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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거작가 Mar 13. 2024

교도소는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조직 내 사람의 변화에 대한 단상

교도소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같은 단어입니다.

요즘 창작의 자유와 작가적 상상력 덕분에 이 범상치 않은 교도소가 때로는 인간애의 장이 되고,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일상이 배우들의 비주얼과 스토리에 따라 극적으로 그려지곤 있지만, 교도소는 여전히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은 미지의 그곳일 뿐입니다.


교도소라는 한자를 확인하기 전에는 가르칠 교(敎) 길 도(道)라고 어렴풋이 짐작했었습니다.

하지만, 찾아보니 조금 다른 한자이고 의미도 좀 달랐습니다.

교는 바로잡을 교(矯)이고 도는 인도할 도(導)였습니다.

길을 가르친다와 바로잡고 인도한다는 작지만 큰 의미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전자는 왠지 스승과 제자 같은 느낌이라면 후자는 기회를 주고 바로잡으려 하지만, 본인이 응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그래서 대상의 변화에 대한 의지와 효과의 한계가 느껴집니다.


조직 내에서 리더들의 역할도 시대와 세대에 따라 변천해 왔습니다.

제가 팔로워로서 경험한 리더들은 대부분 엄근진에 나를 따르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요즘은 리더십의 초점이 코칭, 피드택, 소통, 양성 같이 리더 중심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성장과 피드백에 더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고, 자연스럽게 리더의 역량과 해야 할 일도 구성원 개인의 하는 일과 특성, 수준에 따라 대응해줘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조직에서의 리더와 구성원 간의 관계는 敎道 보다는 矯導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교도소에 머무는 사람들은 영화 속 대사처럼 다 억울한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행위로 인해 그 대가로서 자유를 뺏기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매우 억압적인 상황에서조차도 사람의 변화는 간접적이고 선택적으로 가능하고 그 효과조차 여전히 의문시되곤 합니다.


하물며 조직 내에서 리더로 인한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는 어느 정도 일까요?

물론 교도소와 조직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적 비약일 수 있고, 교도소 내 사람들과 환경은 조직 내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상이긴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변화와 성장이라는 것은 매우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다는 점에서, 그렇게 극적이고 강요된 외부적인 환경에서도 어려운 변화가 그보다 훨씬 느슨한 환경에선 더욱 쉽지 않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습니다.


더불어, 이 글을 쓰고 같은 피드백을 하러 또 회의실에 들어가야 하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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