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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원의 빛 강성화 Aug 31. 2021

엄마의 김밥에는 눈물이 담겨 있었다

소박했지만, 내게는 너무나도 맛있었던 엄마의 김밥

엄마, 그런데 있잖아.
어릴 때 엄마가 김밥 쌀 때 속재료
세 가지 정도만 넣었잖아.
단무지랑 소시지, 그리고 달걀이었나?
그땐 형편이 어려워서 그랬던 거지?


며칠 전 엄마와 통화를 하면서 그동안 한 번도 꺼내지 않았던 얘기를 했습니다. 지난주부터 우리 브런치 글방을 핫하게 하다 못해 라디오 방송 사연에까지 나왔던 모두맑음 친구 작가님의 김밥 글을 보니 문득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되었던 영향인 듯합니다.^^(저도 엄마의 김밥 이야기 다음에 꼭 쓰겠다 친구 작가님에게 약속했습니다.^^)


"달걀은 넣었지. 그래도 달걀은 항상 있었으니."


초등학교 시절 소풍과 운동회가 있을 때마다 엄마가 싸주셨던 김밥은 참으로 소박했습니다. 노란 단무지와 분홍색 소시지, 그리고 노란색 달걀지단 이 세 가지가 속재료의 전부였습니다. 혹시나 미나리나 시금치, 그리고 오이가 들어있었나 곰곰이 생각해 봐도 떠오르지 않는 걸 보면 그 세 가지가 전부였던 듯합니다.


꾹꾹 눌러 김밥 속을 가득 채웠던 흰 밥에 비해 너무나도 빈약했던 속재료로 만들어진 김밥 속에는 그때 그 시절 5남매 키우느라 허덕였던 엄마의 고달픈 삶과 눈물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니, 그래도 배불리 밥이라도 먹이려고 속재료를 대신해 꾹꾹 눌러 담았던 고소한 참기름 냄새 가득했던 하얀 쌀밥에는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전 5남매 중 막내입니다. 나이 터울 많이 나는 늦둥이 막내로 태어난 저에게 언니, 오빠들과 함께했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별로 없습니다. 동네 친구들 중 동갑내기가 한 명도 없던 저는 어린 시절 한 살 위 친구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래서 울고불고 난리(?)를 쳐서 생일이 8월(그것도 주민등록상에는 11월) 임에도 불구하고 7살에 입학했습니다.^^


제 나이 10살이었던 4학년이 되었을 때 첫째 언니는 결혼을 했습니다. 그리고  둘째 언니는 대학 입학, 셋째 언니는 고등학생, 오빠는 중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했습니다. 그래서 5남매라고는 하지만 외동처럼 혼자였던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런 제 모습이 마음에 걸렸던 것인지, 아니면 4살 때 집 앞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크게 다쳐 사경을 헤맸던 것이 마음에 걸려서인지 지금까지도 엄마 눈에는 '언나(어린아이)'로 보이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6학년이 될 때까지 엄마는 운동회와 소풍이 있을 때마다 그 소박한 김밥을 싸가지고 오셨습니다.


그렇게 6학년 때까지 엄마가 소풍에 따라왔던 건 5남매 중 막내인 저만 누릴 수 있었던 특권(?)이었던 듯합니다. 남편은 다 컸는데도 무슨 엄마가 소풍을 따라오냐고 놀리듯 말했지만, 제게 있어 엄마가 없는 소풍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입니다. 엄마와 둘이서만 오롯이 행복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속재료 세 가지가 전부였던 소박하디 소박했던 김밥이었지만 제게는 너무나도 맛있는 김밥이었습니다. 김밥과 함께 챙겨 오셨던 삶은 달걀과 사이다. 그 당시 전 흰 자만 먹었고, 노른자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습니다. 흰 자 없는 퍽퍽한 노른자만 먹으면 목이 멜 텐데 당신은 전혀 그런 기색 없이 맛있게 먹는 저를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셨습니다.


"엄마, 그런데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면 엄마가 나 대신 항상 가서 보물 찾아서 내게 줬잖아. 왜 그랬어?"


"나(어린아이) 같아 보여 그랬지. 언나 같은 것이 보물 찾으러 뛰어가다 넘어지면 어쩌나 싶어서."


