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wayslilac Apr 18. 2021

요즘은 그럭저럭 잘 자요.

    최근 들어 조금만 뒤척이다 잠에 드는 호사를 누리고 있었음을 간밤에 갑자기 찾아온 불안감을 느낀 후 깨달았다. 진정되지 않을 것 같던 농도 짙은 불안감이 금세 사그라들고 다시 잠에 들어버렸다는 사실은 꽤나 놀라웠다. 한동안 불면의 기간을 보내다가 나아진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사람의 감정은 좋았다가 나빴다가 하는 반복적인 파동의 형태를 지니는데 사람에 따라 진폭의 높이가 다를 뿐 파동은 죽기 전까지 계속된다. 한 정신과 의사는 인간은 인지하지 못하는 많은 요소들에 의해 감정에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계절의 변화를 예로 들어, 겨울이 다가오는 11월쯤에 고독함과 무력함을 느껴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늘어난다고 했다. 근 몇 달 파동이 상승곡선으로 접어드는데 기인한 변화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첫째, 운동을 시작했다. 우울증을 겪었다는 모 연예인, 자기 계발서의 단골 조언인 몸을 움직여라, 라는 말을 듣고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런 조언을 접했을 때 바로 실천해서 효과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본인은 남들이 하는 얘길 한 귀로 흘려듣곤 나중에서야 실제로 겪은 후 아, 이게 그거였구나, 하는 타입이다. 단순히 친구가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식단을 열심히 하는 걸 보고 자극받아 시작한 근력운동이었다. 단지 안에 있는 허름하지만 있을 기구는 있는 헬스장을 3개월 치 끊고, 재택근무 시작하기 전 아침에 운동을 갔다. 기구 사용법을 배웠던 기억을 더듬고 동영상으로 자세를 익히며 운동을 했다. 대단한 근육을 가진 사람의 자신감으로 거울 앞에서 2kg짜리 덤벨을 들었다. 그렇게 일주일에 4회 이상 운동을 한 지 25일째, 식단 조절은 안 해서 건장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지만, 뭔가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점심시간을 틈탄 낮잠 20분에 행복을 느꼈고, 운동을 가야 한다는 목적의식은 하루에 활력을 줬다. 땀을 한가득 흘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상쾌한 바람은 하루가 즐거울 것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몸이 피곤하니 자연스럽게 잠이 왔다.

    둘째, 사람들을 만났다. 무기력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도 만나기 싫어진다. 안부를 묻는 연락도 귀찮아지고 다가오는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감정이 조금 풀린 뒤에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약속을 미루고 미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만나면 감정이 풀리기도 한다. 정확히 말하면 대화를 하면서 풀린다.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혼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기도 하고, 그저 표현을 하는 자체에 숨통이 트이기도 한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얘기를 꺼내니 실제로 간단하고 별일 아닌 이야기가 되어 응어리가 허무하도록 쉽게 풀려버렸다. 힘들게 이야기를 꺼냈지만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았던 부정적인 경험에 발이 묶이면 긍정적인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어진다. 이런 상황들을 마주하다 보면 타인에게 거절당했다는 수치심보다 받아들여졌다는 안도감이 훨씬 크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털어놓다 보니 자기 전에 하는 고민의 양이 줄었다.

    셋째, 긍정의 희망 회로를 돌렸다. 저 사람은 일이 술술 풀리는데 나는 왜 제자리일까,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 털어놓기에도 쩨쩨해 가장 깊숙한 곳에 꽁꽁 숨기기 마련이다. 애매한 열등감을 내려놓고 저 사람이 잘되면 나한테도 좋은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큰 시험에 합격하여 취직한 친구의 회사 이야기를 들으며, 축하하는 마음과는 별개로 내가 버는 돈이 약소해 보이고 내 삶이 초라해 보이는 마음이 들었다. 과정과 상황은 무시된 채 결괏값을 보며 비교하려고 하는 못난 마음이 나오려 했다. 희망 회로를 돌렸다. 이 친구가 잘된 것이 나한테도 분명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니 더 잘되어야 한다고 되새겼다. 그러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고 나와 다른 삶이니 비교하지 말자는 결과에 금방 도달했다. 친구는 회사를 다니며 얻은 정보들을 공유해주었고 언젠간 내가 친구 덕을 보는 날이 오겠구나 싶었다. 또, 나는 싱글인데 남자 친구가 끊이지 않는 친구를 보면서 나는 왜 혼자일까, 하는 마음이 들기 전에 친구가 행복하면 나한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축하해주니 소개팅이라는 소정의 성과(?)를 얻기도 했다. 효과가 보이는 듯하자 더욱 믿음이 커졌다. 주변 사람들이 잘 되어야 나도 잘될 것이고, 반대로 내가 잘되야 내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되고 잘되어야 하니 우울하게 동굴 속에 있을 틈이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