빨리 예약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도교수님께서는 ‘심사위원들을 한 날 한 시에 모으는 것만 해도 디펜스의 절반은 해낸 것’이라고 까지 하셨는데, 바쁜 교수님들이 모두 참석할 수 있는 시간을 찾는다는 것이 무척 까다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박사 학위 심사는 오래 걸리고 심사위원도 많아서 몇 달 안에는 모두가 가능한 날이 하나도 없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 학교마다, 학과마다 규정이 다르지만 대체로 지도교수, 같은 학교 교수, 학교 외부 전문가 (주로 다른 학교 교수나 박사급 연구원)을 각각 최소 몇 명씩 포함하여 커미티를 꾸리게 되어 있다. 학위 논문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것에 직접적인 이득은 없는 경우가 많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보니 학계에 있는 사람들이 나눠서 감당하는 의무 같은 면이 있다.  


날짜를 정하려면 우선 커미티에 참석할 교수님들을 확정해야 했다. 학교 외부 심사위원을 구하는 것이 가장 큰 고민이었는데, 어느 분이 해주셔도 감사했겠지만 이왕이면 내 연구에 정말로 관심이 있을 것 같은 분, 흥미로운 시각으로 의견을 주실 분을 모시고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교수님들이란, 특히 재미있는 연구를 하는 데다가 인지도도 있는 교수님들이란 너무 바쁘다는 것이었다. 지도교수님께서 처음 추천해 주신 분께 메일을 보내 봤더니 그분은 미안하지만 너무 바쁘다며 거절하셨다. 또다시 고민을 거듭하다가 이전에 학회에서 잠시 인사를 나누었던 어느 교수님이 생각났다.


그 교수님은 연구 분야에 연관성이 꽤 높았을 뿐만 아니라 소속 대학에서 학과장 정도의 직책에 있을 만큼 연구자로서의 경력이 탄탄한 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그분이 여성 과학자라는 것도 좋았다. 나 또한 여성 과학자로서 다른 여성 과학자들과 연결되는 기회가 반가웠고, 특히 지금보다 더 차별이 심했던 시절을 살아남고 그분 같은 위치에 도달한 여성 선배 과학자를 만나는 것은 더 귀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커미티의 다른 분들은 다 남성이었기에 적절한 균형을 맞춘다는 면*도 있었다. 메일을 보내서 부탁드렸더니 다행히 흔쾌히 커미티에 참여해 주시겠다고 했다.  

* 학회 연사나 좌장, 위원회 등을 구성할 때 가능하면 인종, 성별, 연령 등의 면에서 다양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 1) 다양한 배경과 시각에서 나오는 의견들이 논의를 더 풍부하게 하며, 2) 소수 그룹에 속한 사람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평가 절하하여 기회를 빼앗는 것을 방지하고, 3) 그들이 경험과 경력, 네트워크를 형성하도록 돕고, 4) 그들의 존재가 다음 세대에게 롤모델이 되며, 5) 장기적으로 더 나은 학계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모든 면에서 다양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늘 가능한 것은 아니다.  


여기까지 커미티를 구하고 보니 내 커미티에 속한 분들은 대부분 고연차 교수님들이었는데, 지도 교수님께서 남은 심사위원 한 분은 같은 학교의 신임 교수님으로 채우기를 권하셔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심사위원 요청은 젊은 교수님들 보다는 경험이 많은 분들께 쏠리기도 하고, 신임 교수님도 심사에 참여함으로써 소속 학교의 학위 심사 과정을 배우고 커미티의 다른 교수님들과 연결될 기회를 얻어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교수님께도 메일을 해 보니 다행히 흔쾌히 커미티에 참여해 주시기로 했다. 일단 커미티 구성이 끝났다.




학위 논문을 제출하고, 디펜스를 하고, 심사위원의 수정 요청 사항을 반영해서 학위 논문을 최종 제출하기까지 기한이 약 세 달 정도 남은 시점이었다. 디펜스가 너무 일찍 잡히면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고, 너무 늦게 잡히면 학위 논문을 수정할 시간이 부족할 터였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는 학위 논문이 아직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래도 좀 늦게, 대략 두 달 정도쯤 후로 잡혔으면 했다.


디펜스 일정을 정하려 하니 가능한 날짜와 시간을 알려주십사 하는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제발……. 착하게 살게요.




며칠 사이 커미티 교수님들에게서 속속 답장이 도착했다. 가능한 날짜를 비교해 보았다.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날을 추려보니 5주 후에 하루, 세 달 후에 하루 있었다.


하하. 그럼 그렇지. 내 뜻대로 될 리가 없다. 세 달 후에 디펜스를 하기에는 최종 논문 제출 기한이 너무 촉박해서 5주 후 날짜로 정했다. 그리고 일정을 역으로 계산해 보았다. 커미티 교수님들이 디펜스 전에 논문을 읽어볼 시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정해진 날짜까지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급하게 되었다.


내 계획대로였으면 한 6주 정도 학위 논문 작성에 몰두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2.5주 안에 논문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와, 이게 절반이 넘게 줄어들다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엄청 뜨거웠다.


그래도 모두가 참석할 수 있는 날이 있기는 하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매일 랩에 가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심을 지켰다.


휴일에도 논문을 쓰는 날이 꽤 있었다. 도저히 기한 안에 맞출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는데 마음만 급하고 진도는 잘 안 나갔다. 그래도 휴일에는 주로 카페나 펍 등에 앉아서 썼다. 액체(커피나 술)를 논문으로 바꾼다는 심정으로. 괴롭고 막막하고 슬프고 다 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논문을 계속 썼다. 쓰다 보니 분량이 불어나고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하지만 무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액체가 줄어드는 만큼 논문이 늘어난다는 심정으로


심지어는 헬스장에서 논문을 쓰기도 했다. 혼자 있다 보면 주화입마가 악화되어 기분이 나빠지고 무기력에 빠지기 쉬웠기에 가능하면 집 밖으로 나가려고 노력했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는 와중에도 때때로 허무감과 고립감, 좌절감이 찾아왔고 많은 고비가 있었다. 하지만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하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기분이 드는 날도 많았지만 적어도 매일 랩에 갔다.





이때쯤엔 너무 괴로워서 만나는 사람마다 괴롭다고 징징거렸다. 교수님에게도, 친구에게도, 헬스장 고인물 트레이너에게도.


"AAAAHHH……, I feel so miserable!" (아아아악……,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다들 위로하고 격려해 주었지만, 내 불평이 너무 적나라해서 그랬는지 다들 좀 재미있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학회 다녀왔습니다! 내돈내산 학회 이야기도 나중에 들려드리겠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