힘든 일하며 5남매 키우시느라 눈떠서 잠들 때까지 허리 한 번 제대로 필 시간이 없었던 고달픈 당신의 삶이었지만, 언나 같기만 했던 막내딸을 위해 6년 내내 소풍에 따라오셨던 당신. 그것은 다른 그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오직 하나로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자식을 향한 '엄마의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제게도 사실 엄마의 소박한 김밥이 부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소풍이야 엄마와 단 둘이 점심을 먹어 상관이 없었지만 운동회는 그게 아니었습니다. 같은 동네 친구 엄마들도 함께 모여 점심을 먹으려 도시락을 열었는데, 그 순간 친구들의 알록달록 형형색의 예쁜 김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순간 2층 찬합을 가득 채우고 있었던 소박한 엄마의 김밥이 너무 초라해 보였습니다. 분명 항상 맛있게 먹었던 똑같은 맛의 김밥이었는데 그 순간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슬며시 친구들에게서 조금 떨어져 앉아 김밥을 살짝 팔로 가리고 불편한 자세로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저를 보고 있던 엄마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순간 목이 멨습니다. 엄마의 눈을 보는 순간 다시 고소한 참기름 냄새 가득한 김밥의 맛이 느껴졌습니다. 전 불편한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맛있게 김밥을 먹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유난히 식성이 좋았던 전 복스럽게 잘 먹는다고 친구 엄마들에게도 칭찬을 많이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2층 찬합을 가득 채웠던 김밥은 모두 제가 다 먹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던 엄마의 점심 메뉴는 김밥이 아닌 그날 학부모회에서 팔았던 육개장 한 그릇이었습니다.


생활력 강하고, 성격 좋고, 사교성 좋아 사람들이 많이 따랐던 엄마였지만, 유독 요리 솜씨는 별로 없었던 엄마입니다. 그런데 속재료도 별로 없던 엄마가 싸준 김밥의 맛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을 보면 제 입맛에는 그 어떤 김밥보다 맛있었던 듯합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엄마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겠지요.


"그 시절 정말 쌀 줄어드는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5남매 도시락까지 챙겨주고 하면 쌀 80kg(20kg이 아닌..)가 한 달도 안 가고 23일 만에 다 떨어졌어. 그러니 도시락 반찬거리까지 살 돈이 많이 있길 하나. 집에서 키우는 걸로 반찬을 해서 먹었지."




그렇게 힘들었던 그 시절,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오셨던 부모님 덕분에 우리 5남매는 잘 자랐습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고향을 떠나 아무 연고도 없던, 빈손으로 시작해 60년 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그곳에서 가장 좋은 집을 새로 짓고 지금은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고 계십니다.


우리가 고향에 갈 때마다 항상 저와 제 딸에게 용돈을 아낌없이 주고 또 주셨던 것은 그때 그 시절 자식들에게 김밥 한 줄조차도 남들처럼 제대로 싸주지 못했던 가난했던 당신들의 그 시절을 그렇게라도 채워주고 싶으셨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https://brunch.co.kr/@alwaysbehappy/95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 몰라.
이번 생엔 내가 엄마 사랑
많이 받으며 살았으니
다음 생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면 좋겠다.

그럼 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주고,
예쁜 옷도 많이 사주고,
좋은 곳도 많이 데려가고,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게 해 주고
내가 그동안 받았던 것 이상으로
울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하고 챙겨줄 수 있게.
엄마, 사랑해~♥


ps. 당뇨가 있어 거의 40년을 약 드시고 식단 조절하느라 맛있는 것들 마음껏 한번 드시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먹는 즐거움을 모르고 사셨던 엄마를 위해 딸이 만든 음식 눈으로라도 마음껏 드시라고 요리 사진 퍼레이드 살짝만 하겠습니다~^^

< 엄마가 내 엄마라서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
< 이번 생엔 내가 엄마 사랑 많이 받으며 살았으니 >
< 다음 생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면 좋겠다 >
< 그럼 내가 맛있는 것도 많이 만들어 주고 >
< 예쁜 옷도 많이 사주고 >
< 좋은 곳도 많이 데려가고 >
< 하고 싶은 거 맘껏 하게 해 주고 >
<  내가 그동안 받았던 것 이상으로 >
< 울 엄마 많이 많이 사랑하고 챙겨줄 수 있게 >
< 엄마, 사랑해~♥ >


written by 초원의

illustrated by 순종


Always be happy!*^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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