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게 됐을까?

by 윤서린

이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나는 묻고 싶다. 나 스스로에게 그리고 이곳의 작가들에게.

방금 다른 작가님의 글에 댓글을 쓰다가 어디서 들은 이 문장을 쓰게 됐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사실 출처도 불분명한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곳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내 안의 들어있는 온갖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 브런치스토리에 글을 쓸 때 내 안의 불안했던 감정, 고통스러웠던 순간의 기억들을 끄집어내서 글을 썼다. 썼다기보다는 토해냈다. 배설물처럼.

그래서 그때 프롤로그처럼 썼던 글은 지금 다시 열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다시 읽어보면 이불 킥하면서 지금 당장 휴지통 버튼을 누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 글도 분명 존재할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의 지난날을 증명해 줄 증인이기에 눈에 가시 같지만 그 글들은 우선 살려두기로 한다.


너무 불행해도 글을 쓰지 않는다.
아니, 쓰지 못한다.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까막눈이 돼버린다.


내 경우가 그랬다.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각했을 때 나는 신문 기사 몇 줄도 못 읽었다.

아이의 가정 통신문도 몇 번을 읽어야만 안내 사항과 준비물을 알 수 있었다.

집중할 수 없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삶에 존재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아이의 육아일기조차 쓰지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넷째 막내에게 너무 미안하다.


그나마 글이라는 것을 쓴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자의로 우울증 약을 끊고 나서였다.

15년 넘게 우울증 약을 먹는 내가 지겨웠고 감정을 컨트롤당하며 죽은 시체처럼 사는 내가 싫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약을 끊은 가장 큰 이유는 부작용 때문이었다.

저녁 약을 먹고 비몽사몽간에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걸 내가 인지하게 된 후다.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살아서는 죽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는데 막상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겁이 나는 우스운 상황이었다.

수년동안 2주에 한 번 병원에 들러 새롭게 약을 처방받아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늘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감정이 널 뛰었다.

나를 옥죄는 주변의 환경이 변하질 않으니 약을 먹어봤자 소용이 없었다.

우울증 약은 나를 숨 쉴 수 있게 살려두는 것 말고는 효과가 없었다.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몇 년간 방에 암막커튼을 치고 드라큘라처럼 어둠 속에서 잠만 자며 살았다.

자다 지쳐 눈을 떴고 '아... 아직 살아있네...' 이 생각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나는 이대로 살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 시체처럼 사는 건 익숙하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문제였다. 나의 우울감이 안 방문틈 사이로 흘러 흘러 아이들까지 적시고 있었다.

온 집안이 장례식장처럼 조용했고 어느 순간 이 집에서 누군가의 장례식이 열린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우리 가족은 전부 우울에 전염된 상태였다.

나는 나이길 포기했지만 여전히 "엄마"였다. 일어나야 했다.


지금 나를 살릴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약에 젖어 무기력하고 무거웠던 몸을 일으키기 위해 하루 몇 시간씩 밖으로 나가서 할 수 있는 일거리를 찾았다.

경력단절 주부에게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쓰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나의 설거지 아르바이트가 시작되었다.

일주일에 몇 번씩 규칙적으로 밖에 나가 일을 하며 사람들을 만났다.

일은 고되지만 몸과 마음에는 미약한 근육들이 조금씩 붙었다.


몇 달 후 용기를 내서 어려서부터 해보고 싶었던 그림을 배우기 위해 동네 화실에 등록했다.

시부모님 눈치 보지 않고 내가 번 돈으로 취미 생활을 한다는 게 묘한 해방감을 주었다.

일하는 며느리에게 토요일 몇 시간의 자유시간은 보장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1년 넘게 걸렸다.

토요일 오전은 주말 이틀 동안 시부모님 케어를 하기 전 갖는 나만의 신성한 놀이 시간이었다. 아무한테도 뺏길 수 없는 나만의 자유시간을 쟁취했다. 이제야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며 만나는 사람들은 무해했다.

좋아하는 것을 함께 이야기하는 기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에게 행복을 하나 더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동네 독립서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지금의 글쓰기 모임 "쓺"을 만나 든든한 글벗들이 생겼다.

글이라고는 일기밖에 써본 적 없던 내가 막연히 어린 시절 꿈꾸던 글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글벗들의 권유로 브런치스토리의 작가신청을 하면서였다.

