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by 부지러너

바둑학원에 다녀오던 길,

할아버지의 교통사고 소식에 아빠는 눈물을 훔치며 짐을 싸고 있었어.

그 날 시골집에 내려가는 차 안에서 아빠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추석 연휴 마지막 날, 갑작스러운 아빠의 사고 소식에

제발 살아있기를 바라며 운전을 하고 있는데

문득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때의 아빠가 지금의 내 나이였다는 사실에

나는 아빠가 할아버지 사고일 이후로 살아내온 30년의 세월을 마주하게 되었어.


장례식장에 온 많은 아빠의 지인들을 통해 내가 몰랐던 아빠의 삶의 조각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그렇게 아빠를 조금 더 알게 된 계기가

아빠의 죽음이라는 사실이 너무 아이러니 하더라.


아빠가 있는 현충원에 갈 때면 아빠와의 기억을 더듬어 보곤 하는데

즐겁고 행복한 기억보다는 걱정과 우려 내지는

더 많은 기대와 질책이 화살로 돌아온 기억이 대부분 이었던 것 같아

학창시절부터 맹부삼천지교를 하느라 떨어져 지낸 시간이 많아 어색했던 우리가

내가 결혼하고 출가 한 뒤로 애뜻해진 것 같았는데 하루 아침에 아빠가 세상에 없어지고 나니

아빠가 한 달 뒤 여동생의 결혼식에 메고 갈 넥타이를 가족들 앞에서 고르면서

밝게 웃던 모습만 남아버렸어.


이제 나는 혼자 남은 엄마와 함께 할 짧은 시간을 행복한 기억들로 채워

엄마가 아빠 곁으로 갈 때 들려보낼 수 있도록 노력할게


아빠의 부재를 부정하고 슬퍼하기보다 아빠를 그리워 하는데 익숙해지기로 한 나는

내가 죽을 때 기억될 내 딸 슬이의 가슴 속에 행복한 아빠와의 추억이 많이 남을 수 있도록

내게 남은 얼마의 시간을 채워볼게.

언제 시간되면 꿈에 찾아와 아빠에게 나는 어떤 기억으로 남았는지 꼭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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