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개의 자화상과 나의 자아
마흔 중반에 처음 취미미술을 시작했다.
미술의 기초 없이 오일파스텔이나 아크릴 물감을 통해 그림을 그렸다.
화실에 가서 그린 대부분의 그림은 자연풍경,
빈센트 반 고흐의 꽃병 시리즈 같이 정물이나 풍경이었다.
인물을 그려본다는 건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은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인물을 그리려면 기본 도형 그리는 연습부터 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시도하지 못했다.
학창 시절 원기둥, 각기둥 명암 넣다가 연필 집어던질뻔한 사람이 나였기에.
나는 특히나 공간지각능력이 남들보다 현저히 떨어져서 입체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들은 기피대상이었다.
학교 다닐 때 석고조각으로 자화상을 조각하는 숙제가 있었다.
내 얼굴의 정면, 양측면, 뒤통수, 정수리... 까지 입체적으로 사고해야 완성할 수 있는 고난도의 숙제.
역시나 측면 조각하다가 멘붕... 미술 점수는 엉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얼굴의 비례나 해부학적 구조를 알아야 하는 인물 그리기는 먼 나라 얘기였다.
그저 선망의 대상...
어느 날 아이패드로 그림을 얼마든지 수정하고 그릴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덜컥 큰 화면의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어차피 혼자 집에서 끄적거릴 거니까 못 그려도 그만이었다.
틀리면 되돌아가기 버튼 누르면 되니까 물감보다는 쉬워 보였다.
그래서 휴대폰 속의 내 사진을 찾아 첫 번째 그림 [고개 숙인 나]를 뚝딱 그렸다.
여기서의 뚝딱은 물감으로 그렸을 때랑 비교했을 때 뚝딱이라는 얘기다.
디테일은 없어도 뭔가 분위기가 그럴듯해 보여서 만족한 후 욕심을 내서 두 번째 [고전 속의 나]를 그린다.
지금은 머리가 투블록 숏컷이지만 5년 전만 해도 나는 머리가 길었다.
내가 꿈꾸는 내 미래의 모습은 타샤튜더 할머니다.
꽃무늬 원피스와 롱앞치마를 두르고 정원을 가꾸며 글과 그림책을 그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모습을 상상하며 그렸다.
지금 보니 나보다 훨씬 젊게 그려놓았고, 아무래도 이건 내가 꿈꾸는 모습이니까 곱게 화장도 하고 지금과 달리 핑크핑크한 드레스도 입었다.
이 캐릭터는 인스타툰 작가 "귀찮"님의 강의를 잠깐 들으며 나만의 캐릭터를 그려본 것이다.
언젠가는 이 캐릭터로 뭔가 할 것이다.
나의 짝짝이 눈썹을 포인트로 그리고 투블록 헤어를 표현해 봤다.
세 번째 자화상 [자기만의 방]은 정말 할 말이 많다.
사람 얼굴을 물감으로 처음 그려본 거였는데 너무 이상해서 수십 번을 덮고 다시 그려야 했다.
손톱으로 물감을 긁으면 툭하고 떨어져 나갈 정도로 수정을 했다.
화실 전시회에 올릴 거라서 더더욱 압박감이 심했고 전시회에 걸면서도 괴로웠던 그림이었다.
그 당시에 그림에 슬럼프가 와서 그만둘지 몇 달을 고민했었다.
그런데 이 그림이 브런치스토리의 첫 프로필 사진이 되어 나를 표현하는 자화상이 될 줄이야...
사진으로 프로필 하기에는 용기가 없고 뭔가 나다운 모습을 프로필로 설정하고 싶어서 선택한 선택지였다.
그 후 나의 여러 그림들은 브런치스토리 연재 북의 표지로 쓰이게 된다.
왜 그리는지 몰랐던 나의 그림들이 마치 이때를 기다려 왔다는 듯이 하나둘씩 쓰임을 다하는 것이다.
이러려고 내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것일까?라는 착각이 들만큼 브런치스토리와 내 그림을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이제는 브런치북 표지로 하고 싶어서 그림을 그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네 번째 자화상은 딱히 그릴 생각이 없었는데 그린 5분 스케치 그림이다.
아이패드가 몇 달째 유튜브 시청용으로 전락해서 뭐라고 그려볼까 하고 펜을 들었다가 5분 만에 그려본 자화상이다.
어깨깡패처럼 그려졌고 목은 늘어난 양말처럼 길쭉한데 눈은 커서 쏟아질 것 같다.
근데 수정하지 않고 그냥 처음 손이 가는 대로 그리고 저장해 둔 자화상이다.
이번에 새로운 브런치스토리 프로필로 올라간 그림이 다섯 번째 자화상 [책과 나]다.
처음 물감으로 그린 세 번째 자화상 [자기만의 방]보다 얼굴 수정이 덜 들어갔다.
하지만 피부색이 마음에 안 들어서 수차례 덮었다.
그래서 오돌토돌 피부가 두껍다.
다행히 측면이라 눈을 하나만 그려도 된다. 야호~~~
신났던 것도 잠시, 코 옆으로 반대쪽 눈이 살짝 보여야 되네???
갑자기 어려운 난제에 봉착하고 좌절할 뻔한 순간도 있었지만 어찌어찌 완성되었다.
덩그러니 나하고 책만 있으니 허전해서 급하게 급조된 꽃과 보름달
사진을 찍을 때 빛을 받아서 색이 좀 흐릿하게 나왔으나 실제로 꽃색이 강렬하다.
어제 글에서도 밝혔지만 "흐느적거리는 그림"스타일로 꽃잎을 그려봤다.
하지만 주인공은 나니까 덜 흐느적거리게 마무리.
글벗 작가님이 프로필 사진 바꾼 걸 알아봐 주셔서 이 이야기를 써봐야겠구나 싶었는데 그러다 보니 내 자화상을 줄줄이 소개하는 시간이 됐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
나는 나를 왜 그리는가?
내가 그리면서도 계속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나를 왜 그릴까?
생각보다 나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예전에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나 자신이 너무 못나고 바보 같고 존재 가치가 없다고 여기며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 나는 나를 그리고 있네??
지금의 나도 그리지만 내가 꿈꾸는 나도 그리고 있다.
나는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로 자화상을 그리는 걸까?
멕시코 화가 프리다칼로도 자신의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
자신의 아름다운 순간, 고통스러운 순간까지도.
"나는 나를 가장 잘 안다" -프리다칼로
내가 그린 각각의 자화상 속에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한다.
나는 하나의 나로 규정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그려질 나의 자화상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지 문득 궁금해진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되고 싶은 나를 계속 그려보면서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돼보고 싶다.
덧)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한 게 2024년 중후반부터이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이렇게 정리해 보니 2024년은 내 삶의 전환점이었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다. 내 옆에 있어준 글과 그림에 감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