두서없이 쓴 내 글을 함께 읽고 나누는 시간들이 쌓이자 차츰 내 안에 작은 불꽃이 피어나듯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도 평생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몰라


그렇게 한 달에 두세 번 쓰던 글이 이제는 매일아침 독서노트와 일상을 적어가는 글로 2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어느덧 이곳에서 글을 쓴 지 1년이 지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내 일상글이 너무 보잘것없고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엉뚱하고 때론 거친 생각들을 쓰다 지우다 작가의 서랍에 던져두길 반복한다.

그러다 부끄러운 마음이 조금 사그라들면 그때 하나씩 발행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일상글을 올리면 구독자가 한 두 명씩 빠지는 것 같았다.

사실 내가 쫄보 소심쟁이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일상글 때문인지 시도 때도 없이 새벽에 독서글을 발행해서 알림이 듣기 싫어서인지 내 글과 결이 안 맞아서 이별을 택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브런치 스토리에서 부디 구독취소할 때 이유를 선택하고 취소가 승인되면 좋겠다. 나는 그 이유가 너무 궁금해서 잠도 안 온다.)


초반에 나의 아르바이트 경험담과 자잘한 일상글을 보고 구독을 눌러줬던 많은 분들에게 우선 심심한 사과를 전한다. 6개월 동안 너무 글을 안 썼다. 내 안의 자기 검열이 심하니 도저히 쓸 수 없는 시간들이었다.

사실 이러나저러나 읽을 사람을 읽고 안 읽는 사람은 내 글이 있다는 사실도 모를 텐데 뭐가 그리 쫄리는지...


우리 가족도 안 읽는 글을 이렇게 찾아와서 읽어주시니 감사한 마음에 동서남북 절을 드려야 할 입장이다.

이제는 심기일전하여 엉뚱하고 허튼 이야기도 다시 쓰기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사 한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손가락이 좀 풀린 것 같다. 조만간 상상고양이 "파니파니냥의 영감 없는 영감상점"글도 재발행될 조짐이 보인다)


최근 구독자가 되신 작가분들께도 심심한 사과를 함께 전한다.

매일 아침 독서기록 글로 성장하는 캐릭터와 시를 쓰는 감성적인 사람인 줄 알고 계셨을 텐데...

사실은 꽤나 엉터리 같은 글을 다른 연재북에서 썼었고 앞으로 더 분발해서 자주 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부디 너무 놀라 도망가지시지 않길 바란다. 만약 너무 결이 안 맞아서 구독 취소를 하시려거든 그런 글이 올라오고 며칠 지나서 구독취소를 눌러주시길 바란다. (그 정도의 너그러움은 있으시겠지... 요.)


글벗 한 분이 나에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글을 쓰면서 표정과 눈빛이 완전 달라졌다고.

목소리에 자신감이 생기고 생기 있어졌다고.


그분은 나에게 이런 처방을 내렸다.

사실 그동안 글을 못써서 병이 난 것이다



그렇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는 내가 입을 닫고 마음을 닫고 살았으니 병이 날 수밖에.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나는 매일 글을 쓸 것이다.

잘 쓰지 못해도 우울증 약대신 내 글을 하루 한편씩 복용하며 내 삶을 연명할 것이다.


나 스스로 임상 실험을 해본 결과 불행을 연료로 글을 쓰는 것도 맞고 글을 쓰면서 행복해지는 것도 맞다.

그러므로 불행한 사람도 행복한 사람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이 나의 두서없는 이 글의 결론이다.



우리 모두 글쓰기로 삶의 모든 순간들을 기록하자.
글쓰기로 자신의 삶을 일으키자.

서로서로 글 쓰는 삶에 무한한 응원을 보내자~




추신 : 남편이 퇴근 후 내 책상 아래까지 청소기를 들이밀며 땀을 흘리고 있지만 나는 꿋꿋하게 이 글을 마무리한다.

텔레비전이나 유튜브 안 보고 컴퓨터 앞에서 타자를 두드리고 있으니 나는 꽤나 괜찮아 보이는 불량 주부다.

행복하다. 이렇게 브런치스토리에서 마음껏 놀이처럼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그럼 수다를 이만 줄이고 불량 주부는 현모양처 코스프레를 하러 저녁밥상을 차리러 떠난다.

모두들 이불 잘 덮고 깊은 잠드는 저녁이 되시길.


추추신 : 이 글 발행 후 "구독 취소"가 되는지 잠 안 자고 지켜볼 예정임.


추추추신: 여러분들이 글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5화"책"임보자의 책기둥 무너뜨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