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 읽어주는 남자 Oct 21. 2015

그래도 포기할 수 없는 것

바로 사람이다

 


여러분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가요?

전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그중에서도 바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참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동경하는 사람, 존경하는 사람, 나와 비슷한 사람, 닮은 사람, 정반대의 사람,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 정이 안가는 사람, 잘해주고 싶은 사람, 항상 생각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증오하는 사람, 아무 이유도 없이 싫은 사람 등등 많은 모습들을 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사람들은 경험과 갈등과 기대, 나의 성향에 따라 시험대에 놓이게 됩니다.

어제는 사랑하는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증오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멘토였지만 실망을 하게 되기도 하고, 높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누군가에게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기도  하며, 내가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얘기를 듣고 편견을 갖게 돼서 싫어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갈등을 내포하고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과 많은 경우의 수, 각자의 성향이 섞이게 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게 됩니다. 좋아하던 것들이 싫어지게 되기도 하고, 관심 없던 것들에 갑자기 관심이 생기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희생하기도 하며, 나와는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몇 사람 이상만 모이면 누군가를 비난하기를 일삼는 사람들이 있기도 합니다.      


 해석의 차이를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다양한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획일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스마트라는 의미가 깃들지 않은 세상. 사람을 대하는 다양한 해석이 요구를 불러 일으켰으며, 그 길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치 있는 것들을 생각해냈기 때문에 지금의 이 세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옳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유 없이 비난하거나, 사실이 아닌 것을 떠들어대고 대리만족을 느끼는 행위들은 없어져야 합니다. 이 행위들로 인해 누군가는 비난을 받고, 매장을 당하게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뚜렷한 영문도 없이 말입니다. 또한 편을 가르는 행위도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로인해 누군가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고 치우쳐지기 때문입니다. 노사라고 해서 모든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누군가를 하찮게 여기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편견을 갖고 바라바서도 안될 것입니다. 이밖에도 많은 부분들 잘못된 것들이 존재합니다.     


 이와 같은 잘못된 것들은 생각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바퀴벌레보다 더 끈질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게 처음부터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을 인식 못한 것 입니다. 배움과 앎의 깊이와 상관없이 그런 부분에만 몰두해서 얄팍해지는 것입니다. 마치 사람이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똑같이 대우를 받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끔씩 그런 잘못을 하고도 버젓이 얼굴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호기로 비춰지기 까지 합니다. 정치인들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이 있기는 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는 곳 반기를 드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미 지나칠 정도로 여론몰이를 해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웬만해선 무너지지 않을 성벽을 쌓아놓은 것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때론 정의를 부정하는 것인 양 비춰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렇게 나서서 떠들어대는 정치인들은 호기로 비춰지는 게 당연하다 싶기도 합니다. 대다수는 나서서 내가 얘기했다고 말도 못하고, 정체가 드러나면 뒷걸음질 치기 바쁠 테니 말입니다. 뒤에서 남의 말 하는 사람치고 바른 사람을 본 기억이 없네요.     


 모든 인간관계는 시소와도 같습니다.

왼쪽으로 기울었다, 오른쪽으로 기울었다.

감정의 기복도 이와 같아서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틀어져버린 인간관계에서는 더 이상 시소처럼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내려간 상태로, 다른 누군가는 올라간 상태로 관계의 종말을 예고합니다. 

틀어져버렸다는 것은 다른 누군가가 더 이상 나와 함께 시소에 오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점차 시간이 지나져서 나 홀로 덩그러니 올라있는 시소에서 내려오기 전까지는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올라간 상태 혹은 내려간 상태에서 머물러 있게 됩니다.      


 내가, 미래의 어느 시점에,

누군가에게 실망하고, 관계의 종말을 고하고...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런 관계를, 그런 인간들을     



 안타깝게도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만이 무언가를 하나씩 배워가게 됩니다. 

그것이 동반되지 않은 배움은 깊이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역시 그러합니다. 시소에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싫어서, 내가 상처받는 것이 두렵다고 해서

사람을 피해갈 수는 없습니다.     


 성공이 보장된 노력은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짙은 어둠에서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고, 승산을 알 수 없는 투쟁 속에서 겨우 살아남아서 예상치 못하게 움켜쥐는 것, 그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인생에서의 성공.

그 시작점은 다른 무엇도 아닌 사람, 

그리고 또 사람입니다.     



인간은 인간을 넘어서야 비로소 인간이 된다.

-j.h-

이전 04화 '독서체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