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롭게 다시 세팅하는 아침 루틴
아침 독서와 독서기록을 쓴 지 247일 차, 손글씨로 쓴 모닝페이지 2일 차다.
안 그래도 아이 등원 준비와 출근 준비, 아침 독서기록으로 바쁜 와중에 '모닝페이지'쓰는 루틴을 넣으니 뭔가 더 복잡해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 눈 떠서 휴대폰 만지며 괜히 흘려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니 오히려 좋다.
그동안은 헐렁한 얼갈이배추 같았다면 이제는 속이 노랗게 꽉 찬 알배추가 되는 느낌(?)
뭐 나름 알찬 하루의 시작이라는 의미다.
작년에 <아티스트웨이>라는 책을 알게 되면서 여름에 잠깐 "모닝페이지"를 쓴 적이 있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자신의 무의식에 떠다니는 생각을 붙잡아 노트에 쭉 흐름대로 받아 적는 기록 방법인데 한 달 정도 하다가 그만뒀었다.
처음 쓸 당시 내 나름의 편한 방법으로 바꿔서 해본다고 '모닝페이지'의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
그때는 새벽 기상을 하지 않았기에 우선 아침 시간에 30-40분을 투자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아이 등원 후 출근 전 주차장에서 무선 키보드로 <노션>이라는 어플을 이용해 기록했다.
그런데 쓰고 나서 8주간 절대 읽어보지 말라는 원칙은 지켰지만 (사실 1년 넘게 안 읽음) 나는 읽지 않았어도 이미 스스로 자기 검열을 하고 때려치울 수밖에 없었다.
온통 하루의 목표 설정, 후회, 반성, 또 다음날 같은 목표, 후회, 반성 이 패턴으로 글을 쓰고 있었던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것은 자기 안에 떠오르는 생각,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써보면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알아가고 그것으로 삶의 작은 변화와 창조성을 느껴보는 것인데 나는 투두리스트 작성과 자책만 하고 있었으니 쓰기가 싫은 게 당연한 결과였다. 아무래도 눈뜨자마자 써야 하는데 몇 시간 지나 "이성"적 사고가 되는 시점에 모닝페이지를 쓰니 그랬던 것 같다.
며칠 전 모닝페이지를 다시 시도해 보기로 마음먹고 묵은지처럼 묵혀두었던 글을 찾아 읽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망했다고 생각했던 모닝페이지 글에서 "매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라는 글을 발견한 것이다.
글의 힘일까? 1년이 훌쩍 지난 지금 나는 내 생각을 하루 한 문장이라도 매일 쓰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은 우연일까?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을 글로 적고 나도 모르는 사이 그 힘에 이끌려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마치 이 문장이 나를 오랜 시간 기다려왔다는 듯이, 그리고 다시 모닝페이지를 제대로 쓸 때가 되었다는 의미처럼 느껴졌다.
편한 노트와 가성비 좋은 무인양품 만년필을 이용해 어제부터 손글씨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
생각이 워낙 많으니 손으로 쓰는 글씨가 따라오기 힘들 것 같아 디지털 기록을 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글씨를 잘 써보려고 했으나 무의식적으로 툭툭 튀어져 나오는 생각들을 받아 적으려면 휘갈겨 쓸 수밖에 없었다. 노트 몇 장을 뭘로 채울까 하는 걱정과 달리 첫날은 A5 노트에 4페이지를, 오늘 아침에는 6페이지를 썼다. 사실 더 쓸 수 있었지만 아침 독서와 독서기록을 해야 해서 멈춰야 했는데 아쉬웠다. 손이 얼얼해도 글씨는 괴발개발 밟힌 지렁이 같아도 뭔가 내 생각들이 이리저리 노트 위에서 튀어 다니는 게 좋았다.
글쓰기와 노랫말 만들기에 대한 구상도 몇 가지 끄적이고 인간관계와 내 삶의 방향성 추구에 대해서도 적다 보니
생각이 넓어지기도 깊어지기도 전혀 엉뚱한 생각으로도 흘렀다.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모닝페이지가 익숙해지면 그 안에 떠다니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수 있게 따로 몇 주에 한 번 마인드맵으로 정리해 볼 시간을 가지려 한다. 모닝페이지는 아무래도 문장이라서 직관적으로 원하는 내용을 찾기는 어려워서 시각적인 이미지와 주요 키워드로 정리할 생각이다.
편리함으로 디지털 기록을 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어떤 아이디어를 구상할 때는 노트에 손이 가는 대로 쓰는 것이 생각을 더 유연하게 해주는 느낌이 든다.
처음엔 손 아프게 굳이 손글씨를 고집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자판을 이용해 모닝페이지를 썼었다. 하지만 이틀간 새롭게 모닝페이지를 써보니 왜 그렇게 손으로 써야 된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사각 거리는 만년필과 필압에 따른 글씨의 변화,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며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때 느껴지는 희열이 굉장하다.
작년에 쓴 모닝페이지는 방법이 틀려서 '망한'것처럼 느껴졌는데 그럼에도 그 기록 안에 내 생각이 살아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제대로 된 방법으로 나에게 집중하면서 즐겁게 '흥'할 모닝페이지 기록을 이어가야겠다.
몇 년 후, 오늘 내가 쓴 글에서
미래의 내가 기다릴지 모른다
2025. 11. 5. 윤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