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리뷰
더 게임 체인저스는 채식을 하는 운동선수들에 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다.
여기에서 소개되는 운동선수들은 그냥 평범한 보통 운동선수들이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다투거나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최상급의 선수들이다. 다시 말하면, 인류 중에서 가장 뛰어난 체력과 몸, 강한 힘을 가진 사람들 중에 채식주의자들이 상당수 있다. 격투기 선수이자 인스트럭터인 비非채식인 선수가 이런 흥미로운 사실에 주목하여 채식인 운동선수들을 인터뷰하고 본인도 스스로 채식을 실천하며 느꼈던 변화를 찍었다.
일단 등장하는 운동선수들이 눈길을 강하게 끈다. 애팔래치아 트래킹 기록을 깨버린 최고의 울트라 마라토너 스캇 주렉,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공인 555kg)를 드는 남자 파트릭 바부미안, 30대 고령에 채식을 실천하고 기록을 몽땅 갈아치웠던 칼 루이스, 70대에 새로운 터미네이터 시리즈를 찍은 아놀드 슈왈츠제네거, 팀 식단을 채식으로 바꾸고 최고의 시즌을 보낸 미국프로풋볼팀 테네시 타이탄스, 채식 식단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올림픽 2연패를 거둔 400m 육상선수 모건 미첼, 40세의 고령에도 채식 이후 기계 같은 몸이 되어 은퇴를 번복한 미국 최고의 사이클리스트 도치 바우슈, F1에서 5회 우승한 루이스 해밀턴 등등 많은 채식인 운동선수들이 소개된다.
채식 식단을 유지했더니 혈액 검사 상 수치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신체 능력이 확연히 체감할 정도로 향상되며, 운동 후 회복 속도가 매우 빨라지는 것은 모든 채식 운동선수들의 공통된 증언이다. 이 다큐를 만든 제임스 윌크스도 채식으로 식단을 바꾸고 로프 운동을 60분 이상 쉬지 않고 지속하면서 체육관 신기록을 작성한다. 그의 기존 기록은 10분 남짓이었고, 다른 사람이 세웠던 기존 체육관 최고 기록은 20분가량. 심지어 그는 1시간이 지난 뒤에도 멈추지 않고 로프를 계속 흔들 수도 있었는데 중간에 그만둔 것이었다. 이밖에도 식단을 바꾸기 전에는 인버티드 레그 슬레드를 136kg까지 하던 사이클 선수 도치 바우슈가 채식 전환 이후에 265kg을 60회씩 5세트를 하게 된 경우도 소개되고, 세계 최고의 스트롱기스트 맨 파트릭 바부미안은 채식을 하면서 체중이 105kg에서 130kg로 증가하면서 오히려 근육량이 엄청나게 늘어났다고 한다. 식단을 바꾸고 하늘과 땅 차이만큼 향상된 기록과 몸 상태가 반복해서 나올수록, 정말? 이거 사실 맞아? 이해가 안 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진짜 채식 하나만으로? 이건 내가 알고 있던 상식과 너무나 다른데?
다큐에서 구체적으로 소개되진 않지만 지나가는 화면에서 비건인 선수들이 여럿 등장하는데, 스포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다.
테니스 선수 조코비치가 최정상급 선수로 성장하는데 식단 변화가 아주 컸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나는 단지 그가 글루텐 프리 식단으로 바꾸면서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정확하게는 글루텐 프리 비건 식단을 시작하면서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구글링 해보니 조코비치 부부는 몬테카를로에 비건 레스토랑을 오픈하기도 했다. 그는 채식을 통해서 그저 그런 상위권 선수에서 역사적인 선수 중의 한 명이 되었다.
범접할 수 없을 만큼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인 리오넬 메시도 놀랍게도 비건이다. 메시는 2013년 국가대표로 뛰었던 볼리비아 원정에서 경기 중 구토 현상을 겪은 후 식단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 시즌 중에는 완전한 비건 채식을 하고 있다. 심지어 그는 raw vegan으로 영양학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최대한 가공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음식을 섭취한다고 한다. 비건이 된 후로는 그와 같은 체력 저하와 소화장애 증세를 겪지 않고 있다고.
이 정도 레벨의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들보다 몸이 훨씬 예민해서 미세한 컨디션 차이로도 퍼포먼스에 큰 영향을 받고, 인간이 쓸 수 있는 운동 능력을 한계까지 뽑아내며 극단적일 만큼 신체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선수들이 채식을 계속 유지하는 사례들은, 수치가 빼곡하게 적힌 그 어떤 논문들보다 채식이 실제로 우리의 몸과 운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반박하기 힘든 뚜렷한 증거가 될 수밖에 없다.
알려져 있다시피 요가에서도 채식을 추구하는데, 요가가 가진 영적이고 실천적인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실질적으로 요가 자세를 만드는데 채식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채식을 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몸의 차이를 느끼는 요기들이 많다. 이전에는 잘 안되던 자세들이 채식을 하면 가능해진다고 한다. 식단 하나로 몸이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다. (난 채식을 했을 때의 차이를 극적으로 느끼지는 않지만, 위장 상태에는 아주 큰 영향을 받는다. 일상에서는 불편함을 못 느꼈을 뱃속의 비스킷 한 조각만으로도 요가하면서 고통이 몇 배가 증폭될 때가 있다. 위장 상태가 몸으로 느끼는 것보다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요가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결국 그 말은 육식이 요가에 좋지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육류는 확실히 소화에 부담이 된다.)
중간에 흥미로운 실험들도 진행한다. 20대 풋볼 선수 3명을 상대로 채식을 했을 때 발기 시 음경의 둘레와 야간 발기 시간이 어떻게 변하는지 측정해보기로 한다. 육류를 섭취한 날과 완전 채식을 한날을 비교했을 때, 세 명 모두 육식을 한 날보다 채식을 한 날에 발기 시 음경 둘레가 평균 10% 가까이 더 커지고 발기 시간은 무려 300~500% 정도 증가한다. 이 결과에 따르면 남자들은 채식을 해야 정력이 세지는 것이다. 흔히 피가 흐르는 스테이크 좀 썰어줘야 남자답다는 선입견은 진실과 완전히 정반대일 가능성이 있다. 고기가 실은 고개 숙인 남자를 만들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다큐 하나로 채식이 육식보다 과학적으로 우리 몸에 더 적절하고 우수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쉽게도 시간이 한정된 시청각 자료의 한계 때문에 구체적인 측정값과 깊이 있는 이론들이 자세히 소개되지는 않는다. 여기에 소개된 일화들도 탑 클래스 선수들 중 일부일 뿐이고 결론을 내리기엔 표본이 적다. 하지만 육식에 대한 굳건한 신화가 헛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싹트기에 다큐가 내세운 근거는 충분하다. 과연 육식이 우리 몸을 더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것일까? 인간은 진짜 고기를 먹어야 힘이 샘처럼 솟아나는 것일까? 운동을 할 때는 반드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만 하는 것일까? 반대로 채식을 하면 허약한 몸이 될까? 이 다큐에서 채식을 하는 운동선수들의 몸이 무엇을 대변하고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