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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거작가 Jan 02. 2024

애사심도 변해야 한다

집착과 사랑은 깻잎 한 장 차이

사랑하면 그간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고 들린다고 합니다.

자신이 관심 있고 애정 있는 것에 대해서는 보는 것 듣는 것 하나 허투루 듣고 보지 않게 되고, 무심하게 지나쳤을 때는 보거나 듣지 못했던 것들을 인지할 수 있게 된다는 말일 겁니다.


조직에 대한 사랑, 애사심을 강조할 때 이와 비슷한 비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종 우리는 일을 사랑해야 한다든지 소속된 조직을 사랑해야 한다든지와 같은 말로 치환해서 사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사랑이 항상 혹은 영원히 긍정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시기와 대상, 환경 그리고 사랑을 하는 주체인 내가 달라졌다면 더더욱 뒤돌아 봐야 합니다.


예전 대기업을 다닐 때, 법인카드(이하 법카)는 거의 구경해보질 못했습니다.

그 시절 법카는 임원의 상징이자 전유물로 여겨졌고, 아주 가끔은 전 부서원이 모이는 회식 끝에서나 계산대에서 우연히 볼 수 있는 것이 법카였습니다.


그만큼 회삿돈으로 밥을 사 먹는 건 흔치 않은 경험이었고, 그래서인지 회삿돈으로 밥이나 차를 사 먹는 건 매우 희귀하고 그만큼 낯설고 경계감이 생기는 일이었습니다.


임원이 되어서 경험한 다른 조직은 옛 경험과의 시간의 거리도 있지만, 직원들이 법카로 밥 먹는 것에 대한 경계심도 매우 낮았고, 그 횟수도 매우 잦았습니다.


당연히 과거의 조직을 사랑하는 애사심의 발로로 법카 사용에 대해서 전 은근히 엄격한 사용과 결재 기준을 들이댔습니다.

그 엄격함의 반대편에 있는 직원들은 "자기돈도 아닌데 뭘 그렇게 떽떽 거리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제 생각은 "자기 돈이 아니니 함부로 쓰면 안 되지."라고 자기 확신을 가졌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저의 엄근진스러운 법카 사용관(觀)은 어쩌면 구시대의 조직문화, 한물간 리더십 더 나아가서는 전혀 다른 조직에서나 통할 법 직한 기준이었던 것 같습니다.


내게는 너무나 자랑스러운 애사심의 발로였는 지 모르지만, 지금의 조직과 사람들의 눈에는 돈관리 하는 부서도 아무 말 안 하는 걸 시비 거는 오지랖 넓은 결재자 중 한 명으로 밖에 안 보였을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먹는 것 가지고 치사하게 구는 사람 정도로 비쳤겠지요.


한때 사랑했던 감정과 관계도 시간과 조건이 달라지면, 상대방의 불편함을 넘어 심지어는 범죄로까지 여겨져서 법적인 처벌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애사심도 변화에 적응해야 합니다.

때로는 나의 마음을 안 받아주는 상대에 대한 섭섭함과 변해버린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하는 아픔이 있더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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