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0월의 초반 무렵에 쓰다 서랍에 넣어두고 잊었던 글이다. 계절이 더 멀리 달아나기 전에 몇 마디 추가해서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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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 전부터 내복 하의를 챙겨 입고 가방에 얇은 머플러를 넣어 다닌다.
두툼한 양말도 챙겨 신고 따뜻한 차를 마신다.
여름 내내 달고 살던 얼음물 대신 뜨끈하게 속을 데울 수 있는 작두콩차, 보이차, 결명자차, 쑥차를 쟁인다.
전기장판을 틀고 잔 지는 벌써 여러 주가 되었다.
추위를 너무 싫어해서 겨울이 살짝 두려운 나는 만반의 준비를 한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내가 겨울을 싫어하는 줄 알았다.
추운 게 너무 싫었으니까.
사실 30년 넘게 겨울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학창 시절 얇은 스타킹을 신고 보온성이 없는 교복코트를 입고 바람 부는 학교 언덕을 울며(거의 울었다. 너무 추워서)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나를 겨울과 멀어지게 했다.
누가 어떤 계절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5월과 6월 초의 연둣빛 가득한 계절이라고 말하고 그 끝에 겨울을 싫어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작년부터 <제철 행복> 책을 읽으며 24 절기를 의식하면서 사계절을 감각하고 관찰하며 지내다 보니 나는 겨울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꽤 여러 가지를 좋아하고 있었다.
겨울의 쨍하게 시린 공기를 코로 들여 마시는 것,
찬 공기 속에 연기처럼 퍼지는 입김이 흩어지는 것,
서리가 내린 풀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는 것,
차 유리창에 낀 성에꽃을 바라보는 것,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과 눈오리를 구경하는 것,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내 발자국을 내는 것,
뽀드득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것,
눈 위에 찍힌 고양이 발자국을 발견하고 나란히 걸어보는 것, 커다란 나무 위의 새둥지를 바라보는 것,
새들이 나뭇가지 위를 통통 거리며 건너다는 것을 보는 것,
처마밑의 고드름을 만나면 반가워서 사진을 찍어두는 것,
뜨끈한 바닥에 배 깔고 누워서 퍽퍽한 밤고구마를 먹는 것,
뜨거운 (따뜻한 아님) 차로 몸을 데우는 것,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을 보는 것,
귤을 박스채 놓고 물리도록 먹는 것….
나는 이렇게나 내가 겨울에 좋아하는 게 많았다는 걸 알게 됐다. 안 좋은 기억이 내 전부 인 줄로만 알고 겨울이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던 지난 시절의 나. 갑자기 겨울에게 미안해진다. 그러고 보니 겨울은 내가 태어난 계절이기도 하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되면서 겨울도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동안 힘든 시기를 잘 버티고 이제는 나도, 겨울도 좋아하게 됐으니 다가오는 겨울이 더 기대된다.
겨울을 안 좋아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두번째를 맞는 겨울, 이번 겨울에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기쁨을 발견하게 될까.